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로 온 ‘죽은 시인의 사회’…차인표의 뜨거운 ‘카르페디엠’ [헬로스테이지]
입력 2026.08.29 12:06
수정 2026.08.29 12:07
9월 13일까지 놀(NOL)씨어터 대학로 우리카드홀.
차인표 데뷔 33년 만에 첫 연극...존 찰스 키팅 역
영화의 감동을 대극장 무대로...현재 한국 교육 현실과 맞닿아
익숙한 명작을 다시 마주할 때 관객은 종종 원작의 향수를 기대한다. 하지만 지난 7월 개막한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는 단순한 과거의 재현을 넘어 현재 진행형의 화두를 객석에 던진다. 1989년 영화의 각본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톰 슐만이 직접 희곡으로 옮긴 국내 첫 정식 라이선스 공연이다. 무대는 1959년 가을, 미국 뉴잉글랜드의 명문 기숙학교 웰튼 아카데미다. 195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한 이 서사는 2026년 한국 사회의 교육 현실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스크린 속 로빈 윌리엄스가 남긴 강렬한 인상을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는 이번 공연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특히 이 작품으로 데뷔 33년 만에 처음 연극 무대에 선 차인표는 원작의 유쾌함이나 역동성을 무리하게 모방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이 가진 진중함과 교육자로서의 책임감에 초점을 맞춘다.
ⓒ미스트인터내셔널
차인표의 키팅은 철저히 절제돼 있다. 과장된 몸짓 대신 안정적인 시선 처리와 명확한 발음으로 대사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시를 좌표로 계량하는 교과서 서문을 찢게 하는 수업, 책상 위에 올라 교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는 여기서도 감정을 끌어올리는 대신 교사로서의 단단한 신념을 앞세운다. 낮고 분명한 목소리로 내뱉는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은 군더더기 없이 객석에 곧바로 가닿는다.
공간의 대비를 명확히 드러내는 무대 연출은 서사를 뒷받침한다. 웰튼 아카데미의 엄격한 규율을 상징하는 거대한 기둥과 어두운 톤의 목재 세트는 학생들을 짓누르는 억압적인 환경을 시각화한다. 반면, 학생들이 주체성을 찾기 위해 야밤에 모이는 동굴은 부드러운 조명과 입체적인 음향을 사용해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만들어낸다.
극을 이끌어가는 갈등은 어른들과 아이들의 대립에서 나온다. 학교의 전통과 규칙만을 앞세우는 교장 미스터 놀란, 아들이 의사가 되기만을 바라며 모든 것에 간섭하는 닐의 아버지 미스터 페리는 융통성 없는 기성세대를 대표한다. 이 두 인물은 남경읍과 박지일이 각각 1인2역으로 소화한다. 학교의 권위와 가정의 권위를 한 배우가 번갈아 입는 구조는, 소년들을 누르는 힘이 결국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마스트인터내셔널
반면 닐 페리, 토드 앤더슨 등 학생 역할을 맡은 젊은 배우들은 억눌린 환경 속에서 조금씩 자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어른들의 압박과 아이들의 반발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긴장이 쌓이고, 이 압력은 결국 닐에게 닥친 비극으로 터져 나온다.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는 개막 이후 높은 객석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제작사 마스트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개막 첫 주 객석 점유율은 99%였고, 8월 하순 기준으로도 90% 수준을 지키고 있다. 흥행의 배경에는 작품이 지닌 현실적 공감대가 자리한다. 아버지가 정해준 진로에 갇힌 닐의 갈등, 정해진 궤도에서의 이탈을 용납하지 않는 시스템은 오늘의 한국 교육을 고스란히 비춘다.
특히 학교의 강압에 순응하던 학생들이 마침내 책상 위로 올라가 “오 캡틴, 나의 캡틴”을 외치는 마지막 장면은, 원작 영화만큼이나 짙은 여운을 남긴다. 작품은 오늘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남의 기대에 맞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묻는다. 극장 문을 나서며 각자의 현재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공연은 9월 13일까지 놀(NOL)씨어터 대학로 우리카드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