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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오를 땐 묶이고 내릴 땐 인하 압박…정유사, 손실보전 앞두고 부담 가중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6.06.22 15:20
수정 2026.06.22 15:20

최고가격제 손실보전 정산 앞두고 국제유가 급락

고가 재고 부담에 주유소 가격 인하 요구까지 확산

공급가 투명성 요구도 커져…SK에너지, 사전고지 도입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정유업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유가 급등기에는 석유 최고가격제로 공급가격이 제한됐고, 유가 하락기에는 국내 기름값 인하 요구가 커지는 흐름이다. 세부적인 손실보전 기준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고가 원유 재고 부담과 공급가 투명성 요구까지 더해지면서 정유사들의 하반기 실적 변수도 늘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정유사들이 입은 손실을 원가와 적정마진 등을 기준으로 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손실보전 자체는 최고가격제 도입 당시부터 예정된 절차다. 쟁점은 보전 여부가 아니라 실제 보전액을 어떤 기준으로 산정하느냐다.


최고가격제는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와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하자 국내 소비자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시행됐다. 정유사 공급가격에 상한을 두는 방식으로 기름값 급등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정유업계는 이 기간 국제 석유제품 가격 상승분을 국내 공급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원가 산정 기준 두고 정부와 업계 이견


문제는 손실을 보는 기준이 정부와 업계 사이에서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는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반영할 수 있었던 국제 석유제품 가격과 실제 공급가격의 차이를 손실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가 실제 원가와 적정마진 등을 중심으로 보전액을 산정하면 업계가 기대하는 보전 규모와 차이가 날 수 있다.


정유업 특성상 원가 계산도 단순하지 않다. 정유사는 원유 한 배럴을 정제해 휘발유, 경유, 등유, 항공유, 나프타 등을 함께 생산한다. 원유 구입가격과 운송비, 보험료, 환율, 정제비, 유통비를 유종별로 어떻게 나눌지에 따라 손실 규모가 달라진다.


정유사별 상황도 다르다. 들여오는 원유 종류와 재고 수준, 정제설비 구성, 제품 판매 비중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최고가격제를 적용받았더라도 실제 손실과 보전액은 회사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손실보전 기준이 향후 실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이유다.


유가 하락에 재고손실과 여론 압박 가중


국제유가 급락도 정유사에는 부담이다. 소비자에게는 기름값 인하 기대 요인이지만 정유사에는 단기 재고평가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고가에 들여온 원유와 석유제품 재고를 낮아진 시세로 다시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유사는 원유를 사들인 뒤 국내로 들여와 정제하고 제품으로 판매하기까지 일정 시간이 걸린다. 유가가 오를 때는 기존 재고 가치가 올라 재고평가이익이 날 수 있지만 유가가 급락하면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정제마진과 석유제품 수급이 받쳐주면 영업이익을 일부 방어할 수 있지만 유가 하락 속도가 빠를수록 재고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 가격 인하 압박도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가 떨어졌는데도 국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2000원 안팎에 머물면서 소비자 체감과 업계 설명 사이의 간극이 커진 상태다. 정유업계는 원유 도입과 정제, 유통 과정에 시차가 있다고 설명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유가 하락분이 더디게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소비자가격에는 정유사 공급가뿐 아니라 주유소 재고, 운영비, 지역 경쟁, 유류세 등이 함께 반영된다. 그러나 기름값이 2000원대에 머무는 상황에서는 이런 구조적 설명만으로 소비자 불만을 해소하기 쉽지 않다. 국제유가 하락기일수록 공급가격과 주유소 판매가격의 반영 속도가 민감한 쟁점이 되는 이유다.


공급가 투명성 요구까지 커져


가격 결정 구조를 둘러싼 투명성 요구도 커지고 있다. 정유사와 주유소 간 거래에서는 석유제품을 먼저 공급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 시장 가격을 반영해 공급가격을 확정·정산하는 사후정산 방식이 활용돼 왔다. 국제유가와 국제 석유제품 가격 변동성을 반영한 방식이지만, 고유가 국면에서는 가격 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 SK에너지는 업계 처음으로 주유소 공급가격을 주 단위로 사전에 고지하고 사후정산 제도를 폐지하는 새 가격정책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는 최고가격제 손실보전 정산과는 별개로 정유사와 주유소 사이의 공급가격 확정 방식을 바꾸는 조치다. 새 가격정책은 관련 절차를 거쳐 석유 최고가격제 종료 이후 시행된다.


SK에너지는 오는 23일부터 최고가격제 종료 때까지 최장 한 달간 SK주유소 차량용 경유 판매가격도 리터당 50원 할인 지원한다. 직영주유소 73곳은 판매가격을 직접 낮추고, 자영주유소에는 같은 수준의 가격 인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생계형 운수 사업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고유가 국면에서 커진 정유업계의 가격 안정 요구에 대응하는 성격이 있다.


정유업계의 부담은 유가 변동 자체보다 정산 기준과 가격 반영 속도에 있다. 최고가격제 기간 발생한 손실을 어디까지 인정할지, 고가 원유 재고 부담을 어떻게 흡수할지, 국제유가 하락분을 소비자가격에 얼마나 빠르게 반영할지가 수익성과 시장 신뢰를 가를 변수로 떠올랐다. 손실보전 규모와 정산 시점이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가격 인하 압박과 공급가 투명성 요구까지 커지면서 정유사들의 하반기 실적 방어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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