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으면 실패해도 포상?…기준 모호하면 예산만 ‘펑펑’
입력 2026.09.02 16:00
수정 2026.09.02 16:00
정부 ‘실패한 연구’에도 후속 지원
‘탁월한’ 데이터·지식 창출하면 인정
10월까지 새로운 과제 평가 체계 마련
기준 불분명하면 사실상 실패 ‘면죄부’
해당 이미지는 자체 AI로 제작함. ⓒ
정부가 국가연구개발(R&D) 평가 체계를 대대적으로 손질하면서 ‘실패한 연구’에도 후속 연구비와 정부 포상 등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원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연구 과정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와 지식을 만들어냈다면 ‘우수도전 과제’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31일 ‘2026년도 국가연구개발 행정제도개선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기존의 결과 중심 등급·점수제 평가를 폐지하고, 연구의 질적 성과와 도전성을 중심으로 평가 체계를 바꾸기로 했다.
눈에 띄는 것은 ‘우수도전 과제’다. 애초 혁신적인 목표에는 미달했더라도 연구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탁월한 데이터와 지식을 만들어냈다면 우수 연구로 인정하는 내용이다. 선정된 과제에는 후속 연구 연계와 정부 포상 등 혜택을 제공한다.
문제는 ‘의미 있는 실패’와 ‘그냥 실패’를 어떻게 구분하느냐다. 연구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 새로운 데이터를 얻었다고 해서 우수연구가 된다면 사실상 실패한 연구 상당수가 구제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연구 결과가 애초 목표와 달랐다는 이유만으로 실패라고 할 수 없다. 다만 모든 실패에 사후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과학적 평가라고 보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의미 있는 데이터’라는 기준이다. 결과물(데이터)을 정확하게 평가할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면 해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평가자는 실패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를 후속 연구의 중요한 기반으로 보는 반면 다른 평가자는 연구 설계가 부실해 발생한 결과로 판단할 수 있다.
결국 연구자로서는 기존의 ‘성공률’ 대신 ‘실패의 의미’를 증명해야 하는 또 다른 평가 경쟁에 내몰릴 수 있다.
정부는 기존의 점수·등급 중심 평가를 없애겠다고 방침이다. 그런데 우수도전 과제를 선별하고 후속 연구비와 정부 포상을 제공한다는 것 역시 ‘평가’인 셈이다. 평가 기준이 ‘성공’ 여부에서 실패를 어떻게 ‘포장’하느냐로 달라질 뿐이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실패한 연구라도 유의미한 성과를 발굴해 어려운 과제에 주저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는 정말 바람직하다”면서도 “어쨌거나 정부 재정이 추가로 들어가는 과제라면 실패한 연구를 포장하는 것도 주의해야 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구계획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는지, 연구 방법에 문제가 있었는지, 연구자가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아니면 예상하지 못한 변수 때문에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는지를 구분하는 게 핵심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10월까지 세부 평가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실패’라는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연구 시작 당시 설정한 목표의 도전성, 연구 과정의 충실성, 새롭게 확보한 데이터의 객관성, 후속 연구에서의 활용 가능성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후속 연구비를 지원한다면 이미 한 차례 연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과제에 추가 예산을 투입하는 만큼, 단순한 연구 연장인지 아니면 실패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것인지 명확하게 입증해야 한다. 실패를 장려한다는 명분 아래 연구 성과에 대한 책임까지 희석돼서는 안 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실패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연구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실패한 연구라도 연구 데이터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다른 연구자가 이를 활용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국가 연구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우려하는 것처럼 평가 기준의 객관성이 보장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연구 과제마다 성격이 다르고, 보는 관점도 다를 수밖에 없어 그런 부분들을 부처, 전문가들과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평가위원회’를 구성한다거나 하는 계획은 전혀 알 수 없다”면서 “다만 연구 과제에서 나온 결과물을 단순히 정량적인 기준으로만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고, 정성적 기준도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