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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의 무대 복귀, ‘왕 전문 배우’ 최수종의 ‘오이디푸스’ [헬로스테이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8.17 14:02
수정 2026.08.17 14:02

오이디푸스 역 최수종, 90분간 쏟아낸 처절한 절규

8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브라운관 속 최수종은 언제나 나라를 세우고 백성을 이끄는 굳건한 ‘영웅’이자 ‘성군’이었다. ‘태조 왕건’ ‘대조영’ ‘해신’ ‘고려거란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극사의 굵직한 군주들을 도맡아 온 배우 최수종이 2017년 이후 약 9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연극 '오이디푸스' ⓒ수컴퍼니

그가 다시 쓴 왕관의 무게는 이전과 사뭇 다르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오이디푸스’(연출 서재형, 작가 한아름)에서 최수종은 승리의 찬가 대신 피할 수 없는 신탁과 운명의 굴레에 짓눌려 파멸해 가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로 분했다.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할 것이라는 신탁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결국 그 운명의 덫에 걸려든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그린다.


최수종의 오이디푸스는 극 초반, 백성을 구하겠다는 결의에 찬 위엄 있는 군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역병의 원인이자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충격적인 진실에 다가설수록, 그의 눈빛은 확신에서 불안으로, 오만에서 공포와 처절한 고뇌로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브라운관에서 익히 보아왔던 특유의 단단한 카리스마가 인간 본연의 나약함과 맞물리며 캐릭터의 입체감을 극대화한다.


약 90분의 러닝타임 동안 최수종은 거의 무대를 떠나지 않고 극을 이끈다. 대극장 무대를 쩌렁쩌렁 울리는 정확한 딕션과 폭발적인 성량은 9년의 무대 공백을 무색하게 만든다.


연극 '오이디푸스' ⓒ수컴퍼니

특히 진실을 마주하고 파국에 이른 후반부 30분은 압도적이다. 굵은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면서도 한 글자도 뭉개지지 않고 객석 끝까지 꽂히는 대사 전달력은 관객들의 숨소리마저 멎게 한다. 신을 향한 분노와 운명을 피하지 못한 자책, 그리고 스스로 두 눈을 찌르는 극단적 선택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는 그의 몸부림은 전율 그 자체다.


서재형 연출과 한아름 작가 콤비는 군더더기 없는 빠른 템포와 간결하고 상징적인 무대 구성으로 고전의 무게감을 현대적 긴장감으로 탈바꿈시켰다.


여기에 무게감을 더하는 것은 베테랑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앙상블이다. 예언자 테레시아스 역의 박정자, 코린토스 사자 역의 남명렬을 비롯해 이오카스테 역의 서영희 등 무대를 꽉 채우는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는 최수종의 에너지와 팽팽하게 맞물리며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코러스들의 절도 있는 움직임과 리드미컬한 대사 역시 운명의 소용돌이를 시각·청각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한다.


연극 '오이디푸스' ⓒ수컴퍼니

비극의 끝자락, 피투성이가 된 채 어둠 속으로 내딛는 오이디푸스가 읊조리는 대사 “내 발아,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는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가슴에 긴 여운을 남긴다.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죗값을 온몸으로 짊어진 한 인간의 숭고한 의지가 최수종이라는 배우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역은 최수종과 양준모가 나눠 연기하고 이오카스테 역엔 서영희·임강희, 코러스장 역에 임병근·이형훈, 코린토스 사자 역에 남명렬·오찬우, 크레온 역에 강성진·최수형, 테레시아스 역에 박정자·나자명 등이 출연한다. 공연은 8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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