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행 후 산업계 혼선 커졌다…원청교섭 요구 439곳, 본교섭 10곳뿐"
입력 2026.06.24 09:07
수정 2026.06.24 09:07
산업발전포럼서 개정 노조법 파급효과 논의
노란봉투법 시행 후 사용자성 논란 본격화
교섭 기준·대체근로 공백에 “현장 혼선 줄여야”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산업현장에서 원청의 사용자성 판단과 하청노조 교섭 요구를 둘러싼 혼선이 커지고 있다는 산업계와 학계의 지적이 나왔다. 하청노조의 원청 직접교섭 요구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실제 본교섭으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아 기업들이 생산활동보다 법률·노무 대응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산업연합포럼은 자동차산업연합회와 공동으로 24일 서울 엘타워에서 ‘개정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산업현장 파급효과와 개선과제’를 주제로 제87회 산업발전포럼을 열었다. 이날 포럼에서는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원청 교섭 요구 확대, 사용자성 판단 기준의 불명확성, 파업 시 대체근로 기준 부재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은 개회사에서 “기업들은 주 52시간제와 노란봉투법 등으로 연장근로나 유연근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인력 확보마저 쉽지 않아 고객 주문을 맞추지 못하거나 일감을 해외 경쟁국에 빼앗기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정확히 듣고 해법을 찾지 않는다면 반도체와 양극화에 가려진 우리 기업들의 위기가 하나둘 현실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특히 원청 직접교섭 요구가 산업현장의 핵심 쟁점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한 달 만에 1011개 하청노조·지부·지회가 372개 원청 사업장에 교섭을 요구했고, 지난 19일 기준으로는 1161개 하청노조, 조합원 16만4000명이 439개 원청 사업장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실제 본교섭으로 이어진 사례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 회장은 “노동위원회 절차 등을 통해 사용자성이 인정된 곳은 103개소였으나 실제 본교섭 절차에 들어간 곳은 10개소에 그쳤다”며 “많은 기업이 본연의 생산활동 대신 이른바 ‘가짜 노동’에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청의 안전관리 의무가 오히려 사용자성 인정 근거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이정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개정 노조법의 핵심 문제는 사용자 범위 확대 자체보다 현장 집행 과정에서 원청의 정당한 안전관리와 복지지원이 ‘실질적 지배력’의 근거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수록 하청노조에 대한 직접 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로 전락할 수 있다”며 “안전 법령 준수와 노조법상 사용자성 판단이 충돌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섭 절차도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원청이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나 쟁의 돌입 전에 실질적 지배력을 사전에 판단해야 하는지, 원청 사업장에 흩어진 하청 근로자에게 교섭요구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기존 원청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이 있는 상황에서 하청노조의 신규 교섭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기준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파업 발생 시 대체근로 제한도 산업계의 부담 요인으로 제기됐다.
이 교수는 “하청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현행법상 대체근로 투입은 전면 차단되고, 원·하청 동시 영업손실에 대한 현실적 피해구제도 어렵다”며 “제철소 용광로, 바이오 제약 등 연속 공정이나 국가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장까지 동일하게 대체근로가 제한되면 산업현장의 피해가 급격히 확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비용과 불확실성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송 교수는 “시행 100일 만에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가 1100여 곳, 원청 기업 대상 교섭 요구가 430여 개에 달한다”며 “제조업뿐 아니라 물류·플랫폼, 급식·세탁·청소·경비 등 비제조 지원하청 분야까지 원청 교섭의무가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 하청노조의 공동 교섭 요구 사례를 언급하며 “공정 통합과 라인 연동을 이유로 안전, 성과급, 근로시간 전반이 원청 교섭의무로 확대될 수 있다”고 했다. 또 BGF리테일과 화물연대 갈등에 따른 CU 물류 배송 차질, 안전상비의약품 결품 사례를 들어 “교섭과 쟁의가 공급망 차질과 소비자 피해로 전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산업연합포럼이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18일까지 71개 기업·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현장 부담이 확인됐다. 기업들이 가장 시급한 애로사항으로 꼽은 항목은 ‘사용자성 판단 기준의 모호성’이 39.4%로 가장 많았다.
이어 ‘파업 발생 시 대체근로·안전조치 기준 부재’ 35.2%, ‘교섭요구 단계에서 교섭의제가 특정되지 않는 문제’ 29.6%, ‘생산·물류 공급망 차질 우려’ 28.2% 순이었다. 경영상 영향으로는 ‘법률·노무 대응 비용 증가’가 47.9%로 가장 높았다. ‘생산 차질 또는 납기 리스크 증가’는 36.6%, ‘경영 의사결정 지연’은 32.4%로 조사됐다.
송 교수는 “개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실질지배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하고, 원·하청 교섭단위와 창구 운용 기준을 정비해 노동3권과 영업의 자유 사이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 조항의 불명확성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산업현장 혼란의 근본 원인은 입법기술의 부실에 있다”며 “고용노동부 해석지침은 구내식당 등을 사용자성과 무관한 사례로 제시하고 있음에도 노동위원회가 급식·세탁, 보안·경비 등 비핵심 업무까지 원청 대기업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것은 법문 자체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대일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교섭비용과 생산비용이 높아지면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이는 장기적으로 생산과 하청 수요를 감소시킬 수 있다”며 “특히 2차 이하 하청으로 갈수록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나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만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하청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영업이익 N% 성과급’을 요구하는 사례를 문제로 들었다.
그는 “원청과 하청노조가 성과급 지급에 합의할 경우 실제 금품을 단체교섭에 참여하지 않은 하청업체가 지급해야 하는지,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이 직접 지급할 수 있는지부터 법적·경영상 혼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사도 “원청 사용자성과 교섭의제를 둘러싼 노사 간 대립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노동부와 노동위원회는 원청의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이행을 사용자성 인정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