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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낙관” 외친 부국제…거장 복귀 뒤 가려진 ‘사라진 허리’ [초점]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9.04 13:10
수정 2026.09.0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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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사남’ 대작 1편이 상반기 극장가 매출 44% 독식

‘A-리스트’ 도약한 영화제...거장 35편 증가, 중예산 상업영화는 4%대 위축

정부 지원책 확대됐지만 시장 반영까지 2~3년 시차

“한국영화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낙관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지난 1일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한국 영화계의 현주소를 이같이 진단했다. 정 집행위원장은 침체를 겪어온 한국 영화 산업을 언급하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한국 영화가 활황과 부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간 지점이 되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표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7월 발표한 ‘2026년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 매출액은 3702억원, 관객 수는 3737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1.7%, 74.9% 늘었다. 팬데믹 이후 상반기 최고치이며,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 상반기 평균 매출의 94.2% 수준까지 올라섰다.


부산국제영제 개막작 선정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 ⓒ부산국제영화제

그러나 영화제가 공개한 공식 상영작 구성은 집행부의 낙관론과 온도차를 보인다. 당해 한국 주류 상업영화의 흐름을 조망하는 대표 섹션인 ‘한국영화의 오늘’에 선정된 작품은 스페셜 프리미어 3편(‘사피엔스’ ‘세대유감’ ‘정가네’)과 파노라마 6편(‘수능, 출제의 비밀’ ‘여전히 찬란하게’ ‘자필’ ‘첫세계’ ‘최종면접’ ‘호프’)을 합쳐 총 9편에 불과하다. 영화제 측은 여기에 갈라 프레젠테이션의 정주리 감독 ‘도라’와 개막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김종관)를 포함해 “동시대 주류 한국영화”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셈해도 11편이다. 올해 공식 초청작 246편의 4%대 수준이다.


영화제의 대외적 위상은 분명히 올라갔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의 ‘A-리스트 영화제’로 공식 선정됐고, 경쟁부문 최고상인 ‘부산 어워드 – 대상’ 수상작에는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출품 자격이 새로 부여됐다. 이 자격을 가진 영화제는 칸·베를린·베니스·선댄스·토론토를 포함해 세계에서 여섯 곳뿐이며, 아시아권에서는 부산이 유일하다.


공식 초청작 59개국 246편은 지난해보다 5편 늘어 2019년 이래 최대 규모다. 이 가운데 월드 프리미어가 95편, 월드·인터내셔널 프리미어를 겸하는 작품이 105편이다. 세계적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아이콘’ 섹션은 지난해 33편에서 올해 35편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다만 커뮤니티비프 69편을 포함한 전체 상영 편수는 315편으로, 324편이던 지난해보다는 줄었다. 확장은 초청작 구성, 그중에서도 해외 거장 라인업에 집중돼 있다.


초청작의 세부 구성을 들여다봐도 산업 전반의 기초체력이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올해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으는 주요 한국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 홍상수 감독의 ‘눈 둘 데가 없네’, 나홍진 감독의 ‘호프’ 등이다. 이들 작품은 이미 해외 영화제를 거쳤거나 거장 개인의 독자적인 작가주의적 기반 위에서 제작된 영화들이다. 반대편 극단에는 신예 및 독립영화 진영 12편으로 채워진 ‘비전-한국’ 섹션이 자리한다. 결국 소수 거장의 신작과 저예산 독립영화 사이에서 산업의 허리를 지탱하던 중예산 상업영화 라인업은 사실상 실종됐다.


상반기 극장가 흥행 1위 '왕과 사는 남자' ⓒ쇼박스

실제 영화 산업의 지표도 중예산 라인업 공백과 결을 같이 한다. 상반기 흥행 1위 ‘왕과 사는 남자’ 한 편이 매출액 1631억원·관객 1691만명을 기록하며 역대 박스오피스 매출액 1위에 올랐다. 이는 상반기 한국영화 전체 매출의 약 44%에 해당한다. 관객이 돌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돌아온 관객이 향한 곳은 소수의 대작이라는 것이다.


이 결핍은 영화제 내부에서도 의제가 됐다. 영화제가 주최하는 ‘포럼 비프’는 첫 섹션 주제를 ‘극장가의 두 풍경: 사라지는 중예산 영화, 떠오르는 애니메이션’으로 잡고, 세부 세션 ‘사라진 허리, 중예산 영화는 국경을 넘을 수 있는가’를 편성했다. 집행부가 회복과 낙관을 말하는 사이, 같은 조직의 연구기구는 허리의 실종을 공식 테이블에 올린 셈이다.


정부와 영진위의 대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0억원 규모로 신설된 ‘중예산영화 제작지원’ 사업은 올해 460억원으로 네 배 이상 확대됐고, 영진위의 2026년 전체 지원 사업 예산은 전년 대비 320억원 늘어난 882억원으로 편성됐다. 지난 7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영진위와 주요 매니지먼트사들이 정부 지원 중예산 영화에 한해 배우 출연료를 순제작비의 10% 미만으로 책정하는 데 협력하기로 협약을 맺기도 했다.


다만 기획과 투자, 촬영, 개봉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제작 주기를 감안하면 이 조치들이 실제 개봉 편수로 나타나기까지는 최소 2~3년의 시차가 있다. 올해 부산의 라인업이 반영하는 것은 이미 몇 해 전에 결정된 투자 판단이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A-리스트 공인과 역대 최대 아이콘 라인업으로 축제의 외형을 갖췄고, 상반기 극장가는 팬데믹 이후 최고 성적을 냈다. 문제는 그 회복이 무엇으로 이뤄졌는가다. 한 편의 대작과 한 곳의 배급사가 만들어낸 수치는 다음 해에도 그런 작품이 나와야 반복된다. 그리고 그런 작품이 계속 나오려면 그 아래에서 다양한 규모의 영화가 꾸준히 기획되고 만들어져야 한다. ‘한국영화의 오늘’이 남긴 목록과, 영화제가 스스로 포럼 테이블에 올린 ‘사라진 허리’는 바로 그 층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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