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룸'·마티 슈프림' 연타 흥행…믿고 보는 A24, 영화사 이름이 취향이 된 시대 [D:영화 뷰]
입력 2026.06.20 11:14
수정 2026.06.20 11:14
중예산 작가주의 영화의 새로운 성공 공식
최근 A24는 '마티 슈프림'과 '백룸'을 연이어 흥행시키며 자체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백룸'은 제작비 약 1000만 달러 규모의 저예산 영화임에도 전 세계 누적 흥행 수익 2억 5653만 달러를 기록하며 A24 역대 최고 흥행작에 올랐다. 기존 1위였던 '마티 슈프림'의 1억 9127만 달러 기록을 넘어선 수치로, 불과 몇 달 사이 A24 역대 흥행 1·2위 작품이 모두 교체됐다.
‘백룸’ ‘마티 슈프림’ 포스터 ⓒA24
흥미로운 점은 두 작품이 전혀 다른 영화라는 사실이다. '백룸'은 인터넷 크리피파스타에서 출발한 공포 영화이고, '마티 슈프림'은 스포츠와 청춘 드라마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장르와 타깃층, 관객이 기대하는 경험까지 모두 다른데도 관객들은 두 영화를 'A24 영화'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소비한다.
이는 할리우드에서도 보기 드문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관객은 영화사보다 캐릭터와 프랜차이즈를 먼저 소비한다. 디즈니라면 마블이나 픽사, 워너브러더스라면 DC, 유니버설이라면 '쥬라기 월드'나 '분노의 질주' 같은 IP가 소비의 중심이다. 반면 A24는 캐릭터, 세계관, 장기 프랜차이즈 없이 영화사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업계에서는 '백룸'의 성공을 원작 IP의 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영화 전문 매체 데드라인은 '백룸'의 기록적인 흥행을 분석하며 A24 브랜드와 젊은 관객층의 결집을 핵심 배경으로 짚었다.
2012년 설립 이후 A24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지만, 그 작품들 사이에는 공통된 정체성이 있었다. 감독의 창작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제작 방식, 상업적 공식보다 인물의 내면과 정서를 우선하는 서사, 기존 장르 문법을 비틀어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내는 연출 태도다.
'문라이트', '미드소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더 웨일', '시빌 워', '백룸'까지 장르는 제각각이지만 관객들은 그 안에서 'A24스러움'을 발견한다. 결국 관객은 개별 작품이 아니라 A24가 보증하는 감각과 경험을 함께 소비하는 셈이다.
이 현상은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OTT와 숏폼 플랫폼의 확산으로 선택지는 무한히 늘었지만 관객의 시간은 한정적이다. 그 결과 관객들은 개별 작품을 일일이 검토하기보다 신뢰하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패션 브랜드가 정체성을 상징하고 음악 레이블이 취향을 대변하듯, 영화사 역시 하나의 코드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A24가 이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할리우드가 비워둔 틈새시장이 있다.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마블과 DC, '아바타', '쥬라기 월드' 같은 거대 프랜차이즈에 자원을 집중하면서 중예산 작가주의 영화 시장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A24는 그 공백을 파고들어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감독 중심 영화를 제작하고, SNS와 굿즈, 팬덤 문화를 결합한 마케팅으로 젊은 관객층을 끌어들였다.
이제 관객들은 배우나 감독만을 보고 A24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 공포영화든 스포츠 드라마든 SF든 가족극이든, A24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일정 수준의 감각과 경험을 기대한다. 개별 작품보다 영화사 자체가 먼저 소비되는 시대에 A24가 구축한 신뢰는 무엇보다 강력한 자산이 됐다.
그런 점에서 A24가 쌓아온 작품들과 최근의 흥행 성과는 영화사가 하나의 문화적 브랜드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