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텍사스의 균열…공화당은 왜 경고음을 놓쳤나 [기자수첩-국제]
입력 2026.06.24 07:00
수정 2026.06.24 07:01
트럼프 강세 지역서 민주당 반란
변한 유권자, 그대로인 선거 전략
익숙함에서 시작되는 위기
미국 텍사스주 연방 하원 18선거구 보궐선거가 치러진 1월 31일 크리스천 메네피 민주당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정치에서 텍사스는 오랫동안 공화당의 핵심 지지 기반으로 꼽혀왔다. 1994년 이후 민주당이 주 전체 선거에서 승리한 적이 거의 없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두번 승리할 때도 텍사스에서의 압승이 밑바탕이 됐다. 그런데 올해 들어 공화당이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패배가 바로 텍사스에서 나왔다.
지난 1월 텍사스주 상원 9선거구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테일러 레메트가 승리하며 공화당 의석을 뒤집었다. 해당 지역은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17%포인트 이상 앞섰던 곳이다. 민주당은 이 선거에서 30%포인트가 넘는 스윙을 기록하며 예상 밖 승리를 거뒀고, 공화당 내부에서도 "경고 신호"라는 평가가 나왔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같은 시기 실시된 연방 하원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 크리스천 메네피가 승리했다. 휴스턴 지역의 연방하원 18선거구를 차지하며 민주당은 텍사스에서 연이어 성과를 거뒀다.
최근 공화당의 '텍사스 위기론'이 다시 주목받은 이유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전국 각지 특별선거에서 잇따라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지지 성향의 정치 싱크탱크들은 1월 텍사스 선거 결과가 일회성 이변이 아니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공화당이 텍사스에서 지지율을 잃고 있는 이유는 세가지다.
첫 번쩨는 교외 지역의 변화다. 과거 텍사스 교외는 백인 중산층과 보수층이 압도적이었지만 최근 10년 동안 인구 구조가 크게 바뀌었다. 댈러스·포트워스, 오스틴, 휴스턴 주변으로 젊은 전문직과 고학력 인구가 대거 유입됐다. 이들은 공화당의 전통적 문화전쟁 이슈보다 주택 가격, 교육, 의료비, 생활비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두 번째는 공화당의 지나친 우경화다. 최근 텍사스 공화당은 국경 문제나 경제 정책보다 문화전쟁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 대회에서는 반이슬람, 기독교 민족주의 성향 의제가 큰 호응을 얻었지만 이는 중도층 확장에는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 번째는 트럼프 효과의 변화다. 과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가 곧 승리를 의미했다. 하지만 올해 텍사스 공화당 경선에서는 트럼프 지지를 받은 후보가 이기더라도 본선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존 코닌 상원의원이 켄 팩스턴 텍사스 법무장관에게 패배한 사건은 공화당 내 온건파의 약화를 보여줬다. 문제는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전략이 본선에서는 중도층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31일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변화는 텍사스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한때 공화당 텃밭이었던 애리조나와 조지아는 이미 경합주가 됐다. 북부 버지니아 역시 워싱턴DC 외곽 인구 유입 이후 민주당 우세 지역으로 바뀌었다. 텍사스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최근 치러진 각종 특별선거에서 민주당은 2024년 대선 득표율보다 평균적으로 높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는 단순히 특정 지역의 이변이 아니라 전국적 정치 흐름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우리에게도 이는 낯설지 않은 현상이다. 과거 선거에서 대구는 보수 정당의 압도적 우세 지역이었지만, 최근 민주당 득표율은 과거보다 꾸준히 높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다.
정치에서 위험한 것은 패배가 아니라 익숙함이다. 늘 이기던 곳에서는 변화를 가장 늦게 발견하기 마련이다. 오래된 댐도 무너지는 당일보다 물이 조금씩 새기 시작하는 순간이 더 중요하다. 문제는 대부분 사람들이 물이 새는 소리를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는 점이다. 위기는 패배와 함께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쌓여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