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절미와 개떡 [조남대의 은퇴일기(107)]
입력 2026.09.08 14:00
수정 2026.09.08 15:47
가쁜 숨을 몰아쉬며 쌍수정에 다다르니, 탁 트인 시야 아래로 은빛 금강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더운 여름날, 문학기행에 나선 초로初老의 문인들에게 공산성 비탈길은 제법 땀깨나 빼는 여정이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방울이 시원한 강바람에 씻은 듯이 말라버린다. 경치에 취해 숨을 고를 즈음, 안내자의 구수한 입담이 귀를 파고들었다.
공산성에서 문학기행에 나선 문인들과 함께ⓒ
이괄의 난을 피해 한양을 떠나 헐레벌떡 도망치던 인조 임금이 충청도 공주 공산성에 일주일 정도 머물 때였다. 먹을 것이 귀하던 피난 시절, 공주의 한 임씨가 찹쌀떡에 콩고물을 묻혀 임금께 올렸다. 허기와 피로에 지쳐 있던 임금은 떡을 한입 맛보고는 "이것이 진정 절미絶味로구나!" 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훗날 떡은 그의 성을 따 '임절미'라 불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인절미'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공주시는 이 유래를 바탕으로 매년 봄 산성시장과 공산성 일원에서 ‘사백 년 공주 인절미 축제’를 열고 있다. 지금도 공산성 주변에는 인절미를 빚는 스무 곳 남짓의 떡집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공주에서 펼쳐지는 ‘사백 년 공주 인절미 축제’ 풍경ⓒ
내 무릎을 탁 치게 만든 것은 다음 이야기였다. 난이 평정되어 궁궐로 돌아온 임금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떡을 다시 올리라 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한입 베어 물고는 "개떡 같구나" 하며 상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실소가 터져 나온다. 떡은 그대로이건만, 맛보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 이름이 바뀐 것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피난길을 헤매던 극심한 허기는 평범한 떡마저 천하일미天下一味로 만들었고, 풍족하고 안락한 궁궐에서는 같은 떡조차 시시한 음식으로 전락시켰다. 절미 이야기는 상황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난이 평정된 후 인절미를 개떡이라고 물리치는 임금ⓒAI로 제작
생각해 보면 인조의 변덕만 탓할 일은 아니었다. 살아오는 동안 상황이 변함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로 받아들였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사랑을 간섭으로, 걱정을 잔소리로 여기며 인절미를 개떡 취급했던 부끄러운 기억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은퇴 후 양평 농원에서 어머니와 장모님을 모실 때였다. “위험하니 경사진 곳에서 일하지 마라.” “비가 오는데 모자는 왜 안 쓰느냐.” “밥은 제때 잘 챙겨 먹고 다녀라.”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내던 걱정은 귀를 따갑게 하는 잔소리일 뿐이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간섭이라는 굴레처럼 느껴졌다. “어머니, 저도 이제 환갑이 지났습니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라며 큰소리치면서 속으로는 ‘저렇게까지 자식의 일에 일일이 관여하는 부모는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곤 했다. 어머니의 걱정보다 내 판단을 더 믿었다. 보살피려는 손길이 사랑이 아니라 간섭처럼 느껴졌고, 그저 묵묵히 자식을 믿어 주기만 바랐다.
어머니의 충고를 잔소리로 듣고 있는 자식ⓒAI로 제작
이제 철이 들었는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내 입에서 그토록 듣기 싫었던 잔소리가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늦은 밤이면 휴대전화를 붙들고 "저녁에는 너무 늦지 않게 들어가거라", "건강을 위해 운동 좀 해라", "술은 조금만 마셔라" 하는 말을 습관처럼 건넨다. 내 딴에는 사랑과 삶의 지혜를 담은 '절미'를 건네는 마음이지만 자식은 무심한 표정으로 흘려듣는 듯하다. 그럴 때면 ‘오래된 삶 속에서 깨달은 말을 왜 귀담아듣지 않을까’ 하는 서운함이 밀려온다. 문득 한때 부모님의 걱정을 간섭으로 여기던 내가 이제는 자식이 내 말을 흘려듣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아버지가 되었음을 깨닫고 쓴웃음을 짓는다.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닮아 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인절미가 개떡이 되고 다시 인절미가 되는 것은 떡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어머니와 꼭 같이 자식에게 간섭하는 부모ⓒAI로 제작
어디 그뿐이랴. 치열한 밥벌이의 현장이었던 직장생활 또한 때때로 개떡 같았다. 매일 새벽 단잠을 깨우는 알람소리와 목에 걸린 사원증은 나를 옭아매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상사의 헛기침 한 번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끝없이 막히는 출퇴근길은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진을 빼놓았다. 월요일이면 처리해야 할 업무에 머리가 지끈거려 한숨부터 앞섰고, 달력 속 빨간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퇴직만 하면 이놈의 알람 시계부터 창밖으로 집어 던지리라.' 그렇게 이를 갈며 버틴 날도 셀 수 없이 많았다.
퇴직하자 벗어나고 싶었던 직장이 달콤했던 절미였음을 깨닫는다ⓒAI로 제작
마침내 고대하던 퇴직의 날이 찾아왔다. 백수가 되어 맞이한 첫 월요일 아침, 창밖으로 내동댕이쳐질 줄 알았던 알람시계는 마치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는 생각만큼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늦잠을 자도 누구 하나 찾지 않았고, 서둘러 다려 입을 와이셔츠도, 출근을 재촉하던 발걸음도 자취를 감추었다. 처음 며칠은 해방감에 들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하루는 길기만 했고 마음은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였다. 세상 어딘가에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직장생활도 인절미 이야기와 닮아 있었다. 당시에는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무거운 짐이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되돌아보면 내 삶을 단단하게 빚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힘겨웠던 그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달콤한 ‘절미’였음을 깨닫는다.
인절미 이야기가 기록된 ‘인종임금 공주 파천 기념비’ⓒ
공산성 성곽을 따라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마음 한편에는 묘한 쑥스러움이 남았다. 가만히 되짚어 보면 인절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인절미였을 뿐이었다. 세상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의미를 바꾸어 놓은 것은 늘 내 처지와 마음이었다. 지금 눈앞의 무언가가 개떡처럼 보이고 세상이 못마땅하게만 느껴진다면, 숨을 고르고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공산성을 내려오는 길 금강을 건너온 바람이 이마를 스쳤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강물을 바라보았다. 물은 아무것도 가르지 않은 채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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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