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보일러?...한대로 다 하는 '히트펌프' 뜬다
입력 2026.08.17 06:00
수정 2026.08.17 06:00
정부, 2035년까지 350만대 보급...국내 난방도 '전기화' 시동
삼성, 제주·아파트서 실증...LG 450가구 설치 전담, 경동나비엔도 시장 확대
행사 참석 내빈들이 'EHS 히트펌프 보일러' 적용 사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삼성전자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에는 보일러. 오랫동안 익숙했던 집안 냉난방 공식이 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외부 공기의 열을 활용해 난방과 온수를 공급하는 히트펌프 보급이 시작된 데다 냉방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은 제품도 등장하면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업체들이 국내 주거용 히트펌프 제품 공급과 실증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통 보일러 업체인 경동나비엔도 북미에서 히트펌프와 가스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냉난방공조(HVAC) 솔루션을 선보이며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히트펌프는 연료를 태워 열을 만드는 대신 외부에 존재하는 열을 옮기는 장치다. 냉매가 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원리를 이용하는데, 에어컨 역시 기본적으로 같은 원리다. 외부 공기의 열을 끌어와 물을 데우면 바닥난방과 생활 온수에 활용할 수 있고, 시스템에 따라 냉방까지 함께 구현할 수 있다.
국내 시장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배경에는 정부의 난방 전기화 정책이 있다. 정부는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를 보급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올해 제주 등을 중심으로 가정용 공기열 히트펌프 보급사업을 시작했다. 지원 대상 가구에는 설치비의 최대 70%를 지원한다.
도시가스 보일러가 주류인 국내와 달리 유럽에서는 건물 부문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히트펌프 시장이 먼저 성장했다. 해외에서 관련 사업을 키워온 국내 업체들도 최근 국내 제품 출시와 실증, 실제 가정 보급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국내 주거환경에 히트펌프를 적용하기 위한 실증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6월 제주 제주시 도남동 단독주택에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히트펌프 필드 테스트 랩'을 구축하고 'EHS 올인원'의 냉난방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검증하고 있다.
'EHS 올인원'은 실외기 한 대로 공기 냉방과 물을 이용한 바닥난방·급탕을 제공하는 제품이다. 여름철 냉방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온수 생산에 다시 활용하는 '열 회수' 기술도 적용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유럽에서 판매하는 이 제품의 국내 적용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아파트 적용을 위한 실증도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경기 용인 삼성물산 주거성능연구소에 EHS 올인원을 설치하고 실제 아파트와 동일하게 조성된 환경에서 냉난방·급탕 성능과 에너지 효율, 전력 소비량, 소음 등을 검증하고 있다. 확보한 데이터는 향후 공동주택용 히트펌프 보급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국내 판매용으로는 지난 4월 'EHS 히트펌프 보일러'를 출시했다. 공기열로 물을 데워 바닥난방과 온수를 공급하는 제품으로, 삼성전자에 따르면 35도 출수 조건의 계절성능계수(SCOP)는 4.9다. 지난 6월에는 제주 애월 단독주택에 첫 제품을 설치하며 실제 공급에도 들어갔다.
LG전자가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 받은 'LG 히트펌프 시스템 보일러'를 국내에 출시하며, 설치·유지보수 전문 엔지니어 역량도 강화하고 있다. LG전자는 설치 전문 엔지니어 4000여 명, 서비스 엔지니어 1000여 명을 확보하고 있으며 전문 인력 육성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LG전자
LG전자는 정부 보급사업을 통해 실제 가정 설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6년 제주 생활 속 히트펌프 보급사업' 1위 사업자로 선정돼 상반기 제주 전체 보급물량 1042가구 가운데 가장 많은 450가구의 설치를 전담한다. 지난달 31일에는 제주시 단독주택에서 공식 1호 현판식도 열었다.
보급 제품인 'LG 써마브이 히트펌프 보일러'도 외부 공기의 열로 물을 데워 난방과 온수를 공급한다. LG전자는 투입 전력 대비 약 4~5배의 열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며 기존 화석연료 보일러 대비 에너지 비용을 약 40~60%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기존 주택의 온수 배관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 교체 시공 부담도 낮췄다.
전통 보일러 업체인 경동나비엔도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올해 2월 미국 'AHR EXPO 2026'에서 전기 히트펌프와 가스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Navien HVAC System'을 공개했다. 평상시에는 전기 히트펌프를 활용하고 외부 기온이 크게 떨어져 난방이 부족할 경우 가스로 출력을 보완하는 방식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6월에는 북미 시장에 히트펌프 온수기 'HPWH'도 출시했다. 가스보일러와 온수기에서 쌓아온 기존 사업 기반을 유지하면서 전기와 가스를 함께 활용하는 제품군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모습이다.
국내 시장의 다음 시험대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으로 꼽힌다. 다만 단독주택보다 설비 설치 공간과 기존 배관 구조 등 제약이 큰 데다 초기 설치비 부담도 넘어야 할 과제다. 정부가 우선 단독·연립주택을 중심으로 보급사업을 시작하고 업체들이 공동주택 환경에서 별도 실증을 진행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히트펌프가 당장 모든 가정의 가스보일러를 밀어낼 가능성은 사실 아직까진 낮으나 정부가 난방 전기화를 정책 과제로 꺼내고 삼성·LG가 국내용 제품과 설치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진 분위기"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