실사 없이 만든 90분…‘스틸레이’가 보여준 AI 영화의 가능성과 숙제 [현장]
입력 2026.09.07 17:14
수정 2026.09.07 17:15
생성형 AI로 장편 SF 액션 완성…1만 3000여개 결과물 선별
생성 툴 비용만 5억~6억원…해외 서비스 업데이트·정책 변경은 변수
하정우 부위원장 “기존 창작 대체 아냐…저작권·표시 기준 마련해야”
실사 촬영 없이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진 90분짜리 SF 액션 영화가 세상에 공개된다. 영화 ‘스틸레이’는 AI 기술이 장편 서사와 액션을 어디까지 구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화질과 움직임의 이질감, 해외 기술 의존, 저작권과의 숙제도 함께 드러냈다.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스틸레이’ 블라인드 시사회 및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하정우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상근 부위원장, 함슬기 아이노스튜디오 대표, 설우인 감독, 오세은·김태경 아이노스튜디오 팀 리더, 원경혜 조연출 등이 참석했다.
‘스틸레이’는 자율 판단 로봇 에이라가 인간을 위협 요소로 규정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실종된 아버지를 찾던 윤강이 자신이 만든 AI 아라와 함께 전투 수트 ‘스틸레이’를 입고, 인류 최악의 바이러스 ‘코드 제로’를 둘러싼 위기에 맞선다.
‘스틸레이’ 언론시사회 현장.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제작진은 일부 장면에만 AI를 활용한 하이브리드 방식이 아니라 실사 영상 없이 장편 전체를 생성형 AI로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다만 음성은 AI 보이스만 사용하지 않았다. 주요 인물의 목소리는 성우의 후시녹음으로 제작한 뒤 캐릭터의 입 모양을 맞췄으며 일부 배역에만 AI 음성을 활용했다. 생성 툴 이용에 들어간 비용은 약 5억~6억원이다.
함슬기 대표는 90분 동안 캐릭터와 이야기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고 밝혔다. 당시 생성할 수 있는 영상 한 컷의 길이가 최대 15초가량이었던 만큼 제작진은 이를 이어 붙여 장편을 완성해야 했다.
함 대표는 “최종 편집에 활용한 결과물만 약 1만 3000개였고 버린 결과물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며 “수만 개의 영상 가운데 어떻게 내러티브를 유지하며 90분을 끌고 갈지가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은 장점인 동시에 제작의 불확실성이었다. 설우인 감독은 해외 생성형 AI 서비스의 업데이트와 크레딧·라이선스 정책 변화가 제작비와 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영화가 상당 부분 완성된 뒤 더 발전한 툴이 출시되면서 일부 장면을 다시 시험하고 수정하기도 했다.
대형 스크린에서는 화질과 인물 움직임, 표정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장면도 있었다. 제작진 역시 현재 기술의 한계를 인정했다. 다만 실사나 CG로 부족한 부분을 대체하기보다, 현시점의 AI 기술만으로 90분 장편을 완성해 하나의 사례를 남기는 데 의미를 뒀다.
함 대표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관객을 만나야 사례가 남고 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며 “AI로 90분을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스틸레이’ 스틸컷 ⓒ라온컴퍼니플러스
현장에서는 영화의 완성도만큼 AI 콘텐츠를 둘러싼 제도적 기반도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하정우 부위원장은 창작자가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와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면서도 저품질 콘텐츠의 대량 생산과 저작권 침해를 함께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부위원장은 “새로운 부가가치가 저작권자와 AI 창작자 등 생태계 구성원에게 함께 돌아가는 구조를 찾아야 한다”며 안정적인 AI 도구 공급과 비용 부담 완화, 권리자의 보상 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AI 생성물의 표기 방식도 정리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짧은 영상에는 워터마크를 넣을 수 있지만 90분 내내 이를 노출하면 관람 품질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 부위원장은 “AI가 만든 영화라는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 알릴지 문체부를 중심으로 가이드라인이나 규정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존 영화인과 AI 창작자가 대립하는 구도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하 부위원장은 “AI가 기존 영화와 콘텐츠 창작을 100% 대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일부 작업에서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위험한 촬영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스틸레이’ 언론시사회 현장.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배우이기도 한 설 감독은 초상권에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고 했다. 특정 연예인 한 명을 그대로 참고하지 않고 여러 이미지에서 최근의 외형적 경향을 분석해 캐릭터를 설계했으며 제도가 완비되기 전까지는 창작자가 사용한 자료와 제작 과정을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설명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스틸레이’는 완성된 기준이라기보다 현재 AI 영화가 도달한 지점을 보여주는 시험작이라고 볼 수 있다. 제작비와 인력을 줄일 가능성은 확인했지만 기술 발전 속도에 흔들리지 않는 제작 환경과 저작권·초상권·표시 기준, 완성된 영화를 관객과 연결할 유통 구조는 이제부터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한편 ‘스틸레이’는 10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