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급여화' 논할 때, 더 절박한 그들을 살펴봤는가 [기자수첩-ICT]
입력 2026.06.23 07:00
수정 2026.06.23 07:00
치료 기회를 기다리는 중증·희귀질환 환자들
의료 현장선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 지속
삶의 질 논의에 앞서 국민 생명부터 지켜야
탈모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치료제가 없어서 아이들이 하루하루를 기다릴 때, 의사로서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소아 희귀질환을 진료하는 의사들을 만나면 종종 듣게 되는 말이다.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모든 환자가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사용 중인 치료제가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거나, 건강보험 급여 문턱을 넘지 못해 치료 기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소아 환자들에게 시간은 더욱 절박하다. 성장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회복하기 어려운 기능 저하나 영구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의사들은 새로운 치료제 소식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약이 있어도 쓸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성인 환자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암 환자들은 신약 급여 등재를 기다리고, 희귀질환 환자들은 수억원에 달하는 치료비 앞에서 고민한다. 병원 현장에서는 여전히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 문제가 반복되고 있고, 의료진은 대체 약제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이처럼 생명과 직결된 치료와 의약품 접근성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꺼내든 ‘탈모 급여화’ 추진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론 탈모는 단순한 미용 문제가 아니다. 탈모 환자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외모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와 자신감 저하, 사회생활의 위축 등 적지 않은 정신적·사회적 부담을 안겨준다. 실제로 탈모를 질환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인식도 과거보다 크게 확산됐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은 무한하지 않다. 새로운 급여 항목이 추가될수록 재정 부담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건강보험 재정이 올해 약 5조원의 적자를 기록한 뒤 적자 규모가 점차 확대돼 2035년에는 39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잠재 환자를 포함해 약 1000만명으로 추산되는 탈모 인구까지 고려하면, 탈모 급여화가 재정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건강보험이 직장인들의 월급봉투에서 일정 금액을 떼 가는 명분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사회안전망'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먼저 보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역시 피할 수 없다.
정부는 다음 달 ‘모두의 토론회’를 열고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문제를 첫 번째 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취지 자체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논의가 단순히 탈모 급여화 찬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금도 치료제를 기다리는 희귀질환 아이들이 있고, 신약 급여 적용을 기다리는 중증질환 환자들이 있다. 건강보험이 삶의 질 향상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도 의미가 있지만, 그에 앞서 생명과 직결된 치료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지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먼저 투입할 것인가. 탈모 급여화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어쩌면 그 지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