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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도 못 챙겼는데’ 펜싱 오상욱…악재 뚫고 아시아 정상 탈환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6.06.20 11:10
수정 2026.06.20 11:11

올림픽공원 봉쇄로 장비 갖추는데 어려움

2년 만에 아시아선수권 정상 오르며 포효

오상욱 정상 탈환. ⓒ 대한펜싱협회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대전광역시청)이 아시아 무대 정상을 탈환했다.


오상욱은 19일(현지시간) 인도 델리에서 열린 2026 아시아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중국의 뤄샤오퉁을 15-8로 완파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2024년 대회 이후 2년 만에 아시아선수권 왕좌를 되찾은 순간이었다.


올해 9월 열리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타이틀 방어를 앞두고 전초전 격인 이번 대회에서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출전 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겨운 생존기'에 가까웠다.


이번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펜싱 국가대표팀은 황당하고도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핸드볼경기장에 위치한 대한펜싱협회 사무국과 국가대표 장비 창고가 완전히 봉쇄된 것.


현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은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시민 단체와 시위대로 인해 전면 봉쇄된 상황이다.


이로 인해 협회 행정 기능은 마비됐으며 특히 대회를 앞둔 선수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실제로 펜싱 대표팀 선수들은 아시아선수권을 위해 맞춰둔 국가대표 공인 펜싱 블레이드(칼)와 도복, 보호장구 등이 모두 핸드볼경기장 내 창고에 있어 이를 반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와 마주했다.


결국 장비를 챙기지 못한 선수들은 출국 직전까지 '각자도생'에 나섰다. 오상욱을 비롯한 대표팀 선수들은 급하게 자신들의 소속팀(대전광역시청, 대구광역시청 등)에 연락해 훈련용으로 남겨두었던 여분의 블레이드와 장비를 긴급 공수했다. 일부 선수들은 동료들에게 장비를 빌리거나 사비를 들여 급하게 장비를 조달해야 했다.


자신의 손에 완벽히 익지 않은 급조된 장비를 들고 인도 델리행 비행기에 오른 선수들의 심정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국제대회에서 미세한 칼끝 감각 하나로 승패가 갈리는 사브르 종목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는 경기 시작 전부터 치명적인 페널티를 안고 뛰는 것과 다름없었다.


오상욱. ⓒ 뉴시스

그러나 오상욱은 강했다. 장비 미반출이라는 사상 초유의 악재 속에서도 세계 최강의 검객다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오상욱은 32강전에서 홈 이점을 안은 카란 싱(인도)을 15-11로 제압하며 예열을 마쳤다. 이어 16강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의 강호 이슬람베크 아브다조프를 15-6으로 가볍게 돌려세웠고, 8강에서는 숙적 일본의 고쿠보 마오를 15-12로 꺾고 준결승에 올랐다.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이자 대표팀 후배인 도경동(대구광역시청)이었다. 도경동 역시 협회 마비 사태로 인해 소속팀에서 장비를 급조해 출전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투혼을 발휘하며 4강까지 진격했다. '한국 사브르의 미래'들이 펼친 외나무다리 맞대결에서는 형 오상욱이 웃었다. 오상욱은 도경동을 15-9로 제압하고 결승에 안착했다. 비록 타이틀 방어에는 실패했지만, 도경동은 값진 동메달을 획득하며 2년 연속 아시아선수권 시상대에 오르는 저력을 선보였다.


결승전 상대는 중국의 뤄샤오퉁. 오상욱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급조된 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카로운 플레슈(막고 찌르기)와 전격적인 공격을 선보이며 15-8로 경기를 끝냈다.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2관왕에 이어, 2년 만에 아시아선수권 개인전 타이틀까지 탈환하며 '아시아 최강자'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순간이다.


한편, 협회 행정은 마비됐지만, 현장에 있던 리더십은 빛났다. 아시아펜싱협회 부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최신원 대한펜싱협회장은 인도를 직접 찾아 선수들의 손을 잡았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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