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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권력 마침표’ 정몽규 회장이 한국축구에 남긴 명과 암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6.07.01 08:39
수정 2026.07.01 11:26

북중미월드컵 일정 마치고 귀국한 정몽규 회장. ⓒ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결국 파국이었다. 2026 북중미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든 대한민국 축구의 수장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3년간 지켜온 권좌에서 물러난다. 2013년 한국 축구의 구세주를 자처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기업가 출신의 행정가는 마지막 순간 붉은악마를 비롯한 국민 대다수가 등을 돌리며 불명예 퇴진의 길을 걷게 됐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산업개발을 이끈 재벌가 인사이자 스포츠 행정가로서 정몽규 회장이 한국 축구에 남긴 족적은 긴 시간만큼 깊고 무겁다. 기업가 특유의 효율성과 경영 기법을 도입해 케케묵은 축구협회의 시스템을 정비하고, FIFA 주관 대회 개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등 부인할 수 없는 공을 세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임기 중후반으로 갈수록 도를 넘어선 독단적 의사결정, 밀실 행정의 부활, 그리고 처참하게 무너진 축구 외교력은 결국 40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 좌절과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축구 잔혹사’로 귀결됐다.


2013년 대한축구협회장 자리에 오른 정몽규 회장. ⓒ 뉴시스

▲ ‘경영인 정몽규’가 가져온 혁신의 바람(2013~2015)


정몽규 회장이 축구 행정가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시절이었다. 당시 승부조작 사태로 뿌리째 흔들리던 K리그를 안정적으로 수습하며 ‘성공적인 행정가’라는 타이틀을 얻은 그는, 2013년 1월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는 조중연 전 회장이 재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협회 수뇌부의 인적 쇄신 요구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고 여론은 현대가의 장기 집권을 비판하면서도, 현실적 대안이었던 정몽규 후보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특히 프로축구연맹을 안정적으로 이끈 경영 능력이 높은 점수를 받아 당선된 정 회장은 취임 초기 약속했던 ‘기업형 경영 시스템’을 협회에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2013년 12월, 전 세계 유망주들이 출전하는 ‘2017 FIFA U-20 월드컵’ 유치에 성공한 것은 정몽규 초기 체제의 최대 치적으로 꼽힌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성인 월드컵(2002), 컨페더레이션스컵(2001), U-17 월드컵(2007)에 이어 U-20 월드컵까지 유치하며 FIFA 주관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개최한 몇 안 되는 국가로 우뚝 섰다.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현대가의 뚝심과 정 회장의 글로벌 비전이 시너지를 낸 순간이었다.


정몽규 회장과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 뉴시스

▲ 통합 협회 출범과 축구 외교의 정점, 그러나 싹튼 불안요소(2016~2017)


2016년은 한국 축구 행정사에 한 획을 그은 해였다. 엘리트 축구를 관장하던 대한축구협회와 전국의 동호인 축구를 이끌던 전국생활축구연합회의 통합이 정몽규 회장의 주도하에 완성됐다. 뿌리가 달랐던 두 거대 조직을 융합한 정 회장은 2016년 7월, 통합 대한축구협회장을 뽑는 제53대 선거에서 선거인단 98명 전원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다.


기세를 몰아 정 회장은 2017년 5월 바레인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총회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FIFA 평의회 위원’으로 당선됐다. 과거 정몽준 명예회장 이후 한국인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FIFA 집행부 임원에 선출된 것으로, 한국 축구의 외교적 위상이 정점에 달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빛나는 외교적 성과 뒤편에서는 독단적 행정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었다. 당시 국가대표팀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 체제 하에서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내내 졸전을 거듭하며 본선 진출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현장 축구인들과 팬들은 일제히 슈틸리케 경질을 요구했으나, 정 회장은 이를 묵살하고 재신임을 강행했다.


정몽규 회장은 파울루 벤투 감독에게 신임을 보냈다. ⓒ 데일리안 DB

▲ 구조 개혁과 시스템 축구의 정착, ‘벤투호’를 지켜낸 뚝심 (2017~2020)


슈틸리케 사태로 홍역을 치른 정몽규 회장은 대대적인 협회 구조개혁에 착수했다. 기존 기술위원회 체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기술발전위원회’와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회’로 전문화하여 분리했다. 그리고 축구계 안팎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홍명보를 전무이사로 영입해 실무 전면에 배치했다.


이 시기의 개혁은 정몽규 임기 중 가장 성공적인 행정적 공으로 평가받는다. 회장단이 독단적으로 감독을 낙점하던 밀실 행정에서 벗어나, 김판곤 국가대표선임위원장을 필두로 한 데이터 기반의 체계적인 감독 선임 시스템이 구축됐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선임된 인물이 바로 파울루 벤투 감독이다.


벤투 감독 부임 초기, 특유의 빌드업 축구를 향한 미디어와 일부 축구인들의 흔들기가 극에 달했을 때 정 회장은 확실한 지지 의사를 보내며 힘을 실었다. 경영자 관점에서 ‘한번 믿은 수장에게는 프로세스를 마칠 때까지 임기를 보장한다’는 소신을 지킨 셈이다. 결국 이 뚝심은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달콤한 열매로 이어졌고, 한국 축구는 황금기의 서막을 여는 듯했다.


