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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크레이지 아케이드"

박상준 기자 (psj96@dailian.co.kr)
입력 2026.08.12 14:56
수정 2026.08.12 15:03

13일 오전 9시 서비스 종료…2002년 최고 동접 35만명 '국민게임'

서비스는 끝나도 크레이지파크 IP는 계속

넥슨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올린 '크레이지 아케이드' 서비스 종료 공지문.ⓒ넥슨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PC방으로 달려가 물풍선을 놓았다. 한 대의 컴퓨터 앞에 둘이 붙어 앉아 키보드를 나눠 쓰기도 했다. 상대를 물방울에 가둔 뒤 터뜨리는 간단한 게임이었지만 한 판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한 판만 더"가 이어졌다.


200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익숙한 넥슨의 장수 온라인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가 25년의 서비스를 마친다. 넥슨은 오는 13일 오전 9시 크레이지 아케이드 서비스를 종료한다.


2001년 서비스를 시작한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물풍선을 설치해 상대를 물방울에 가두는 간단한 대전 방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다오·배찌·디지니 등 귀여운 외모의 캐릭터들을 앞세워 빠르게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이듬해인 2002년 최고 동시접속자 수 35만명을 기록했고, 출시 후 수년이 지난 2006년과 2008년 겨울에도 동시접속자 수가 10만명을 넘겼다.


당시 크레이지 아케이드만의 승부수는 캐주얼함이었다. 방향키로 움직이고 물풍선을 내려놓는 것만 알면 누구나 게임을 시작할 수 있었다. 동시에 상대의 이동 경로를 읽고 연쇄 폭발을 만들거나 물줄기를 피해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승부가 갈리는 등 긴장 요소도 갖췄다.


특히 한 대의 PC에서 두 명이 함께 게임할 수 있었던 '2P 플레이'는 크레이지 아케이드만의 추억을 만들었다. 친구나 형제가 같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나눠 잡던 모습은 당시 PC방과 가정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기자의 인생 첫 게임 역시,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집에 놀러온 동네 친구가 설치해준 크레이지 아케이드에서의 2P 플레이였다.


많은 이들의 추억이 서린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서비스 종료 소식이 들리자, 한동안 게임을 떠나 있던 이용자들도 다시 게임으로 돌아오는 현상도 나타났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마지막으로 함께 게임할 사람을 모집하거나 어린 시절 즐겼던 맵을 다시 찾아가는 모습이 이어졌다. 오랫동안 모아온 희귀 아이템을 다른 이용자에게 나눠주고, 공들여 꾸민 캐릭터와 게임 화면을 캡처해 남기는 이용자도 있다.


어린 시절 사용했던 계정을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아 당시 기록을 확인했다는 사연도 나왔다. 초등학생이었던 이용자들은 어느새 직장인과 대학생이 됐지만, 마지막을 앞둔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모습은 기억 속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반응이다.


크레이지 아케이드 공식 홈페이지 자유 게시판에는 게임과 작별을 아쉬워하는 이용자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크레이지 아케이드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아쉬움이 큰 만큼 서비스 종료를 재고해달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용자들은 공식 게시판 등에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도 좋으니 서버만 유지해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서비스 종료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 운동도 벌어졌다.


10대부터 20년 동안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플레이 했다는 한 이용자는 "아이가 현재 3살이다. 좀 더 자라면 함께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2P로 즐기는 게 버킷리스트였다"며 "생각보다 훨씬 일찍 서비스 종료 소식이 들려와 마음이 복잡하고 아쉽다"고 말했다.


넥슨 역시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떠나보내기까지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는 입장이다.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성공은 넥슨에도 의미가 컸기 때문이다.


당시 '바람의나라' 등 역할수행게임(RPG)으로 이름을 알렸던 넥슨이 캐주얼 게임에서도 대중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다오와 배찌를 비롯한 캐릭터는 이후 2004년 출시된 '카트라이더'와 '버블파이터' 등으로 무대를 넓히며 넥슨의 대표적인 '크레이지파크' IP(지식재산권)를 형성했다.


그러나 수익을 내야 하는 사업체로서 '상징성'과 '수익성'을 저울질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결국 내부적으로 장기간 논의를 거친 결과 앞으로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서비스 종료를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25년 된 게임의 퇴장은 넥슨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포트폴리오 재정비와도 맞물린다. 지난 2월 취임한 패트릭 쇠더룬드 넥슨 회장은 취임 이후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비롯해 '버블파이터' 서비스 종료, 카잔 DLC 개발 취소 등 사업성에 따라 프로젝트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수익성과 성장성을 따지는 넥슨의 새로운 경영 기조 속에서 20년 넘은 장수 게임 역시 이별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크레이지 파크 IP 등장인물들.ⓒ넥슨

그렇다고 이번 서비스 종료가 곧 크레이지파크 IP와의 작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강대현 넥슨코리아 공동대표는 지난 6월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6'에서 크레이지 아케이드에 대해 "게임 자체는 종료될 수 있지만 IP는 계속 살아 있고 이어질 수 있도록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게임이 존재하느냐 아니냐보다 이 맥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 즐길 수 있는 거리들이 존재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이용자들이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다른 형태로 계속 접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이플스토리 월드'에서 서비스 중인 클래식 게임과 같은 방식도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언급했다.


같은 크레이지파크 IP에서 출발한 '카트라이더 클래식' 역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원작 카트라이더와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서비스는 끝나지만, 지난 20여년간 쌓인 캐릭터와 세계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닌 셈이다.


13일 오전 9시가 되면 더 이상 크레이지 아케이드에서 새로운 한 판을 시작할 수 없다. 그래도 물풍선을 터뜨리던 기억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PC방에서 친구와 소리를 지르고, 형제와 키보드를 나눠 잡고, 방학이면 자연스럽게 접속했던 시간은 이미 한 세대의 게임 경험으로 남았다.

박상준 기자 (psj9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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