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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예산안] 반도체 세수로 AI 올인…820조원 ‘외줄’ 승부수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6.09.01 11:44
수정 2026.09.0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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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관리'서 '국가 주도 투자'로 대전환

잠재성장률 반등 노린 820.9조원 베팅

세입도 투자도 반도체 ‘외줄 타기’

162조원 미래기금 띄우며 지방·교육재정 63조원 칼질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지난달 28일 세종정부청사 중앙동 브리핑실에서 열린 '2027년도 예산안 상세브리핑'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예산처

정부가 내놓은 2027년도 예산안은 한마디로 국가의 명운을 건 ‘반도체 올인’ 승부수다. 총지출 820조9000억원, 전년 대비 12.8% 증가라는 역대급 숫자의 이면에는 ‘재정 수치 관리’라는 기존의 방어벽을 과감히 걷어내고 정부가 직접 첨단 산업의 대형 투자자로 나서겠다는 정책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예산안은 이재명 정부가 기획부터 편성까지 온전히 전 과정을 주도한 첫 번째 나라살림이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우리 정부가 온전하게 편성의 전 과정을 주관하여 국정 성과를 본격화하는 재정투자계획”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예산안 편성 직전 국무회의에서 “늘어난 재정 여력을 미래에 더 많은 열매를 수확하기 위한 씨앗으로 확실하게 삼아 생산적 재정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공격적인 투자 드라이브를 주문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 호황)로 벌어들인 유례없는 호황 세수를 종잣돈 삼아 인공지능(AI)과 청년·지방에 쏟아붓고, 1%대로 주저앉은 국가 잠재성장률을 단숨에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하지만 돈을 벌어오는 엔진도, 그 돈을 퍼붓는 엔진도 모두 ‘반도체’ 하나에 묶이면서 대한민국 경제가 거대한 단일 엔진에 의존하는 외줄 타기에 들어섰다는 우려도 교차한다.


‘시간을 돈으로 산다’…820조원 곳간 열어 AI·반도체에 집중 투하


정부의 선택은 거침이 없었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예산은 전년 대비 29.7% 늘어난 41조2000억원으로 전 분야 중 가장 가파른 증가율을 기록했다. R&D 예산도 11.2% 증액됐다.


핵심은 ‘인프라의 국가 선점’이다.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회계에 2조6000억원을 배정하고, 독자 AI 모델 개발을 위해 3조9000억원을 들여 최상급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 장을 국가가 직접 구매한다.


정부가 곳간을 과감히 연 배경에는 ‘지금 놓치면 영원히 뒤처진다’는 절박감이 깔려 있다. 박 장관은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생산성 정체로 구조적 저성장이 고착화될 수 있는 갈림길에서, 이번 회복의 모멘텀을 잠재성장률의 추세적 반등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계에서도 적극재정의 불가피론에 힘을 싣는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회복 속도 제고와 온기 확산에 재정의 촉매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잠재성장률이 1%대로 내려앉은 비상 상황에서 정부가 마중물을 부어 민간의 설비투자와 기술개발을 유도해야 한다는 논리다.


정부는 청년 지원책 역시 복지가 아닌 첨단산업 인프라의 연장선으로 재정의했다. 일자리·훈련 지원 대상을 72만2000명으로 늘리고 공공임대주택 10만6000가구를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박 장관은 “청년에 대한 지원은 미래 국가성장을 주도할 다음 세대의 역량을 키우는 전략적 투자”라고 설명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지난달 28일 세종정부청사 중앙동 브리핑실에서 열린 '2027년도 예산안 상세브리핑'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예산처
'원 엔진' 경제의 숙명…호황 끝나면 어쩌나


문제는 포트폴리오의 극단적인 쏠림이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 덕분에 내년 국세수입이 올해보다 194조2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정부의 세입의 원천과 세출의 종착지가 모두 반도체 생태계에 묶여 있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장비 확보와 실제 성장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도 숙제다. 대규모 GPU 확보가 실제 산업 현장의 생산성 향상과 서비스 수출로 이어지지 못하면 막대한 재정은 허공으로 사라진다.


김현철 한국인공지능협회장은 “문제는 돈이 아니다. 그 돈을 움직이는 ‘심사-집행-검증’의 메커니즘”이라며 “장비 구매 이후의 기업 선정과 사후 관리 체계가 핵심 과제”라고 지목했다.


소형모듈원자로(SMR), 양자, 첨단바이오 등 ‘포스트 반도체’ 분야에 배정된 41조4000억원 역시 기술개발에 머물지 않고 조달과 수출로 이어지는 사업화 속도가 생명이다.


지방 투자(33조원) 역시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산업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행력’을 관건으로 꼽았다.


문윤상 KDI 연구위원은 “이 기회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지는 결국 실행력에 달려 있다”며 “전력·용수 공급망과 전문인력, 정주 여건이 팹(공장) 가동 시점에 맞춰 완성돼야만 실질적인 지역 성장으로 남을 것”이라고 짚었다.


반도체 독주에 따른 양극화 경고도 나온다. 김현동 배재대 교수는 “반도체 산업에 편중된 경제 구조로 인해 물가 상승과 자산·소득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며 “늘어난 세수를 사회안전망 강화에도 분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62조원 ‘미래대응기금’의 딜레마와 교부금 칼질 갈등


정부가 내국세 증가분을 모아 신설한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은 이번 예산안의 최대 쟁점이다. 정부는 45조4000억원을 청년·지방·성장동력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12조5000억원으로 국채 발행을 줄였다.


나머지는 불황기 세수 결손에 대비하는 완충재로 비축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박 장관은 이를 “전략적 투자 플랫폼이자,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재정안정화 장치”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한 통장에 ‘투자 계정’과 ‘비상금 계정’을 동시에 넣은 설계를 두고 비판이 거세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풍년에 쌓아두고 흉년에 꺼내 써야 재정안정화 기능을 충족하는데, 전략투자로 매년 공격적인 투자를 동시에 하겠다고 하면 모순”이라고 직격했다.


투자·적립·채무 감축 간의 우선순위를 통제할 명확한 ‘수문 규칙(운용준칙)’이 필수적인 이유다. 김유찬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역시 “기금 사용에 대한 주기적인 성과평가가 필요하다”며 엄격한 외부 통제 장치를 주문했다.


기금 재원을 만들기 위한 107조6000억원의 지출 구조조정은 당장 국회 심의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박 장관은 “모든 재정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불요불급한 사업을 과감히 감축·폐지했다”고 밝혔지만, 칼끝이 지방교부세(30조5000억원)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32조5000억원)에 집중되면서 반발이 거세다.


이정환 한양대 교수는 “내국세 연동 방식의 교육교부금이 학령인구 감소에도 행사성 지출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개편의 당위성을 들었다.


그러나 교육 현장의 평가는 냉혹하다.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은 이를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식 제로섬 재분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현행 산식 대비 20조원 이상 줄어든 교육교부금과 목적성 투자로 전환된 지방재정이 현장의 반발을 어떻게 잠재울지가 핵심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한 경제전문가는 “결국 820조원 슈퍼예산의 성패는 돈의 크기보다 ‘확산의 범위’에 달렸다”며 “반도체가 채워준 곳간의 연료가 새로운 주력 산업과 지역 경제의 엔진을 실제로 돌려놓을 때, 비로소 정부의 ‘원 엔진 승부수’도 정당성을 얻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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