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전쟁 9년" 메디톡스는 왜 청구액을 10배로 높였나
입력 2026.09.04 14:07
수정 2026.09.04 14:13
서울고법, 17일 '보톡스 분쟁' 변론기일 개최
메디톡스, 배상금 10배 상향한 '5000억' 요구
법조계 "근거 없이 배상 요구 높이긴 어려워"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보툴리눔 균주'를 둘러싼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소송전이 격화되고 있다. 메디톡스가 손해배상 청구액을 기존의 10배 수준인 5000억원까지 상향하면서다. 이마저도 '일부 청구'다. 아직 산정하지 않은 손해분이 남아있는 만큼 메디톡스가 최종적으로 요구할 배상금은 여기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9년째 소송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어느 쪽도 물러설 기미가 없는 모습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5-3부는 오는 17일 오후 2시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 '영업비밀 침해금지 등 청구소송'의 항소심 변론기일을 개최할 예정이다. 증인신문을 지나 손해액 다툼이 이어지는 가운데, 메디톡스가 청구액을 늘린 뒤 처음 열리는 기일이다.
기일을 10여일 앞둔 지난달 31일 메디톡스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손해배상 청구액을 기존 5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늘리는 내용의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다툼의 근본적인 원인은 보툴리눔 톡신의 균주 출처다.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보툴리눔 ‘톡신’은 균주를 배양해 만든다. 체내 다른 곳에 문제 없이 주사를 놓은 곳의 신경 신호만 차단해 주름을 펴거나 근육 경련을 치료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원재료인 균주는 생물무기금지협약 대상인 만큼 자체 개발 없이는 확보할 수 없다. 메디톡스의 가장 큰 경쟁력도 '국산 1호' 보툴리눔 톡신 명가라는 이름값이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품인 ‘나보타’ 균주의 염기서열이 자사 제품인 메디톡신의 균주와 일치한다고 주장해 왔다.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이사는 2016년 보툴리눔 톡신 염기서열 관련된 미디어 설명회 당시 "엘러간(현 애브비)과 메디톡스의 염기서열은 2곳을 제외하면 모두 같은데, 희한하게도 대웅제약은 이마저 우리 제품과 똑같았다"며 "시간이 갈수록 더욱 의혹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련의 의혹이 실제 소송전으로 옮겨 붙은 건 2017년이다. 당시 메디톡스는 미국 법원과 국내 법원에 차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에는 엘러간과 함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대웅제약을 제소하기도 했다. 국내 1심 재판부는 일부 승소 판단과 함께 손해배상액으로 400억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두 회사 모두 1심 결과에 불복하면서 소송은 장기전에 접어 들었다. 메디톡스는 올해 상반기 여러 차례에 걸쳐 손해액 산정과 관련한 서면을 재판부에 냈다. 그러다 지난달 31일 손해배상 청구액을 5000억원으로 늘리는 내용의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 신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앞선 재판 과정에서 메디톡스가 요구했던 배상액은 500억원 수준이었다. 메디톡스는 실제 손해 규모에 맞춰 청구액을 현실화한 결과 변경 신청서를 제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추가로 확인된 나보타의 판매수량과 매출액, 소송 장기화에 따라 늘어난 손해 산정 기간 등을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손해배상 청구액이 늘어날 가능성도 열어뒀다. 메디톡스는 지난해 8월 이후 발생한 손해는 이번 배상금 산정에 포함하지 않았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보툴리눔 톡신 균주와 제조공정은 장기간의 연구개발(R&D)과 투자를 통해 축적한 핵심 기술자산”이라며 “항소심 과정에서 추가로 확인된 내용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필요한 주장과 입증을 충실히 진행했다”고 강조했다.
대웅제약은 법원을 통해 확정된 내용이 없는 만큼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금번 청구금액 변경은 확정된 배상액이 아니다”라며 “이미 별도 합의를 통해 주요 글로벌 파트너사와의 (나보타) 사업에 대한 법적 리스크는 해소됐다”고 말했다. 이어 “주주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법적 절차에 따라 단호하고 철저하게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메디톡스의 이번 배상액 확대와 관련해 재판 과정에서 그만한 승산이 드러났을 것으로 해석했다. 통상의 손해배상 청구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근거를 통해 재산정되긴 한다. 하지만 법률 비용 부담을 감안해 근거 없이 청구액을 올려 잡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한 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는 “특히 항소심에서는 어느 정도 판단과 자신이 없다면 배상금 규모를 이렇게 천문학적으로 늘릴 수 없다”며 “패소했을 경우 부담해야 하는 변호사 비용도 만만치 않고, 소가(소송에서 다투는 금액) 확대에 따라 법원에 지불해야 하는 인지대 등 비용 부담도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