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병원 오는 길부터 고비…'폭염'에 더 취약한 환자들
입력 2026.08.07 10:55
수정 2026.08.07 15:05
폭염에 기존 질환 악화로 의료기관 찾는 환자들 증가
고령층일수록 체온조절 능력 저하로 건강 위험 커져
“폭염은 재난…연령 불문하고 생활수칙 지켜야”
6일 오후 1시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외래 대기공간에서 환자들이 TV에 방송되는 폭염 관련 날씨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서울 낮 최고기온이 38도에 육박하며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진 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에는 무더위를 뚫고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대중교통에서 내려 병원까지는 5분 남짓. 평소라면 금세 지나갈 거리지만 폭염특보가 내려진 이날은 그 몇 분조차 환자들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병원 안으로 들어온 한 고령 환자는 곧장 진료실로 향하지 못한 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 뒤에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보라매병원은 지하철 신림선과 연결돼 있고 병원 바로 앞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어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이날은 병원까지 이어지는 짧은 동선마저 폭염에 노출되는 고통이 심했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에서는 열기가 그대로 올라왔고, 건물 안으로 들어선 뒤에도 한동안 얼굴의 열기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6일 오후 1시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에 내원한 환자들이 대기공간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폭염 속 병원을 찾은 환자들 가운데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거나 물을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기록적인 더위에 지친 기색을 보이는 환자들도 적지 않았다. 한 환자는 “밖이 너무 더워 잠시만 걸어도 진이 다 빠졌다”고 말했다.
폭염의 영향은 응급실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응급실이 온열질환 환자를 치료하는 공간이라면, 외래에서는 기존 질환에 기록적인 더위까지 겹친 환자들이 의료진을 찾고 있었다. 병원을 찾은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만, 환자들은 연일 이어진 폭염으로 이동 과정에서 큰 피로를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병원 관계자는 “고령 환자들은 폭염 속 이동만으로도 체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며 “특히 폭염이 이어질 때는 이동 과정에서 어지럼증이 심해지거나 탈수가 진행된 상태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폭염, 온열질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범조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노인진료센터장)가 6일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온열질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실제로 폭염은 단순히 열사병이나 열탈진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심혈관질환과 신장질환, 당뇨병 등 기존 질환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7일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 5월 15일부터 8월 5일까지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는 2665명으로, 이 가운데 60세 이상은 1145명(42.9%), 80세 이상은 329명(12.3%)이었다. 추정 사망자 23명 중 80세 이상이 13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오범조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노인진료센터장)는 고령층은 노화로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져 폭염에 더욱 취약하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은 더위를 느끼면 땀을 흘리거나 체온을 낮추려는 반응이 나타나지만, 고령층은 이런 기능이 둔해 체온이 위험한 수준까지 오른 뒤에야 증상을 인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심혈관질환이나 고혈압, 협심증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폭염으로 인한 탈수와 체온 변화가 기존 질환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이뇨제나 일부 혈압약을 복용하는 경우에는 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오 교수는 “초기에는 어지럼증이나 두통, 무기력감 정도로 시작하지만 심해지면 의식 저하나 열경련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목이 마르다고 느낄 때는 이미 탈수가 상당 부분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갈증을 느끼기 전에 수분을 꾸준히 섭취하고, 한낮 외출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권장된다”고 말했다.
혼자 생활하는 고령층은 폭염에 더욱 취약하다. 더위로 인한 신체 부담을 제때 인지하지 못하거나 의식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스스로 대처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족이나 이웃이 안부를 자주 확인하고, 냉방시설이 있는 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돕는 등 사회적 연결망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오 교수는 설명했다.
다만 폭염 위험이 고령층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젊고 건강한 사람도 자신의 체력을 과신한 채 무더운 시간대 야외에서 운동하거나 장시간 활동할 경우 탈수와 체온 상승으로 온열질환에 노출될 수 있다. 실제 마라톤이나 러닝 등 야외 운동 중 탈진해 응급실을 찾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오 교수는 “젊은 사람들은 건강하다는 이유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며 “하지만 폭염 속에서는 누구나 온열질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만큼 무리한 운동이나 장시간 야외활동은 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