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분리배출했는데"…왜 재활용은 실패하는가 [인터뷰]
입력 2026.08.13 06:00
수정 2026.08.13 06:00
이은애 CSR Impact 이사 인터뷰…회계사서 순환경제 전문가로
롯데케미칼서 '프로젝트 루프' 기획…폐페트병 순환 실험
높은 재활용률 뒤 원료·품질·가격·수요 모두 걸림돌
정부는 수거·시장 설계…기업은 기술·투자 나서야
이은애 CSR Impact 이사가 최근 출간한 '왜 재활용은 실패하는가'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은애 CSR Impact 이사
페트병 하나 버리려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물은 싹 비우고 라벨을 떼고 뚜껑도 분리한다. 라벨이 잘 안 떨어지면 손톱으로 끝을 긁어가며 떼기도 한다. 귀찮아도 '이 정도는 해야 제대로 재활용되겠지' 싶어서 하는 일이다.
그런데 정작 그다음은 알기 어렵다. 내가 버린 페트병은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선별되는지, 다시 원료가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분리배출함에 넣는 순간까지다. 애써 분리배출한 만큼 실제로 다시 쓰이고 있는지는 소비자 입장에선 알기 어렵다.
'열심히 분리배출하는데 왜 달라지는 것은 없을까'라는 이 질문을 7년간 현장에서 파고든 사람이 있다. 바로 이은애 CSR Impact 이사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이사와 함께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롯데케미칼에서 국내 폐플라스틱 선순환 프로젝트 '프로젝트 루프'를 기획·운영한 이 이사는 최근 책을 펴냈다. 프로젝트 루프를 진행하며 직접 마주한 재활용의 현실과 해법을 담은 '왜 재활용은 실패하는가'다.
회계사가 플라스틱 재활용을 파고든 이유
"안 되는 이유가 100가지니까 안 되는 거겠죠. 저도 알아요. 근데 그중에 되는 거 한 가지라도 해보자고요."
이 이사가 이 말을 꺼낸 것은 2018년 말 롯데케미칼에서 폐플라스틱 선순환 사업을 본격적으로 기획하던 때였다. 당시 이 이사는 사회공헌 업무를 맡고 있었다. 회사의 사업과 연결된 사회공헌을 고민하라는 요구를 받으면서 플라스틱을 처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 이사가 처음부터 플라스틱 전문가였던 것은 아니다. 미국공인회계사협회(AICPA) 자격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외부감사와 관리회계 컨설팅, 기업 전략과 연결재무제표 업무 등을 거쳤다. 이후 CSV(공유가치창출)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업무를 맡으면서 기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관심을 넓혔다.
이후 회사의 사업과 연결된 사회공헌을 고민하면서 플라스틱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이를 자원순환과 연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소와 사업부를 찾아갔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어렵고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에 부딪혔다. 1년 가까이 사업을 기획하는 동안 당초 수십억원 규모였던 계획은 10억원, 5억원, 4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이 이사는 가능한 것 하나부터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프로젝트 루프'다.
프로젝트 루프는 단순한 분리배출 캠페인이 아니었다. 롯데케미칼이 국내 폐플라스틱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추진한 프로젝트로 국내에서 수거한 폐페트병을 선별·세척해 재생원료로 만들고 이를 실로 뽑아 가방과 신발 등 제품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당시 국내에서 수거한 폐페트병으로 실을 뽑아 제품까지 연결하는 것은 성공 사례가 거의 없던 도전이었다.
이 이사는 수거업체와 선별업체, 재생원료 생산업체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밸류체인을 연결했다. 과정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영세 재활용업체들은 규모가 작은 재활용 시장에 대기업이 들어온다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러던 끝에 울산의 한 업체가 손을 잡고 이후 프로젝트가 1년여간 이어지며 진정성이 알려지자 "우리가 오해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프로젝트 루프는 재활용업체에 새로운 수요와 시장 기반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국내 폐페트병으로 만든 친환경 운동화가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의 오스트리아 국빈 방문 선물에 포함됐고 이후 김정기 작가와 파우치, 셰퍼드 페어리와 스카프, 롯데 자이언츠 친환경 유니폼 등으로 협업도 확대됐다.
처음에는 대기업 내부에서도 '안 되는 사업'으로 여겨졌지만 실제 순환고리를 만들어내면서 롯데의 대표적인 자원순환 프로젝트로 자리 잡은 셈이다.
