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문턱 높아지자 카드론으로…풍선효과 뒤에 숨은 불황 [기자수첩-금융]
입력 2026.06.26 07:03
수정 2026.06.26 07:03
경기 한파 속 커지는 생계형 대출
버티기 위한 돈은 어디로 향하나
숫자 뒤에 가려진 자영업자의 현실
은행권 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카드론 잔액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며 실수요자들의 자금 조달 경로와 가계부채 관리의 실효성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연합뉴스
폐업 신고 사업자가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장사가 안 돼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늘고, 경기 침체는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루하루 버티기 위해 운영자금과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도 갈수록 늘어난다.
하지만 돈을 빌릴 수 있는 창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정부는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은행권 대출 문턱을 높였다. 신용대출 한도를 줄이고 심사를 강화하는 등 강도 높은 관리 기조를 유지 중이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정책이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모든 대출은 투기나 투자 목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임대료를 내기 위해, 직원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거래처 결제를 막기 위해 당장 급전이 필요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도 적지 않다.
폐업을 고민하는 사업자에게는 하루 이틀의 자금 공백이 생존을 좌우하기도 한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이들이 향하는 곳은 결국 '카드론'이다.
실제로 지난 5월 말 9개 카드사의 카드론 잔액은 43조2534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카드론뿐만 아니라 현금서비스와 리볼빙, 대환대출 잔액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최근 증시 활황으로 투자자금 수요가 일부 유입됐다는 분석도 있지만, 지금의 카드론 증가를 모두 '빚투'로만 설명하기에는 바닥 경기의 현실이 너무 무겁다.
문제는 가계부채의 '질(質)'이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대출 수요가 카드론으로 이동하는 것은 부채 총량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부채로 옮겨가는 것에 가깝다.
총량은 관리될지 몰라도 차주의 이자 부담은 더 커지고, 경기 침체가 길어질수록 부실 위험 역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금융당국이 이러한 상황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카드업권의 중금리대출 공급을 확대하고, 오는 10월부터는 카드사의 사잇돌대출 취급도 추진한단 계획이다.
실수요자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보완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정책이 현장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이미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사람들 상당수가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로 향하고 있다.
카드론 잔액이 역대 최대를 기록한 현실을 들여다보면, 제도 개선이 추진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급전 수요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계부채 관리와 금융 안정은 반드시 필요한 정책 과제다. 그러나 총량 관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도 분명 존재한다.
지금처럼 폐업이 속출하고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이라면, 실수요자들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금융 공급 체계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카드론 43조원은 단순한 금융 통계가 아니다. 가계부채 총량 관리의 이면에서 제도권 금융의 문턱을 넘지 못한 실수요자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가계부채 총량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한계에 다다른 실수요자들에게 '숨통을 틔워줄 금융 사다리'를 어떻게 남겨둘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