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의 'IT 기업' 주문 현실로…현대차그룹, 현장에 AI 심었다
입력 2026.08.12 13:53
수정 2026.08.12 13:53
임직원 80% H 챗 프로 활용…사용자 3만명 넘어
충돌시험 분석 90% 단축…제조·정비 현장까지 확산
비전 AI 연 52억 비용 절감…피지컬 AI 영역으로 확대
진은숙 현대차·기아 ICT담당 사장이 12일 서울 양재 본사에서 열린 ‘AX 성과 발표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IT 기업보다 더 IT 기업 같은 회사가 되어야 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18년 던진 주문이 8년 뒤 전사 인공지능(AI) 전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12일 진은숙 현대차·기아 ICT담당 사장은 “현대차그룹에 AI 전환은 더이상 계획이 아니다”라며 “이미 조직 전반에 내재화된 경쟁력이자 실제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이날 현대차그룹은 서울 서초구 양재 본사에서 ‘현대차그룹 AX 성과 발표회’를 열고 2019년부터 추진해 온 디지털 전환(DX)과 AI 전환(AX) 과정, 현업 적용 성과를 공개했다.
AI 열풍 전부터 ‘기초공사’…개인 지식을 회사 자산으로
현대차그룹이 DX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바꾼 것은 일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자료를 메일이나 메신저로 주고 받으면서 업무 과정과 결과물이 개인 PC나 메일함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의 경험과 지식을 회사 자산으로 축적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2022년부터 지라, 두레이, 컨플루언스 등 업무 관리·지식 공유 플랫폼을 순차적으로 도입했다. 마이크로소프트365를 통해 글로벌 사업장의 협업 환경도 하나로 연결했다.
연구개발, 생산, 품질, 판매 등 곳곳에 흩어진 데이터는 ‘글로벌 원 데이터 파이프라인’으로 표준화했다. 데이터가 어디서 만들어지고 어떻게 연결되는지 추적할 수 있도록 해 AI가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이다.
진은숙 사장은 “시스템마다 서로 다른 포맷과 의미로 데이터를 관리하면 한 곳에 모아도 연결돼 흐르지 않는다”며 “데이터 표준화는 3년, 5년, 10년의 긴 호흡으로 계속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이 같은 기반 위에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인 ‘H 챗 프로’를 도입했다. H 챗 프로는 보안이 확보된 환경에서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 다양한 외부 생성형 AI 모델을 선택해 활용할 수 있는 그룹 전용 플랫폼이다.
이상홍 정보보안2실 상무는 “H 챗 프로는 특정 조직만 쓸 수 있게 만든 도구가 아니라 임직원이면 누구나 실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전사에 열어놓은 것이 특징”이라며 “지난 7월 기준 일반·연구직 임직원의 80% 가량이 H 챗 프로를 통해 외부 LLM을 실제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용자 수는 3만명을 넘어섰다.
최근에는 현업 직원이 ‘바이브 코딩’을 활용해 필요한 웹페이지나 AI 에이전트를 직접 만드는 사례도 등장했다.
진은숙 사장은 “현업에서 직접 만든 웹페이지로 원하는 요구사항을 보여주면서 IT 부서와의 협의 시간이 대폭 줄었다”며 “소통과 협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충돌 시험 분석 90% 단축…공장·정비 현장까지 AI 확산
(왼쪽부터) 장영석 현대차 제네시스고객경험팀 책임매니저, 진은숙 현대차·기아 ICT담당 사장, 이상홍 정보보안2실 상무, 서창윤 웹프론트엔드개발팀 책임매니저가 12일 서울 양재 본사에서 열린 ‘AX 성과 발표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AI는 실제 현장의 업무 방식도 바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양연구소의 ‘충돌안전 AI 어시스턴트’는 여러 시스템에 흩어진 충돌 시험 결과와 이미지, 연구 자료를 한 곳에서 검색하고 비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신선 현대차 책임연구원은 “가장 큰 변화는 개인의 숙련된 경험에만 의존하던 지식을 조직 전체의 자산으로 바꾸고 있다는 점”이라며 “예전에는 선임자의 과거 경험에 기대 판단했다면 이제는 데이터를 근거로 빠르게 검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사례 탐색과 분석 자료 검토에 걸리는 시간은 약 90% 줄었다. 제조 현장에서는 차량 식별번호(VIN)를 AI가 판독해 실제 차량과 시스템 정보를 실시간으로 대조한다. 현재 국내 현대차·기아 전 공장을 비롯해 미주·유럽·인도·아시아 태평양 등 약 70개 거점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연 52억4000만원을 절감했다.
생산 라인의 대차 이동 경로도 AI가 최적화한다. 과거에는 설비 오류 등으로 대차 순서가 꼬이면 작업자가 복구하는 데 최소 10분에서 최대 50분까지 걸렸지만, 강화 학습을 활용해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최적 경로를 자동으로 찾도록 했다.
해외 정비 현장에서는 오류 코드나 차량 증상을 분석해 원인과 대응 방안을 제시한다. 정비 대응 시간은 약 42% 줄었으며, 연말까지 글로벌 6000여개 딜러와 3만명 이상의 정비사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앞으로 차량과 로보틱스, 제조·서비스 현장 등 AI가 실제 물리적 세계와 결합하는 ‘피지컬 AI’ 영역으로 적용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진은숙 사장 또한 “우리의 목표는 AI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며 “전 세계에서 AI를 가장 제대로 활용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