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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질감까지 데이터로…현대차·기아 '1㎜ 가상도로' 신차 검증 [르포]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6.07.02 08:30
수정 2026.07.02 08:30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R&D 랩투어' 개최

가상도로 주행·로봇 측정·와이어카 검증 현장 공개

실차 제작 전 성능·품질·소프트웨어 리스크 줄여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외관. ⓒ현대자동차·기아

270도 곡면 스크린 앞 운전석이 가상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가속 페달을 밟자 화면 속 도로가 빠르게 밀려왔고 스티어링 휠을 꺾자 운전석 전체가 방향을 따라 움직였다. 코너를 돌 때는 차체가 기울었고 노면에서 올라오는 미세한 진동도 운전석으로 전해졌다.


단순한 게임 화면이 아니었다. 현대자동차·기아는 남양기술연구소 주행시험장을 1㎜ 단위로 정밀 스캔해 가상공간에 옮겼다. 노면의 경사와 요철, 과속방지턱, 아스팔트 질감까지 데이터로 담았다. 실제 도로를 그대로 복제한 가상도로 위에서 신차는 실물로 나오기 전부터 먼저 달리고 있었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외관. ⓒ현대자동차·기아

지난 1일 찾은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이날 현대차·기아는 '남양기술연구소 R&D 랩투어'를 열고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디지털 측정 센터(DMC),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 노바랩 등 주요 개발 시설을 공개했다. 신차나 콘셉트카를 보여주는 행사가 아니었다. 차가 만들어지기 전 성능과 품질, 소프트웨어 오류를 얼마나 먼저 잡아내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가장 직관적인 장면은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였다. 차량 전체가 놓인 것은 아니었다. 운전석과 스티어링 휠, 페달, 시트 등 실제 양산차 부품을 적용한 콕핏이 거대한 스크린 앞에 자리했다. 연구원이 주행을 시작하자 시뮬레이터는 전후·좌우·상하 움직임과 롤, 피치, 요 등 차량 거동을 재현했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로 주행 성능을 평가 중인 연구원의 모습. ⓒ현대자동차·기아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차량이 주행하면서 생기는 핸들링과 승차감, 차량 움직임의 특성을 개발하는 곳"이라며 "노면 조건도 평가할 수 있고 부품 특성을 바꿔 다양한 주행 평가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장비의 의미는 실제 주행을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개발자가 부품 특성을 데이터로 바꾸면 곧바로 주행 성능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과거에는 시작차를 만들고 부품을 바꿔 끼운 뒤 다시 시험장에 올려야 했다.


이제는 그 과정 일부를 가상공간에서 먼저 반복할 수 있다. 개발 초기에 실패를 더 많이 해보고 실차 단계로 넘어가기 전 선택지를 줄이는 구조다. 젖은 노면이나 특정 주행 조건도 날씨와 장소를 기다리지 않고 구현할 수 있다. 이는 개발 기간을 줄이는 동시에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광학식 3D 스캐너로 수치 측정을 하는 모습. ⓒ현대자동차·기아
광학식 3D 스캐너로 수치 측정을 하는 모습. ⓒ현대자동차·기아

품질 검증도 생산라인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됐다. 디지털 측정 센터(DMC)에서는 차체와 부품의 미세한 오차를 데이터로 잡아냈다. 자동차에서 틈새나 단차는 단순 외관 문제가 아니다. 도어 개폐감, 주행 중 잡소리, 누수, 정숙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장 한쪽에 놓인 CMM 장비는 차체 곳곳을 일정한 리듬으로 찍었다. 차 한 대 기준으로 약 1000개 측정 포인트를 지정하고 각 포인트의 좌표값이 공차 안에 들어오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개발 단계에서 확보한 품질을 양산에서도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 체계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와이어카를 활용해 차량 기능과 제어기 검증을 하는 연구원의 모습. ⓒ현대자동차·기아

소프트웨어 검증은 노바랩에서 확인됐다. 이곳에는 완성차가 없었다. 대신 테스트벤치 위에 제어기와 전장 부품, 와이어링 하네스가 실제 차량처럼 연결돼 있었다. 차체는 없지만 차량의 전기·전자 시스템은 실물 하드웨어로 구현된 구조다.


자동차가 SDV로 바뀌면서 개별 부품의 성능만으로는 품질을 담보하기 어렵다. 각 부품이 정상이어도 서로 연결되는 순간 통신 오류나 기능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원격 시동 하나에도 스마트키, 보안 시스템, 통신 모듈, 전원 관리 시스템, 공조 제어기 등이 동시에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소비자에게는 곧바로 불편으로 나타난다.


노바랩의 와이어카는 이런 문제를 실제 차가 만들어지기 전에 찾기 위한 장치다. 대형 차종 기준으로 연결되는 제어기와 전장 부품은 300개에서 500개 수준이고 와이어링 커넥터도 약 500개에 달한다. 현장에서는 회로, 통신, 기능, 진단 항목을 중심으로 자동 검증이 이뤄졌다. 공조, 램프, 시트 기능을 순차적으로 확인하고 항목별 정상 여부와 소요 시간이 표시됐다.


적층된 금속 부품의 일부를 가공한 샘플. ⓒ현대자동차·기아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는 개발 속도를 높이는 보조축에 가까웠다. 액상 레진을 굳히거나 금속 분말을 쌓아 부품을 만드는 장비들이 배치돼 있었다. 금형을 새로 만들지 않고도 필요한 부품을 빠르게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금형이 없는 경우 스캔을 통해 파일을 생성하고 적층 제조를 통해 부품을 제작한다"며 "해외에서 수입해 사용하던 금속 부품도 3D프린팅으로 다시 개발해 공장에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종된 헤리티지 차량 부품 복원, 모터스포츠용 경량 부품, 냉각 부품 등이 사례로 제시됐다. 적층 제조는 전체 기사에서 주연이라기보다 개발 현장의 민첩성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보는 게 맞다. 신차 개발 과정에서 부품 하나를 새로 만들기 위해 금형과 제작 일정을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WAAM 장비가 금속을 적층하는 모습. ⓒ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에서 본 현대차·기아의 개발 방식은 모두 같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실제 차가 나오기 전에 어디까지 검증할 수 있나'다. 가상도로는 주행 성능을 앞당겨 확인했고 DMC는 차체 오차를 수치로 바꿨다. 노바랩은 차체 없이 제어기와 통신을 돌려봤고 AMSC는 필요한 부품을 금형 없이 빠르게 만들었다.


이는 개발 속도와 품질을 동시에 요구받는 완성차 업계의 현실을 반영한다. 전기차와 SDV는 하나의 차 안에 더 많은 전장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넣는다. 기능은 늘지만 오류 가능성도 같이 커진다. 기존처럼 실차를 만든 뒤 문제를 찾는 방식으로는 개발 기간과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기아의 남양 R&D는 신차를 빨리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차를 많이 만드는 생산능력을 넘어 성능과 품질, 소프트웨어 안정성을 얼마나 일찍 검증하느냐가 미래차 경쟁력의 기준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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