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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축구가 세계로 간 사이…뒷걸음질 친 한국 축구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6.06.29 21:28
수정 2026.06.29 21:28

일본의 연이은 선전에 환호하는 일본 축구팬들. ⓒ EPA=연합뉴스

끝내 기적은 없었다. 껍데기만 화려했던 한국 축구는 민낯을 드러낸 채 황금세대의 종식을 알렸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여정은 조별리그까지였다. 체코와의 1차전에서 거둔 2-1 역전승은 이후 펼쳐질 재앙의 회광반조와도 같았다.


2차전 개최국 멕시코에 0-1로 덜미를 잡히더니, 반드시 잡았어야 할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3차전마저 무기력한 0-1 패배로 이어졌다. 이후 다른 팀들의 결과를 살펴본 사흘 동안의 희망 고문은 경우의 수가 연달아 박살이 나며 조별리그 탈락의 결과로 이어졌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의 부진을 단순히 ‘운이 없었다’라고 치부할 수 없다. 홍명보라는 전술적 무능함을 지닌 사령탑과 그를 선임한 대한축구협회의 밀실 행정이 낳은 자멸에 가까운 결과이기 때문이다.


반면, 2002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국이자 영원한 라이벌인 일본은 그동안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이며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어 더욱 뼈가 아프다. 1998년 프랑스 대회에서야 비로소 월드컵 첫 출전의 꿈을 이뤘던 일본은 불과 한 세대 만에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도 두려워하는 강팀으로 우뚝 선 반면, 같은 기간 한국 축구는 발전 없이 오히려 퇴보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해답은 대한축구협회와 일본축구협회의 너무도 다른 행정 시스템 차이에서 비롯된다.


일본은 철저한 준비로 지금의 축구 발전을 이뤄냈다. ⓒ AFP=연합뉴스

일본 축구 발전의 근간에는 1993년 J리그 출범과 함께 선포된 ‘J리그 백년구상’이 있다. 일본축구협회는 단순히 성적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2050년까지 월드컵을 단독 개최하고 전 세계인이 참여하는 가운데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구축했다. 정권이 바뀌고 협회 수장이 교체되어도 이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철저하게 시스템을 기반으로 유소년을 육성했고, 투명한 행정 처리를 통해 축구계 내부의 신뢰를 쌓아 올렸다.


이와 달리 한국 축구는 달랐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대한축구협회가 보여준 행보는 그야말로 ‘밀실 행정’의 전형이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 과정부터 시작해 이번 홍명보 감독 선임 파동에 이르기까지, 협회 내 공식 기구인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는 무력화되기 일쑤였다.


축구인들의 축구 발전을 위한 목소리와 팬들의 비판은 철저히 무시됐고, 지도부의 뚜렷하지 않은 선임 기준에 의해 대표팀 사령탑이 낙점됐다. 공정과 상식이 사라진 행정 시스템 아래에서 대표팀의 전술적 일관성이나 장기적인 비전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손흥민과 김민재, 이강인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화려했으나, 이들을 받쳐줄 전술적 시스템과 행정적 지원은 여전히 미미했다. 오히려 이들의 이름값을 앞세워 선수 개인 기량에 의존해 성적을 내는, 스타 중심적 구조 뒤에는 더 큰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일본 축구 시스템은 한국과 판이하게 움직였다. 실제 일본은 특출한 슈퍼스타가 없이도 11명, 나아가 26명의 엔트리 전체가 동일한 전술적 이해도를 공유하는 ‘시스템 축구’의 완성형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연령별 대표팀부터 성인 대표팀까지 일관된 축구 철학을 공유한다. 감독이 바뀌어도 전술적 뼈대가 유지되기 때문에 선수들이 대표팀에 소집되었을 때 적응하는 시간이 극도로 짧다.


한국 축구가 정신력과 투지라는 프레임에 갇혀 현대 축구의 흐름인 데이터 분석과 행정의 과학화를 놓친 사이, 일본은 철저한 분석과 과감한 투자로 한국과의 격차를 서서히 벌려 나갔다.


일본 축구는 J리그서부터 자생력을 확보했다. ⓒ REUTERS=연합뉴스

축구의 풀뿌리이자 대표팀의 뼈대가 되는 자국 리그의 격차는 더욱 심각하다. 일본 J리그는 철저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과 중계권 대형 계약을 통해 재정적 자생력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은 스포츠를 포함한 모든 콘텐츠에 유료 채널 시스템이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J리그 중계는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스튜디오에서 양 팀의 전력을 정밀 분석하고, 하프타임과 경기 종료 후에도 월드컵 본선 못지않은 고품질의 리뷰를 제공한다. 중계 카메라 워크와 미디어 환경 자체가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이렇게 축적된 자본은 고스란히 유소년 시스템 투자와 선수들의 유럽 진출 인프라 확대로 이어진다.


여기에 일본축구협회는 독일에 ‘JFA 유럽 오피스’를 직접 개설해 자국 선수들의 유럽 무대 적응을 제도적으로 돕고 있다. J리그 구단들은 유망주들이 유럽 중소 리그로 진출할 때 이적료를 과도하게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길을 열어준다. 선수가 유럽에서 성장해 대표팀의 핵심으로 거듭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일본 축구와 J리그의 가치를 높인다는 대승적 차원의 합의가 끝났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유럽파 선수는 100명을 훌쩍 넘는다.


반면 K리그는 한참 뒤처져 있다. 특히 모기업(대기업)의 지원금이나 지자체의 예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계권 수익은 미비하며, 경기가 끝나기 무섭게 방송이 종료되는 척박한 미디어 환경이 여전하다. 재정이 취약하다 보니 구단들은 유망주가 유럽에서 오퍼를 받아도 당장의 성적과 이적료 수익을 위해 이적을 막아서거나 무리한 조건을 내걸기 일쑤다. 최근 들어 쿠팡플레이가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나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번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은 한국 축구에 던져진 마지막 경고장이나 다름없다.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과거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하고, ‘인맥 축구’와 ‘해줘 축구’를 지켜보기에는 축구팬들의 눈높이와 국력과도 맞지 않다. 모두 갈아엎고 일본의 백년구상처럼 20년, 3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계획을 짜야 할 때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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