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년 기다린 열흘의 빛…동화 속 반딧불이 밝힌 에버랜드
입력 2026.08.09 08:30
수정 2026.08.09 08:30
1년 키워 열흘 남짓 빛나는 반딧불이…올여름 무료 개방에 3만명 몰려
나이트 사파리·라온·야간 공연까지…에버랜드, 여름철 '밤' 모객 강화
6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 '한여름밤의 반딧불이 축제' 현장. ⓒ임채현 기자
불이 꺼지자 눈앞이 완전한 어둠으로 변했다. 잠시 뒤 풀숲 한쪽에서 연둣빛 점 하나가 깜빡였다. 또 하나, 다시 하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수록 보이지 않던 불빛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 가까이 머물던 빛이 어느 순간 허공으로 떠올라 머리 위를 지나가기도 했다. 어느새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가 제각기 다른 박자로 빛을 내며 공간을 채웠다.
지난 6일 찾은 경기 용인 에버랜드의 '한여름밤의 반딧불이 축제' 현장이다. 기자 역시 살아 있는 반딧불이를 실제로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사진과 영상으로 익숙했던 작은 불빛이 눈앞을 떠다니는 모습은 사뭇 달랐다. 마치 동화 속 숲 한가운데 들어온 듯한 풍경이었다.
반딧불이는 낯설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곤충이다. 반딧불 빛으로 글을 읽었다는 '형설지공(螢雪之功)'의 이야기부터 '개똥벌레'라는 친근한 이름, 같은 제목의 옛 노래까지 우리 기억 곳곳에 남아 있다. 정작 실제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사람도 적지 않다.
한때 사람 사는 곳 가까이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일부러 찾아가도 만나기 쉽지 않다. 깨끗한 물과 습지, 충분한 먹이, 어두운 밤 환경 등이 모두 필요한 반딧불이가 환경 변화에 민감한 탓이다. 생태계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환경지표 곤충으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딧불이.ⓒ삼성물산
'개똥벌레'가 만든 작은 방…1년 기다려 열흘을 빛낸다
반딧불이 체험은 곧바로 암실로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다. 관람객들은 먼저 주키퍼의 설명과 영상을 통해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는 한살이와 발광 원리 등을 접한다.
체험 공간 한쪽에서는 작은 모래 덩어리처럼 생긴 '개똥무덤'도 눈에 들어왔다. 배설물과 관계있는 것은 아니다. 반딧불이 애벌레가 물 밖으로 나온 뒤 스스로 모래와 흙을 이용해 만든 작은 방으로, 그 안에서 번데기 시기를 보낸 뒤 성충으로 나온다. '개똥벌레'라는 이름만 알고 있던 곤충의 삶이 눈앞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대목이었다.
암수의 불빛에도 차이가 있다. 암컷의 발광마디가 한 마디인 데 비해 수컷은 두 마디여서 빛나는 면적이 더 넓고 상대적으로 밝게 보인다. 실제 암전된 체험장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개체들이 눈에 띄었다.
문제는 이 짧은 시간을 얻기까지 꼬박 1년이 걸린다는 점이다. 반딧불이는 알에서 부화한 뒤 애벌레 상태로 물속에서 다슬기 등을 먹으며 9~10개월을 보낸다. 이후 땅으로 올라와 번데기 과정을 거쳐 성충이 된다. 반면 성충으로 살아가는 기간은 열흘 남짓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버랜드는 관람객들이 몇 분간 마주하는 수천 개의 불빛을 위해 사실상 1년 내내 반딧불이를 키운다. 1998년 인공 번식에 성공한 이후 28년간 사육 노하우를 축적했고, 애벌레의 동면 기간을 조절하는 저온 저장 기술과 축제 시기에 맞춰 성충이 되도록 관리하는 기술, 먹이가 되는 다슬기 치패 번식 기술 등을 활용하고 있다. 축제장에서 볼 수 있는 반딧불이 역시 모두 에버랜드 주키퍼들이 직접 기른 개체다.
기존 유료 프로그램, 올해 전면 무료 개방
올해는 이 짧은 순간을 볼 수 있는 문턱도 낮췄다. 에버랜드는 기존 유료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했던 반딧불이 체험을 올여름 전면 무료로 개방했다. 입장객이라면 별도 이용료 없이 현장 줄서기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
반응은 빠르다. 지난달 24일 문을 연 이후 보름 만에 약 3만명이 체험장을 찾았다. 한 번 관람한 뒤 가족이나 연인을 데리고 다시 찾는 'N차 관람'도 이어지고 있다는 게 에버랜드 측 설명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책이나 영상 속에서 보던 생물을 직접 만나는 생태교육의 장이고, 어른에게도 반드시 '추억 여행'인 것만은 아니다. 이름과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실제 모습을 본 적은 없는 세대가 있기 때문이다.
썸머 나이트 사파리.ⓒ삼성물산
폭염 피해 '밤'으로…나이트 사파리 50일간 12만명
반딧불이가 에버랜드의 조용한 여름밤을 만든다면 사파리월드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올여름 에버랜드가 야간 콘텐츠를 늘리는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폭염으로 한낮 야외 활동의 부담이 커지면서 비교적 기온이 내려가는 저녁 시간대로 방문객을 분산해 체류 시간을 늘리고자하는 전략이다.
'썸머 나이트 사파리'는 오후 9시까지 운영된다. EV 버스를 타고 사자와 호랑이, 불곰 등 맹수를 관찰할 수 있다. 한낮 더위에 활동량이 줄어든 동물들이 기온이 낮아진 저녁에는 보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그동안 나이트 사파리는 주로 가을철에 운영됐지만 올해는 늘어난 저녁 나들이 수요를 겨냥해 운영 시기를 앞당겼다. 반딧불이 축제와 마찬가지로 별도 이용료도 받지 않는다. 운영 50일간 약 12만명이 다녀갔다.
아기 사자 라온이 담당 주키퍼의 품에 안겨 있다. ⓒ임채현 기자
지난 5일부터는 에버랜드에서 8년 만에 태어난 수컷 아기 사자 '라온'도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지난 6월 태어난 라온은 어미 사자가 새끼를 돌보지 못하면서 주키퍼들의 인공포육으로 성장했다. 현재 몸무게는 5.5㎏을 넘어섰다.
야간 볼거리는 동물에 그치지 않는다. 카니발 광장에서는 K팝과 EDM, 물줄기를 결합한 워터 디제잉 파티 '밤밤 썸머 나이트'가 열리고 멀티미디어 불꽃쇼와 문라이트 퍼레이드도 이어진다.
오는 14일부터 16일까지 광복절 연휴에는 밤 11시까지 연장 운영한다. 오후 6시부터 입장할 수 있는 야간권을 운영하고, 캐리비안 베이 이용 당일 에버랜드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투파크(2Park)' 이벤트도 진행한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올여름 고객들이 무더위를 피해 보다 쾌적하게 즐길 수 있도록 야간 콘텐츠를 확대하고 있다"며 "반딧불이를 비롯해 동물과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여름밤의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