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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현대가, 정반대 리더십’ 축구는 밀실 행정·양궁은 세계 최강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6.07.06 21:16
수정 2026.07.06 21:17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한국 축구.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대한축구협회는 대한체육회 산하 수많은 회원종목단체 가운데 재정 규모와 대중적 관심도, 그리고 미디어 노출 빈도에서 단연 ‘체급’이 다른 단체다.


일단 축구협회의 예산은 타 종목과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축구협회는 국제축구연맹(FIFA) 및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유입되는 배당금과 지원금을 시작으로,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생중계하는 방송사들로부터 거둬들이는 A매치 중계권료, 하나은행과 나이키 등 글로벌·대기업 라인업으로 구성된 메머드급 스폰서십 수입이 뼈대를 이룬다.


여기에 국민적 호응을 반영하는 국가대표 A매치 입장 수입과 전국 수만 명의 엘리트·동호인 선수들이 내는 등록비까지 더해지면 축구협회의 연간 예산은 1000억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대한체육회 산하 모든 종목을 통틀어 범접할 수 없는 부동의 1위다.


뒤를 잇는 상위권 단체들의 면면도 저마다의 뚜렷한 재정적 기반을 두고 있다. 인프라가 넓은 야구, 자체 재정 자립도가 높은 골프 등을 비롯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뚜렷한 성적을 내는 양궁, 배드민턴, 탁구, 수영 등도 제법 큰 규모의 예산을 유지하며 국가대표 육성과 저변 확대 사업을 벌인다. 여기에 대기업 회장사가 곁들여진다면 조직의 안정성과 사업의 연속성이 탄력을 받는다.


하지만 예산의 액수가 조직의 건전성, 국제 무대에서의 성과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극단적 대비를 이루는 축구와 양궁이다. 공교롭게도 대한축구협회와 대한양궁협회의 수장은 모두 ‘현대가(家)’라는 거대한 재벌가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인 정몽규 축구협회장과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인 정의선 양궁협회장은 현대가의 친인척 관계를 이루고 있다. 정의선 회장의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정몽규 회장의 사촌 형이다.


한 피를 나누고 범현대가의 일원으로 자란 두 수장이 각각 한국 스포츠에서 주목받는 두 단체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두 기업이 이끄는 단체의 행보와 이를 바라보는 팬들의 여론은 그야말로 극과 극, 천당과 지옥을 달린다. 무엇이 이 두 조직의 운명과 격을 갈랐을까. 해답은 자본의 크기가 아닌, 조직을 대하는 ‘경영 철학’과 '시스템의 투명성'에 있다.


지난 13년간 한국 축구를 이끈 정몽규 회장.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대한양궁협회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스포츠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기업 후원 및 단체 운영 사례로 찬사받는다. 한국 양궁이 올림픽 무대를 포함해 수십 년 동안 세계 최강의 지위를 놓치지 않고 절대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비결의 핵심에는 회장사인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의 명확한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이다.


현대차그룹은 매년 양궁 발전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조건 없이 쏟아붓는다. 선수들이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최고의 환경에서 훈련하고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놓았다. 더 놀라운 점은 정작 돈을 대는 회장사와 재벌 총수가 선수단 선발, 코칭스태프 인선, 경기 운영 지침 등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에는 조금이라도 개입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대차그룹은 일찌감치 협회의 행정과 기술적 판단을 전문가들에게 위임했다. 기업의 수장이 협회를 자신의 사조직처럼 부리거나, 개인의 치적 쌓기용 징검다리로 삼으려는 사유화 시도 자체를 스스로 차단한 셈이다.


대신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은 자신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역량, 즉 ‘글로벌 첨단 기술력’을 활용해 협회를 지원한다. 이는 단순히 돈만 쥐여주는 여타 기업들과 양궁협회가 차별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폭적인 지원과 첨단 기술의 결합 위에 양궁협회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공정 시스템’이 탑재됐다. 한국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은 학연, 지연, 전년도 메달 커리어 등 그 어떤 주관적 요소도 개입할 수 없는 철저한 무한 경쟁 시스템이다.


