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선관위만 때려, 내 쪽으로는 곁눈질도 말고”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6.17 07:00
수정 2026.06.17 07:00

ⓒ연합뉴스TV 갈무리

중앙선관위원장은 대법관, 시․도선관위원장은 지방법원장, 구·시·군 선관위원장은 현직 판사가 맡는 게 관례로 이어지고 있다. 3·15 부정선거의 교훈으로 선거관리 기능을 행정부에서 분리했고, 그 중립성을 상징하기 위해 위원장을 법관이 맡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의미는 있었지만 반드시 긍정적 효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게 이번 투표용지 부족사태로 확인됐다.


선관위, 해체-신설 수준의 쇄신 필요


법관이 본업이고 선관위원장은 비상임이다. 상근직처럼 출퇴근하고 업무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선거가 없을 때는 월 2~3회, 선거 때는 이틀에 한 번 정도 출근해서 회의를 주재하는 게 위원장의 주 업무라고 한다. 선거 및 일상의 업무를 사실상 총괄하는 사람은 상임위원, 그의 지시를 받아 사무처 혹은 사무국을 이끄는 사람은 사무총장 또는 사무국장이다.


이 바람에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위원장은 실무를 담당하지 않고, 상임위원과 사무총장은 최고 책임자가 아니다. 그런데다 선관위는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다. 외부의 감시 감독체계가 미비한 기관이 자체적 노력만으로 유능하고 청렴하며 도덕적인 조직으로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좀 심하게 말하면 연목구어(緣木求魚)다. 헌법기관으로서의 중앙선관위가 지난 1963년 출범한 이래 63년이 지났다. 조직의 노화·이완현상이 깊어지기에 부족하지 않은 세월이 쌓였다고 하겠다.


투표용지가 부족해서 투표시간을 연장하거나 아예 투표를 못하는 사태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사건이다. 대의민주정치의 성립과 정당성은 선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물론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가 전제돼야 한다. 당연히 공정하고 공명한 선거관리도 필수 조건이다. 선거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면 대의민주정치의 정당성도 함께 무너진다.


선관위 해체론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의 선관위는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독립적‧중립적 입장에서 선거 관리를 할 주체를 찾기가 불가능하다. 다른 나라에 외주를 줄 것이 아니라면 선관위의 전면적 쇄신과 개편의 방향에서 길을 모색할 일이다. 위원장을 상임직으로 하면서 위원장 대리 역할을 하는 상임위원 직책은 없애고 바로 사무총장으로 이어지게 조직을 재구성하는 것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업무처리를 효율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개헌’의 핑계로 삼을 일도 없어지고….


권한과 역할을 축소하자는 주장도 있다. 설득력이 있기는 하지만 대안이 마땅찮다. 선관위는 각종 선거 및 국민투표 관리가 본업이지만 정당사무, 정치자금 관리, 선거법 위반 예방 및 단속, 선거제도 연구 및 교육 업무도 맡고 있다. 정부나 국회 또는 법원에 맡기기에 부적합한 일들이다. 그래서 선관위가 담당하게 된 업무인데 제도의 미비로 조직 구성원들의 무책임성, 무사안일, 권한남용, 배타적․독선적 업무처리 관행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문제를 키웠다. 채용비리에 대해 “선관위는 가족회사다”라고 말할 정도라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당일투표 수개표, 부정선거 재선거”


지금도 회계감사는 감사원이 맡고 있다. 직무감사를 감사원이 담당하는 것을 거부하는 데는 나름의 명분이 있다.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기관인 만큼 정부가 선거관리에 개입 또는 간섭할 여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감사원보다 더 적절한 감찰기관을 찾기는 어렵다. 따라서 감사원에 직무감찰권도 부여하되 그 범위를 한정하고 시기를 제한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독립성과 책임성을 함께 확보하는 게 가능해지지 않을까?


선관위의 기강해이와 책임의식 결여로 빚어진 투표용지 부족만큼이나 놀라운 사실은 잠실 올림픽공원 내 핸드볼 경기장 앞 집단 항의에 대한 정권 측의 인식이다. 항의 참여자들은 체육관 앞 광장에서는 물론 주변 그늘에서도 투표 방해 행위를 규탄하고 있다. 지하철역에서 체육관으로 통하는 길 일부의 바닥과 둔덕을 손 글씨 주장이나 호소문이 빼곡히 채웠다. 1983년 KBS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당시 여의도 KBS본관 건물의 벽과 기둥은 물론 바닥까지 뒤덮었던 손글씨 벽보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다.


