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단편집→거장의 앤솔로지, 가볍지만 유연한 ‘취향 저격’
입력 2026.07.30 14:42
수정 2026.07.30 14:42
여름 겨냥한 소설집부터 대세 취미 다룬 앤솔로지 등
짧지만, 시의적절한 소재로 유도하는 관심
서늘하고 기묘한 분위기의 기담집부터 거장의 세계관을 무겁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앤솔로지까지. 최근 출판 시장에서는 가볍지만, 시의적절한 주제로 취향을 파고드는 기획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소설집 ‘혼모노’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성해나 작가는 최근 기담집 ‘인비인’을 출간해 여름 어울리는 서늘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선보였다. 기담 형식의 단편 아홉 편을 통해 공포물 마니아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인비인' ·'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
‘혼모노’가 지역, 정치, 세대 등 우리사회를 가르는 다양한 경계를 들여다보며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면, ‘인비인’을 통해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오가며 서늘함을 자아낸다. 심각한 공포보다는 나와 무관하지 않은 존재, 이야기를 통해 서늘한 분위기를 조성, 색다른 공포를 선사한다. 여름, 어울리는 공포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아홉 편의 이야기에 독자들의 호응이 이어진다.
반대로, 청량한 분위기로 여름 독자들을 겨냥하기도 한다. 여름에 어울리는 소설 2편을 담은 ‘오렌지빛 해변의 소설’은 여름 특유의 시간 감각을 반영하며 지금 독자들을 겨냥한다.
권혜영 작가의 ‘띠부띠부 랜덤 슬라이드’는 퇴사 이후 실업급여에 의존해 살아가는 ‘나’의 느슨하고 무중력에 가까운 시간을 따라가는 작품으로, 출판사는 이 소설에 대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반복 속에서 미묘하게 다른 결과가 발생하는 세계. 무의미하고도 집요한 반복은 여름이라는 계절이 만들어내는 느슨한 시간의 감각과 겹친다”라고 설명했다.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뒤 공원을 배회하던 ‘나’가, 매일 같은 자리에서 줄넘기를 하는 노인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는 김혜진 작가의 ‘줄넘기’에 대해선 “끝날 것을 알면서도 계속되는 반복, 그 안에서만 가능한 변화. 단순한 운동은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작동하며 여름 한가운데에서 경험되는 시간의 방식, 느슨하지만 지속되고 무의미해 보이지만 어딘가로 이행하는 시간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즉 휴가, 여행, 긴 낮과 짧은 밤 등 일상의 리듬이 느슨해지고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쉬운 여름의 특징을 작품에 반영, 시의적절한 소재로 관심을 유도 중이다.
지금 독자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시도도 있다. 김연수, 노지양 작가가 함께 쓴 ‘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은 ‘달리기’의 순간들을 기록한 앤솔로지다. 러닝 트렌드가 이어지는 현재. 러닝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러닝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들의 선택도 이끌고 있다.
출판사 또한 “달리기가 소수의 취미를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된 지금, 이 책은 어째서 수많은 사람이 이토록 단순한 행위에 빠져드는지, 그 답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찾아낸다”라고 일곱 작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달리기’ 이유를 풀어내면서 결국 달리기란 지키고 싶은 일상과 가치를 오래 이어 가기 위해 자신을 돌보는 일이자 내게 맞는 속도와 보폭으로 살아가기 위한 연습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거장들의 세계관에 어렵지 않게 빠져들게 하는 시도도 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꾸준히 인기를 얻는 가운데, 그의 산문들을 모은 ‘헤르만 헤세 게으름의 기술’이 출간돼 그의 가치관을 들여다보게 한다. 자신만의 속도로 삶과 세계관을 바라봤던 헤르만 헤세의 문장들을 통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생산하고, 성취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를 전수한다.
앞서는 박완서 작가의 단편을 모은 ‘쥬디할머니’가 출간돼 관심을 받는 등 거장들의 세계관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영상 콘텐츠가 쏟아지고, 어려운 글은 AI(인공지능)가 해석해 주는 현재, 책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대한 분량 대신 짧지만 임팩트 있는 재미를 책에서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단편집, 앤솔로지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독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시의적절한 주제로 관심을 유도하고, 책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유연한’ 기획이 출판 시장의 한 축을 차지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