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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정통부, 100년 정유공정 뒤집은 ‘분자 정유’ 기술 개발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6.06.25 00:02
수정 2026.06.25 00:02

KAIST, 원유 안 끓이고 필터로 걸러

에너지 31% 줄인 차세대 기술

상온에서 가압한 원유를 다공성 PAN 분리막에 흘려보내 휘발유·나프타·등유 등 가벼운 성분만 걸러내는 공정 모식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내 연구진이 100여 년간 이어진 원유 정제 방식을 뒤집는 기술을 개발했다. 원유를 350℃ 이상으로 끓이던 기존 증류 공정 대신, 값싼 고분자 분리막만으로 상온에서 원유를 걸러내는 데 성공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고동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원유를 끓이지 않고 정밀하게 분리하는 차세대 분리막 기술을 개발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과기정통부의 개인기초연구와 선도연구센터 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현재 세계 정유산업은 원유를 고온으로 가열한 뒤 끓는점 차이에 따라 나누는 증류 공정에 의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는 연간 1100TWh에 달해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대표적인 고에너지 산업으로 꼽힌다.


연구팀은 기존 접근법을 정반대로 뒤집었다. 별도 선택층을 코팅하지 않은 다공성 폴리아크릴로니트릴(PAN) 분리막에 실제 원유를 그대로 통과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원유 속 무거운 탄화수소 성분이 분리막 내부 기공에 자발적으로 침착되면서 2나노미터 이하의 초미세 통로를 형성하는 ‘자기제한적 기공 수축(Self-limiting pore constriction)’ 현상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통로는 가벼운 나프타와 휘발유, 등유 성분만 통과시키고 무거운 성분은 걸러냈다. 일반적으로 분리막 성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여겨졌던 오염(파울링) 현상을 오히려 분리 기능으로 활용한 셈이다.


연구팀은 아라비안 라이트 원유 기준 기존 최고 성능 대비 23배 이상 높은 투과도를 기록했다. 28일 연속 운전에서도 성능 저하가 없음을 확인했다.


연구팀이 공정 시뮬레이션을 수행한 결과, 원유를 먼저 분리막으로 처리한 뒤 남은 성분만 증류하면 기존 공정 대비 에너지 사용량은 31.6%, 냉각수 사용량은 20.7%,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7.6%, 운영비는 36% 각각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술은 기존 정유공장을 전면 교체할 필요 없이 배관 사이에 분리막 모듈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용화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은 국내 정유·석유화학 산업 전반에 확대 적용하면 연간 약 1000만톤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승용차 약 400만대의 연간 탄소 배출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연구팀은 나프타·방향족 화합물 분리,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정제, 배터리 용매 회수, 의약품 생산 공정 등 다양한 분야로 기술 확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해외 기술 의존도가 높은 분리 공정을 국산 기술 기반의 ‘분자 정유 플랫폼’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성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이번 성과는 정유 공정의 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동시에 낮추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뜻깊은 결과”라며 “앞으로도 기초연구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로 이어지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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