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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탈락했지만...’ 여전히 위용 넘치는 유고 축구 DNA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6.07.02 14:51
수정 2026.07.02 14:51

보스니아는 레전드 에딘 제코를 앞세워 32강 진출에 성공했다. ⓒ IMAGN IMAGES=연합뉴스

스포츠에 ‘만약’은 없다지만, 축구 팬들 사이에서 수십 년째 끊이지 않는 단골 논쟁거리가 있다. 바로 ‘발칸의 강호’ 유고슬라비아가 분열되지 않고 하나의 팀으로 월드컵에 나섰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이다. 슬라브족 특유의 압도적인 피지컬과 천재적인 축구 DNA가 하나로 뭉쳤다면, 세계 축구의 패권은 남미나 서유럽이 아닌 발칸반도의 차지였을지도 모른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2일(한국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중미 월드컵 32강전에서 개최국 미국에 0-2 완패하며 탈락했다.


2014년 이후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선 보스니아는 레전드 에딘 제코를 앞세워 B조에서 1승 1무 1패를 기록, 사상 첫 토너먼트 무대에 올랐으나 개최국의 기세에 밀리며 아쉽게 짐을 쌌다.


보스니아는 옛 유고 연방의 일원으로 내전 후 분리 독립돼 1990년대부터 국제 축구 무대에 나서고 있다. 이는 보스니아뿐 아니라 7개로 갈라진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유고 연방, 즉 유고슬라비아의 축구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유고슬라비아 축구는 과거 세계 무대를 호령하던 거인이었다.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과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각각 사상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했고,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에서도 두 차례나 준우승(1960년, 1968년)을 차지하며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특히 연방이 본격적으로 해체되기 직전인 1987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정상에 오르며 ‘황금 세대’의 서막을 알렸다. 90년대 들어서며 세계적 수준의 유망주들이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비극적인 역사가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1948년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주도로 출범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은 1980년 티토 사망 이후 극심한 민족 갈등에 휩싸였다. 결국 1991년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연방 탈퇴를 선언하자 세르비아가 군대를 동원했고, 10년간의 참혹한 유고 전쟁이 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유고 연방은 완전히 해체돼 현재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북마케도니아 등 7개국으로 갈라섰다. 옛 유고 연방 축구의 공식 역사는 현재 세르비아가 계승하고 있다.


옛 유고 연방 국가들의 월드컵 성적. ⓒ 데일리안 스포츠

정치적 비극으로 인해 이들이 단일팀으로 호흡을 맞추는 일은 앞으로 일어나지 않겠지만, 2010년대 이후 각국으로 흩어져 활약한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그야말로 ‘지구방위대’급 위용을 자랑한다.


최후방에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꼽히는 얀 오블락(슬로베니아)이 버티고, 수비진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호령했던 네마냐 비디치, 블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 알렉산더 콜라로프(이상 세르비아)가 통곡의 벽을 구축한다.


미드필더진은 중원의 마술사이자 발롱도르 수상자인 루카 모드리치를 필두로 이반 라키티치(이상 크로아티아), 네마냐 마티치(세르비아)가 공수를 조율한다. 전방에는 ‘트레블러’ 마리오 만주키치(크로아티아)와 폭격기 에딘 제코(보스니아), 그리고 천재 공격수 스테반 요베티치(몬테네그로)가 화력을 뿜어내는 그림이 완성된다. 이들 모두 유고 연방 시절에 태어나 하나의 국적을 가질 수 있었던 축구 천재들이다.


비록 국가는 달라졌지만, 이들이 증명한 축구 DNA는 파편화된 뒤에도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크로아티아다.


크로아티아는 참혹한 내전의 상흔을 딛고 처음으로 출전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다보르 슈케르를 앞세워 깜짝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들의 돌풍은 우연이 아니었다. 2010년 남아공 대회를 제외하면 매번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고, 특히 지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프랑스와 결승에서 맞붙으며 준우승 업적을 달성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유고 출신 국가들의 경쟁력은 여전하다. 실제로 지난 1998년 대회부터 월드컵 본선마다 2개국씩 꾸준히 본선 무대에 명함을 내밀고 있다.


이번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나란히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발칸 축구의 매운맛을 보여줬다. 비록 보스니아가 미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먼저 짐을 쌌지만, ‘백전노장’들이 버티는 크로아티아는 3일 포르투갈과 운명의 32강 단판 승부를 벌인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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