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어온 생명 나눔…인천, 의료로 아시아와 신뢰를 잇다
입력 2026.07.28 08:30
수정 2026.07.28 08:30
20년간 아시아 환아 175명 치료…생명 나눔 국제협력 기반 확대
지난 27일 가천대 길병원에서 열린 초청치료 완치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 인천시 제공
“무료로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 사는 제엔꿀(44) 씨는 여섯 살 아들 악졸의 손을 꼭 잡은 채 당시를 떠올렸다.
항공료는 물론 수술과 입원까지 모든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같은 사업을 통해 아이를 치료받은 현지 가족을 직접 찾아 여러 차례 확인한 뒤에야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악졸은 태어날 때부터 심실중격결손과 폐 질환을 안고 살아야 했다. 여섯 남매 가운데 유일한 환아였지만, 수술비를 감당할 형편이 되지 않아 치료는 계속 뒤로 미뤄졌다.
그러나 인천에서 수술을 받은 뒤 아이의 일상은 달라졌다. 쉽게 지치던 모습이 사라졌고, 밤잠도 깊어졌다. 식사량도 늘면서 얼굴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제엔꿀 씨는 "이제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운동도 하고 꿈도 마음껏 펼쳤으면 좋겠다"며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 준 모든 분께 평생 감사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함께 한국을 찾은 두 살 리낫도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 선천성 심장질환인 팔로사징후로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손끝과 입술이 푸르게 변하는 청색증을 겪었던 리낫은 수술 이후 건강한 혈색을 되찾았다.
어머니 미르굴 씨는 "아이에게 두 번째 삶을 선물해 준 의료진과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며 "리낫이 건강하게 성장해 많은 사람을 돕는 통역사가 되는 것이 가족의 꿈"이라고 말했다.
두 아이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천시가 20년 가까이 이어온 '아시아권 교류도시 의료지원사업'이 있다.
지난 2007년 시작된 이 사업은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아시아 교류도시를 찾아 현지 진료를 실시하고, 국내 치료가 시급한 중증 환아를 인천으로 초청해 수술과 회복까지 지원하는 국제협력 프로그램이다.
사업은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천시는 환아와 보호자의 왕복 항공료와 국내 이동 비용, 현지 의료봉사 활동을 지원하고, 가천대 길병원 등 협력 의료기관은 수술과 입원, 치료 전 과정을 맡는다.
여기에 밀알심장재단과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 등 민간단체가 대상자 발굴과 현지 지원을 담당하며 촘촘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20년 동안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몽골,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아시아 교류도시 환자 175명이 인천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의료진이 현지를 찾아 진료한 환자도 6700여 명에 이른다.
올해 의료지원은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에서 출발했다.
가천대 길병원 의료진은 지난 5월 현지에서 심장질환 환아 55명을 진료한 뒤 질환의 중증도와 수술 효과, 회복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초청 치료 대상자 4명을 선정했다.
이들은 지난 9일 보호자와 함께 인천에 입국해 수술과 치료를 받았으며, 인천시는 27일 완치 기념행사를 열어 아이들의 건강한 회복을 축하했다. 모든 치료 일정을 마친 환아들은 28일 가족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간다.
수술을 집도한 최창휴 가천대 길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환아마다 질환의 상태와 국내 체류 기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초청 여부를 결정한다"며 "무엇보다 과거 치료받은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한 모습을 만날 때 의료인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인천시의 의료지원사업은 이제 해외 의료봉사를 넘어 도시와 도시를 잇는 공공외교 모델로 평가받는다.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한 가정의 희망을 되찾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와 도시 사이의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업이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행정기관과 의료기관, 민간단체가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민관 협력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인천시는 앞으로도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아시아 교류도시 환아 지원을 이어가며 사람 중심 국제협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박찬대 인천시장은 "20년 동안 이어온 의료지원은 단순한 인도적 지원을 넘어 생명의 가치를 함께 나누는 도시외교의 상징이 됐다"며 "앞으로 세계적 수준의 의료 역량과 민관 협력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생명 나눔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