재활용률은 높은데 왜 안 됐나
이은애 CSR Impact 이사가 네덜란드에서 폐페트병을 분리배출하고 있다. ⓒ이은애 CSR Impact 이사
한국의 재활용은 오랫동안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매립·소각이 중심이었고 재활용은 소규모 민간업체의 영역에 가까웠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도입으로 분리배출과 수거 체계는 갖춰졌지만 재생원료를 만들어 다시 산업에 투입하는 구조까지는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
이 이사는 "재활용을 세팅해서 원료화시키고 제품화하겠다는 구조보다는 이걸 처리하는 기업들한테 그냥 돈을 주는 것"에 가까웠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재활용률은 높아도 실제 순환은 한계가 있었다. 한국의 플라스틱 포장재 재활용률은 2020년 기준 87.4%지만 실제 제품 원료로 다시 쓰이는 '물질 재활용'과는 차이가 있다. 이 이사가 현장에서 부딪힌 문제도 결국 원료·물량·가격·수요였다. 지자체와 모아도 산업이 필요로 하는 물량을 맞추기 어려웠고 어렵게 만든 재생원료는 가격이 높아 수요처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저희는 솔직히 1만t, 2만t 얘기하는 기업이다 보니까 결국은 이게 안 맞는 거예요. 기업하고 지자체가 해도 양이 안 되니까 재활용에서 제일 큰 문제는 품질 이슈, 물량 이슈 그리고 그 모든 게 합해서 가격 이슈예요."
재활용업체의 시장도 안정적이지 않았다. 석유 원료 가격이 내려가면 제품 업체들이 값싼 버진 원료를 택하고 영세한 재활용업체는 버티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여기에 정책과 산업의 역할도 분리돼 있었다. 폐기물 관리와 재생원료 활용이 각각 다른 영역으로 움직이면서 '분리배출 이후 실제 산업 원료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국가 차원에서 설계한 경험이 부족했다는 게 이 이사의 진단이다.
정부가 먼저 판을 만들어야 한다
"그걸 왜 네가 고민하니?"
독일의 글로벌 화학기업 BASF 관계자가 폐플라스틱 원료 확보 방안을 고민하던 이 이사에게 던진 말이다. 당시 이 이사는 롯데케미칼이 재활용 제품을 만들려면 폐플라스틱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해 기업과 지자체가 직접 시범사업까지 진행하고 있었다.
BASF 관계자의 답은 달랐다. 기업은 모아진 폐플라스틱을 소재별로 어떻게 재활용할지 기술을 개발하고 투자하고 폐기물을 안정적으로 모으는 시스템은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도 처음부터 이런 체계를 갖춘 게 아니라 기업이 정부에 필요성을 알리고 협업하면서 하나씩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 이사가 보는 정부의 최우선 과제도 명확하다. 폐플라스틱이 소재별로 제대로 수거·선별되고 산업이 필요로 하는 물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시민에게 분리배출만 요구할 게 아니라 분리배출된 폐플라스틱이 실제 재생원료로 이어지는 뒷단까지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시장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재생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기업이 재생원료를 사용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수요와 공급이 안정적으로 형성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폐기물 관리와 재생원료 활용을 따로 떼지 않고 환경·산업 정책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독일과의 차이도 여기서 드러난다. 유럽은 탄소배출 규제가 산업 경쟁력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일찍부터 순환경제를 산업 과제로 접근했다. 정부가 방향을 잡고 기업과 협업하면서 페트병을 다시 순환시키는 구조를 구체적으로 설계했다. 이 이사는 "그러니까 정부가 먼저 나선 거죠"라고 설명했다.
기업 밖에서 '루프빌더'로
이은애 CSR Impact 이사가 플라스틱 순환경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은애 CSR Impact 이사
문제를 발견하고 해법까지 찾았지만 이 이사는 결국 롯데케미칼을 나왔다. 기업 소속으로 자원순환을 이야기할 때는 회사의 사업 이해관계로 받아들여지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플라스틱 순환에 대해 이야기해도 회사 입장에서는 롯데케미칼의 사업이나 이익을 위한 제안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어요."
석유화학업계의 불황도 영향을 줬다. 2023년 하반기부터 업계 적자가 이어지면서 기업 입장에서도 생존이 우선순위가 됐고 자원순환에 계속 역량을 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이 이사는 설명했다.
결국 이 이사는 기업 안에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더 만드는 것보다 기업 밖에서 구조적 문제를 알리고 정부·기업·시민을 연결하는 역할을 택했다. 이 이사가 스스로를 '루프빌더(LOOP Builder)'라고 부르는 이유다. 끊어진 순환고리를 찾아 각 주체가 해야 할 일을 연결하고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역할이다.
회사를 나온 뒤에는 프로젝트 루프를 함께했던 이해관계자들의 추천으로 강의 요청이 이어졌고 대학생과 교수, 공공기관, 기업 등 다양한 주체를 만나 자원순환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화장품·우산·폐책자 등 다양한 재활용 프로젝트의 방향을 제시하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강의와 글쓰기를 통해 재활용을 개인의 실천이 아닌 산업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알리고 기업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자원순환·ESG 컨설팅을 진행할 계획이다. 지역이나 기업에서 작은 테스트베드를 만들고 성과를 데이터로 검증한 뒤 다른 지역과 산업으로 확산하는 것도 목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