전 대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 할지라도 당해 연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점수가 밀리면 가차 없이 탈락한다. 어떠한 외풍도 통하지 않는 무결점의 투명한 선임 및 선발 과정이 정착되자, 선수들은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하게 되었고 조직 내 파벌이나 잡음은 파고들 틈이 없었다. 대기업의 전폭적인 투자와 현장 전문가들의 전문성,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의 투명성이 결합했을 때 어떤 결과가 탄생하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이정표다.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 현대차그룹

양궁협회가 이상적인 결합으로 빛난다면, 또 다른 현대가인 대한축구협회 현실은 뼈아프다. 축구협회는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 중 압도적인 예산과 독보적인 인프라를 손에 쥐고도 매년 행정적 잡음과 함께 축구 팬들의 거센 비난과 마주하고 있다.


축구협회의 문제점은 의사결정 시스템의 불투명성과 독단성에 있다. 협회 내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등 감독 선임과 전술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공식 기구들이 존재했음에도 최근 협회가 보여준 행정 참사들은 이러한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수뇌부 일부의 독단적 판단이나 밀실 행정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방증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로 인해 검증 없이 선임된 사령탑들은 국제 무대에서 실패를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십억 원대의 위약금과 행정력 낭비는 고스란히 협회의 손실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 한국 축구에서도 힘과 덩치를 키운 기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성공에는 현재 양궁협회가 유지하고 있는 공정이 그대로 녹아 있다. 바로 2002 한일 월드컵의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 감독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원정 16강의 이정표를 세운 파울로 벤투 감독 시절이 그러하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협회는 학연과 지연으로 얽히고설킨 국내 축구계의 고질적인 파벌을 타파하기 위해 세계적인 명장 히딩크를 영입했다. 당시 협회는 히딩크 감독에게 선수 선발과 훈련 방식에 대한 전권을 부여했다. 히딩크 감독은 명성이나 기존의 이름값 대신 뚜렷한 기준점을 앞세워 선수를 뽑았고, 이는 월드컵 4강 신화라는 기적으로 이어졌다.


2018년 부임해 4년 넘는 시간 동안 대표팀을 이끈 파울로 벤투 감독의 케이스는 보다 현대적이고 진일보한 시스템의 성과다. 당시 축구협회는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를 통해 데이터 검증과 면밀한 대면 인터뷰, 그리고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철학적 방향성의 여부를 따져 투명한 선임 과정을 거쳤다.


벤투 감독 재임 기간 수많은 비판과 흔들기에 시달렸으나 당시 정몽규 회장을 비롯한 실무자들은 외풍으로부터 감독을 보호하며 일관성 있게 철학을 밀어붙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그 결과 한국 축구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세계 강호들을 상대로 우리가 주도하는 빌드업 축구를 펼치며 당당히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수확했다.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은 세계 최고의 공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 대한양궁협회

결국 축구협회 역시 시스템이 바로 서고, 선임 과정이 투명하며, 현장의 전문성에 전권을 부여했을 때, 양궁협회 못지않은 명품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증명해낸 셈이다. 성공의 길을 몰랐던 것이 아닌, 정착된 시스템을 유지하지 못하고 독단적 행정으로 퇴행한 것이 지금의 위기를 자초한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입에 발린 말 잔치나 위기 모면용 조치에 속지 않는다. 진정한 쇄신은 조직의 시스템 자체를 다시 뜯어고쳐 투명성을 확립하는 체질 개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차그룹이 이끄는 양궁협회의 성공 공식은 축구협회가 나아가야 할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새로운 모습을 갖춰나가겠다고 선언한 축구협회가 양궁협회처럼 투명한 조직으로 거듭나 한국 축구의 르네상스를 다시 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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