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비즘 켜고 취켓팅…아이돌 팬만 알던 ‘덕질 기술’이 예능으로 [가요 뷰]
입력 2026.08.10 06:37
수정 2026.08.10 06:37
티켓팅·떼창·포카깡까지 서바이벌 미션으로
공연·스포츠로 넓어진 ‘최애’ 문화, 팬덤 문법도 대중화
아이돌 팬들에게 익숙했던 이른바 ‘덕질의 기술’이 서바이벌 예능의 경쟁 종목이 됐다. 팬덤 내부에서 사용되던 언어와 행동 방식이 대중이 이해하고 즐기는 콘텐츠의 문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팬덤스테이지’ 1회 썸네일 ⓒ픽시드
8일 유튜브 채널 픽시드에 따르면 지난 5일 공개된 ‘팬덤스테이지’ 1회는 이날 오후 9시 기준 조회수 60만회를, 2회는 24만회를 넘어섰다. 지난달 29일 웨이브에서 먼저 공개된 ‘팬덤스테이지’는 아티스트가 아닌 팬이 출연하는 팬덤 서바이벌 예능이다.
지오디(god)의 팬지오디를 비롯해 빅뱅(BIGBANG)의 브이아이피(VIP), 샤이니(SHINee)의 샤이니월드, 엑소(EXO)의 엑소엘, 몬스타엑스(MONSTA X)의 몬베베, 세븐틴(SEVENTEEN)의 캐럿, 데이식스(DAY6)의 마이데이, 트와이스(TWICE)의 원스,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의 모아, 라이즈(RIIZE)의 브리즈 등 1세대부터 5세대까지 10개 팬덤에서 4명씩 총 40명이 참가했다.
1회에서는 참가자 소개에 이어 첫 번째 미션인 ‘티켓팅 전쟁’이 펼쳐졌다. 실제 KSPO돔(옛 올림픽체조경기장) 공연을 예매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 미션으로, 참가자들은 5분 동안 1인당 최대 2장의 좌석을 확보해야 했다. 1만 20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실제 예매할 수 있는 좌석은 64석뿐이었다. 티켓 오픈 시각이 다가오자 참가자들은 예매창과 서버 시간을 알려주는 ‘네이비즘’을 함께 띄웠다. 대기 순서를 통과해 좌석을 고르고 보안문자를 입력한 뒤 결제까지 마쳐야 예매 성공으로 인정됐다. 여기에 결제 취소로 다시 풀린 좌석을 잡는 ‘취켓팅 전쟁’이 이어졌다.
두 번째 미션은 ‘랜덤 응원 챌린지’였다. 남은 팬덤의 대표곡을 무작위로 섞은 5분 분량의 음악에 맞춰 참가자들이 러닝머신 위에서 뛰며 응원법을 외치는 방식이다. 3분이 지나면 러닝머신 속도가 높아지고, 응원법을 틀리거나 타이밍을 놓칠 때마다 오답이 누적된다. 2회에서는 샤이니월드와 브리즈의 도전이 공개됐으며, 다음 회 예고편에는 나머지 팬덤의 응원 챌린지와 앨범을 개봉해 원하는 포토카드를 찾는 세 번째 미션 ‘포카깡’이 담겼다.
‘팬덤 전쟁’이라는 말에서 떠올리기 쉬운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경쟁이다. 1990년대 아이돌 팬덤을 다룬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는 흰색 우비를 입은 H.O.T. 팬과 노란색 우비를 입은 젝스키스 팬들이 가요 시상식 공개방송 입장을 앞두고 빗속에서 대치하다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팬덤을 상징하는 색깔로 편을 나누고 상대 팬덤과 충돌하는 모습은 당시 대중매체가 묘사한 ‘팬덤 전쟁’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물리적인 충돌이 그 시절 팬덤 문화의 전부였던 것은 아니지만 팬덤이 대중매체에 등장할 때는 가수를 향해 소리를 지르거나 다른 팬덤과 대립하는 모습이 주로 부각됐다. 팬 개인이 활동 과정에서 어떤 경험과 능력을 쌓았는지는 상대적으로 관심 밖에 머물렀다.
팬덤스테이지 ⓒ벌스워크
‘팬덤스테이지’는 경쟁의 대상을 팬덤의 규모나 아티스트의 인기 대신 팬 활동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로 옮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활동이 별도의 긴 설명 없이 예능의 규칙과 웃음 소재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취켓팅과 포카깡 등은 본래 아이돌 팬덤 내부에서 주로 사용되던 말이다. 이제는 팬이 아닌 시청자도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소재가 됐고, 한 편의 프로그램을 끌고 갈 수 있게 됐다.
이는 아이돌 팬덤 문화가 더 이상 일부 팬들만의 하위문화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토카드다. 앨범에 무작위로 들어 있는 멤버의 카드를 모으고 교환하던 문화는 프로스포츠에서도 낯설지 않다. 프로야구 구장에는 선수의 사진이 담긴 포토카드를 즉석에서 뽑는 기계가 설치됐고, 팬들은 경기장을 배경으로 카드를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한다. 랜덤으로 제공되는 선수 카드를 모으거나 ‘최애 선수’의 굿즈를 꾸미는 모습도 자연스러워졌다.
팬의 역할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가수와 관객, 선수와 관중처럼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비교적 명확했다. 그러나 지금의 팬은 완성된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연 영상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며, 입문자를 위한 정보를 정리하거나 최애의 매력을 알리는 발표 영상과 덕질 브이로그를 만들어 공유한다. 좋아하는 대상을 알리는 홍보자이자 또 다른 콘텐츠 생산자로 기능하는 것이다.
팬덤 문화의 대중화란 팬들이 만들어온 언어와 놀이 방식을 팬이 아닌 사람도 알아보고 즐길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한때 무대 아래에서 환호하는 관객으로만 여겨졌던 팬은 이제 자신의 기술과 문화를 들고 무대에 오르고, 그 문화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