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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협회장 자리 비운다…한국 축구, 처음으로 '현대' 없는 '미래' 직면?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6.07.02 15:25
수정 2026.07.02 16:33

정몽규·홍명보 퇴진에 차기 축구협회장 구도 급부상

60일 선거 시간표 속 선거인단 확대 논의 변수

현대가 스포츠 인연 40년 넘어…새 리더십 요구 커져

제55대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당선된 정몽규 회장이 인터뷰를 갖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한국 축구는 지금 초유의 공백 앞에 서 있다.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이튿날인 지난달 29일 홍명보 감독이 멕시코 현지에서 사퇴를 선언했고 그보다 한 달 전에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월드컵 개막을 2주 앞두고 대회 후 퇴진을 전격 발표했다. 협회장과 대표팀 감독이 같은 대회를 끝으로 나란히 물러나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대표팀이 귀국한 지난달 30일 새벽 입국장을 채운 야유, 정 회장을 향해 날아든 '개껌'(으로 알려진 이물질), 서울경찰청으로 이송된 감독 선임 개입 의혹 수사까지 13년 정몽규 체제의 마지막 풍경은 그만큼 험악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다음이다. 누가 정몽규 이후의 대한축구협회를 맡을 것인가.


60일의 시간표, 그리고 뜻밖의 이름


시간표부터 빠듯하다. 정몽규 회장이 사직서를 제출해 회장 궐위가 발생하면 잔여 임기가 1년 이상인 만큼 협회 정관상 60일 이내에 새 회장을 선출해야 한다. 변수는 선거 방식이다.


정부와 체육계가 기존 간선제의 선거인단을 넓히는 직선제 취지의 제도 개편을 논의하면서 정 회장의 사퇴 시점을 두고 직선제 도입 전에 기존 방식으로 후임을 뽑으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마평은 이미 돌고 있다.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김병지 강원FC 대표이사 겸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이용수 전 기술위원장 겸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이 거론된다.


눈에 띄는 것은 재계 인사가 함께 오르내린다는 점이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이다. 출마를 공식화한 적도 축구 행정에 나선 적도 없지만 이름이 거론되는 배경은 두 가지다.


HD현대가 울산 HD FC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가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의 장남이라는 점이다.


'몽'에서 '몽'으로, 두 명의 현대가 회장
고(故) 정주영 현대자동차그룹 창업회장. ⓒ현대자동차그룹

협회장 논의 때마다 현대가의 이름이 따라붙는 데는 45년에 걸친 배경이 있다.


출발점은 축구가 아니라 올림픽이었다. 1981년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1988년 올림픽 개최지 투표에서 서울은 52표를 얻어 27표의 일본 나고야를 눌렀다.


'바덴바덴의 기적'으로 불린 이 유치전의 민간 사령탑이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였다. 각국 IOC 위원을 움직이는 데는 기업인의 국제 네트워크가 필요했고 정주영 창업주가 그 역할을 맡으면서 현대가와 한국 스포츠는 단순 후원을 넘어서는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인연은 프로축구로 이어졌다. 1983년 창단한 현대 호랑이 축구단이 오늘의 울산 HD FC가 됐고 전북 현대, 부산 아이파크, 여자축구 인천 현대제철까지 범현대가의 구단 운영은 남녀 축구를 아울렀다. 계열 분리 이후에도 HD현대는 울산을, 현대차그룹은 전북과 인천 현대제철을, 정몽규 회장의 HDC는 부산을 각각 운영하며 구도가 유지됐다.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 겸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 ⓒ얀합뉴스

이 관계를 협회장이라는 자리로 확장한 인물이 정몽준 전 회장이다. 1993년 협회장에 오른 그는 취임 첫해 폭탄선언을 했다. 2002 월드컵을 한국에 가져오겠다는 것이었다.


당시로선 무모한 도전이었다. 일본은 이미 4년 전부터 유치전에 뛰어들어 개최도시 15곳까지 정해둔 상태였고 FIFA 회장마저 공공연히 일본 편을 들고 있었다. 누가 봐도 기울어진 싸움이었다.


판을 뒤집은 무기는 축구 외교였다. 1994년 정몽준 전 회장이 FIFA 부회장에 오르면서 흐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FIFA 내부를 파고든 외교전 끝에 1996년 한일 공동개최라는 결과를 끌어냈고 6년 뒤 그 무대에서 4강 신화까지 터졌다.


질 게 뻔하다던 유치전을 뒤집고 온 국민을 거리로 불러낸 그해 여름, '현대가의 축구'는 대중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졌다. 월드컵의 성공은 그를 그해 대선 주자 반열에 올려놓을 만큼 큰 정치적 자산이 되기도 했다.


정몽규 회장은 그 계보를 이어받았다. 시작은 1994년 울산 구단주였다. 이후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로 20년 넘게 구단을 지켰고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시절에는 K리그 승강제 도입을 이끌었다. 2013년 협회장에 오르기까지 구단 경영에서 리그 행정, 협회로 이어진 경로를 밟은 셈이다. 그에게 축구는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라 30년 넘게 이어온 경영의 한 축이었다.


재임 중 성과도 있었다. 아시안게임 3연패와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유소년 투자 확대와 천안축구종합센터 건립이 그의 임기에 이뤄졌다.


그 30년 이력은 2024년 집중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아시안컵 부진 끝에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됐고 남자축구는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무대를 놓쳤다. 여기에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의 절차 논란까지 겹치며 협회를 향한 비판 여론은 더 거세졌다.


그 한복판에 30년 축구 인생을 담은 회고록 '축구의 시대'가 출간됐다. 오래 준비한 기록이었지만 협회의 해명을 기다리던 여론 앞에 자전 에세이가 먼저 도착한 모양새가 되면서 출간 시점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됐다.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 정몽규 회장은 '현대가 31년 장악' 지적에 범현대가가 남녀 프로팀 4개 이상을 운영하며 축구계에 매년 150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가족과 지인들이 만류했지만 감독 선임 논란만 남긴 채 떠나면 10년, 20년 뒤 더 큰 후회로 남을 것이라며 4선에 도전해 성공했다. 축구를 놓지 못한 마지막 선택이었지만 문체부 감사 후폭풍과 비판 여론은 임기 내내 이어졌고 결국 이번 사퇴 발표에 이르렀다.

'선'으로 이어질까, 끊길까


관건인 정기선 회장의 승계 가능성에는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 HD현대 안팎에서 출마 관련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조선, 에너지 등 그룹 본업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현 회장이 경찰 수사 대상에 오를 만큼 논란이 큰 자리를 맡을 이유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함께 거론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양궁 지원 성과처럼 축구도 맡아주길 바라는 일부 팬들의 기대에서 나온 이름으로 실제 가능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축구계에서는 차기 회장이 축구인이나 체육계 인사가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전망이 나온다. 협회에 필요한 것은 재계 네트워크보다 축구계의 신뢰 회복이라는 판단에서다.


바덴바덴에서 시작해 정몽준 전 회장의 월드컵 외교, 정몽규 회장의 13년 재임으로 이어진 현대가와 한국 축구의 45년은 한국 축구사의 큰 줄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오랜 인연이 곧 다음 회장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기류 속에 한국 축구가 처음으로 '현대' 없는 미래를 선택지에 올려놓고 있다. 답은 사직서가 수리된 뒤 60일 안에 나온다.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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