청년들이 주축이 된 이 항의집회는 주도세력이 따로 없다. 저마다 자기 의지로 그곳에 와서 손글씨 구호 또는 메시지 피켓을 들고 “당일투표 수(手)개표” “부정선거 재선거”를 외쳤다. 당초엔 ‘부정선거’로 규정하기를 거부하는 목소리도 많았으나 갈수록 사전투표와 관련한 부정선거 의혹이 중폭 됨에 따라 구호로 외쳐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열린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에서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주권정부’를 선창하고 정권의 유력자들이 말끝마다 ‘국민’을 들먹였지만 투표용지 부족사태는 국민주권, 국민기본권의 부인이나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선거 다음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매우 큰 유감’을 표하면서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7일엔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경찰 합동수사본부 구성을 지시했고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는 “첨단 대한민국, 모범 민주국가 대한민국을 한순간에 망가뜨렸다”는 격앙된 평가를 내놨다.


그러나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가진 화상 수석보좌관회의의 말에서 풍긴 인식은 달라져 있었다.


“참정권 침해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문제 제기는 다 인정하고 수용한다. 그런데 이걸 악용해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선동하는 세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선거 결과 조작을 운운하면서 부정선거론을 퍼뜨리는 건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국민들의 귀한 목소리를 모욕하는 반사회적 행태이다.”


서울경찰청장은 ‘패가망신’ 들먹여


방점이 ‘음모론 선동 세력에 대한 경고’에 찍혔다. 청년들이 뙤약볕 아래에서도 참정권 침해에 대한 규탄과 제도 개선을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 이 저항운동의 순수성을 의심하며 경고하는 언급을 화상 수보회의에서 할 계제가 아니다. 이번 사태로 ‘부정선거’에 대한 의심도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국민’이 외치고 있는데 이를 ‘국민들의 귀한 목소리를 모욕하는 반사회적 행태’로 규정하다니! 다음날 서울경찰청장은 한술 더 떴다.


“아무 생각 없이 불법 행위에 동조했다가 공범으로 적용될 경우 패가망신할 수 있다.”


느낌으로는 이 대통령이 “선거관리위원회만 때려, 정부쪽으로는 곁눈질이라도 하지마”라고 엄포를 놓는 듯하다. 선관위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을 한 순간에 망가뜨렸다”며 분개했지만 스타벅스코리아의 광고 디자인과 문안과 관련해서는 즉각적으로 극단적 혐오감을 드러냈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인두겁을 쓰고서는…’ 등은 저잣거리에서조차 ‘생경’하게 들릴 정도의 험한 표현이다. 대통령의 반응 속도 및 정도가 비교된 바람에 일각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고 여겨진다.


대통령은 국정전반에 대해 무한책임을 진다. 물론 정치적 선언이다. 그러나 국민은 대통령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기대한다. 지금 왜 이 대통령 자신과 민주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민심은 조작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금방 회복력을 발휘한다. 누른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눌려 있지는 않는다. 집값을 자신이 눌러서 이만큼이라도 잡고 있다 했지만 그게 한시적 효과일 뿐인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얘기이긴 한데 덧붙여두자. 국민의힘 이야기다. 15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결과로는 지지율이 44.3%였다. 38%에 그친 더불어민주당을 오차범위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난공불락인 것 같던 민주당 지지율이 꺾인 지금이 단합의 기회다.


조선시대 붕당정치는 288년 동안 25개의 당파 이름을 남겼다. 특징은 어느 당이든 집권하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분당(分黨)됐다는 점이다. 자리를 두고 싸운 탓이었다. 현대한국정치사에서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가운데 수많은 정당이 명멸했다. 지금은 민주당이 당권을 둘러싸고 내분 현상을 표출하고 있다. 이런 시절에 국민의힘까지 분열 경쟁을 벌일 일이겠는가. 나눠가질 자리도 없으니 서로 감싸 안고 얼싸안는 것만이 장래를 기약할 수 있는 길이다. 싸움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