축구팬들은 정몽규 집행부에 대한 강한 비판에 나섰다.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 3연임, 한국 축구 ‘흑역사’의 서막 (2021~2023)


2021년 1월, 단독 출마를 통해 3연임에 성공한 정 회장은 거칠 것이 없었다. 시스템은 비대해졌고, 회장의 권한은 견제받지 않는 영역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부작용이 나타났고 징후는 2021년 3월에 터진 ‘요코하마 참사’였다.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은 엄중한 상황에서 일본축구협회의 친선전 요청을 덥석 수락했다가, 무기력한 경기력 끝에 0-3 완패를 당했다. 당시 선수들을 무리한 방역 위험과 조기 소집으로 내몰았다는 비판 속에 국민 청원까지 등장했고, 후폭풍이 거세지자 정 회장은 이례적으로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해야 했다.


이후 정 회장의 행보는 그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악수의 연속이었다.


능력을 선보이지 못해 야인으로 물러났던 인사들을 다시 협회 요직으로 중용하는 퇴행적 인사를 단행하는가 하면 축구 외교력도 바닥을 쳤다. 2023 AFC 아시안컵 유치전에 야심 차게 뛰어들었으나, 전략 없이 나섰다가 카타르의 오일머니에 밀렸다. 심지어 협회의 준비 부족을 반성하기는커녕 “상대의 돈에 밀렸다”는 핑계 섞인 입장문으로 일관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어 2023년 2월 FIFA 평의원 선거에 재도전했으나, 회원국 45표 중 고작 19표를 얻어 후보 7명 중 6위라는 굴욕적인 성적으로 낙선했다.


가장 치명적인 과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독단적 선임이었다. 김판곤 위원장이 다져놓은 감독 선임 프로세스는 온데간데없었다. 정 회장은 3년 가까이 현장을 떠나 야인으로 지내던 클린스만을 전력강화위원회의 정상적인 검토 없이 독단적으로 낙점했다. 마이클 뮐러 위원장은 그저 회장의 결정을 발표하는 방패막이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훗날 정 회장 본인의 인터뷰를 통해 폭로되기도 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2023년 3월 기습적으로 감행된 ‘승부조작범 포함 비위 축구인 100인 사면 파동’이다. 하필이면 클린스만 감독의 부임 후 첫 A매치로 온 국민의 시선이 분산된 틈을 타, 2011년 K리그를 멸망의 위기로 몰고 갔던 승부조작 가담자 48명을 사면하겠다고 발표한 것.


과거 프로축구연맹 총재 시절 본인의 손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단죄했던 범죄자들을 축구협회장이 되자 슬그머니 면죄부를 주려 한 촌극에 축구 팬들은 물론 일반 대중까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비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며칠 만에 사면을 번복했다.


정몽규 회장은 13년간 한국 축구를 이끌었다.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 아시안컵 요르단 참사와 40년 만의 올림픽 좌절 (2024~2026)


재택근무와 외유로 일관하던 클린스만 감독을 지지하던 정몽규 체제는 결국 2024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파국을 맞이했다. 역대 최고의 스쿼드를 꾸리고도 4강에서 요르단을 만나 유효슈팅 단 0개라는 치욕적인 경기력 끝에 0-2로 완패했다.


정 회장은 대회 기간 중 경기력이 좋지 않고 여론이 험악할 때는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토너먼트에서 극적인 승리가 이어지자 슬그머니 대표팀 훈련장을 나타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책임 회피 방식도 비판 받을 부분이다. 손흥민과 이강인을 비롯한 선수단 내부 불화설이 언론을 통해 터지자, 평소에는 그 어떤 루머에도 묵묵부답이던 축구협회가 이례적으로 단 몇 시간 만에 이를 공식 인정했다. 이로 인해 아시안컵 실패의 원인에 대한 화살은 협회장 본인과 클린스만 감독 대신 선수들의 가십거리로 향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물러나고 성인 대표팀 사령탑이 공석인 상황에서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던 황선홍 감독을 임시 사령탑으로 겸임시키는 무리수도 뒀다. 그 결과, 대표팀은 2024년 4월 U-23 아시안컵 8강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에 패하며 탈락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 이후 무려 40년 동안 이어져 온 ‘올림픽 본선 연속 진출’이 중단된 순간이었다.


국회에 출석한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전 감독. ⓒ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 ‘꼼수 4선 연임’과 홍명보호의 침몰 (2025~2026)


축구협회는 2024년 말, 협회장 출마 연령을 70세 미만으로 제한하는 정관 변경을 시도했다. 겉으로는 국제 규정을 따랐다고 주장했으나, 실제 FIFA나 IOC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규정이었다. 차기 대권 경쟁자가 될 만한 축구계 원로 인사의 입후보를 차단하기 위함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불출마 압박과 대중의 거센 비난 속에서도 정몽규 회장은 2025년 1월, 결국 4선 연임에 성공했다. 당선 직후 곧바로 성인대표팀 사령탑 선임에 나섰는데 이때 낙점된 인물이 바로 홍명보다. 분노한 축구팬들은 A매치 경기가 열릴 때마다 ‘정몽규 아웃’ ‘홍명보 나가’를 부르짖었다. 평가전 때마다 경기력은 기대 이하였고 우려는 곧 현실로 다가와 북중미 월드컵 참사로 이어졌다.


월드컵 탈락이 확정된 순간, 현장의 팬들과 붉은악마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홍명보를 향해 “축구계를 영원히 떠나라”는 공식 성명과 함께, 대한민국 축구 발전을 저해하는 인물과 시스템에 대한 투쟁을 본격화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정몽규 회장의 귀국길에는 개껌이 날아드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물론 정몽규 회장은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대한축구협회장 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고, 한국 축구 몰락에 대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13년 장기 집권의 막을 스스로 내렸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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