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와의 전쟁 경영평가에 담겼다…중대재해 기관 ‘초긴장’ [경평의 시간 ②]
입력 2026.06.02 18:00
수정 2026.06.02 18:00
산업재해 예방 배점 5배 확대
잇단 공공기관 사고에 배점 개편
평가위원 전문성 도마…현장 왜곡 경고
관련 이미지. ⓒ김성웅 기자(생성형AI를 활용해 제작했으며, 수치와 내용은 기자가 검수함)
올해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경평)에서 안전·재난관리 배점이 대폭 강화되면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 경고등이 켜졌다.
출범 직후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재명 정부는 즉시 공공기관 경평 지표 개편에 나섰다.
재정경제부가 확정한 ‘2025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에 따르면 공기업 기준 산재예방 분야 배점이 기존 0.5점에서 2.5점으로 5배 확대됐다.
정권따라 흔들린 안전 배점…순위 변동 예고
안전·재난관리 배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화를 거듭했다.
과거 윤석열 정부는 재무건전성을 공공기관 경평의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며 재무성과관리 배점을 10점에서 20점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대신 안전·재난관리 등 공공성 관련 배점을 축소했다.
이재명 정부는 방향을 다시 틀었다. 산재 감축을 핵심 국정과제로 강조하면서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평가하는 공공성 배점을 16.5점에서 20.5점으로 높였다. 대신 재무성과관리 배점은 21점에서 15.5점으로 줄였다.
소수점 차이로도 등급이 갈리는 경평 구조에서 이같은 변화는 기관별 순위를 뒤흔들 수 있다.
배점 개편의 배경에는 잇단 공공기관 관련 사고가 있다.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세종안성고속도로 건설현장 교량 붕괴사고, 청도 무궁화호 열차사고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공공기관 안전관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졌다.
지난해 경평에서 2024년 중대재해로 기관장 경고 조치를 받은 기관은 국가철도공단, 신용보증기금, 한국도로공사, 한국산업단지공단,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중부발전, 한국철도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한전KPS 등 10곳이다.
이 중 한전KPS는 2024년도 경평에서 A등급을 받았지만 지난해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해 두 등급 하향 조정됐다.
청도 무궁화호 열차사고를 낸 한국철도공사는 최근 3년간 경평 등급이 E→D→C로 상향됐다. 윤 정부가 중점을 뒀던 재무건전성 부분이 개선된 결과였다. 그러나 올해는 안전 배점이 강화된 만큼 사고 이력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평가를 위한 안전 관리 조장”…현장 왜곡 경고
일각에서는 안전 배점 강화가 오히려 현장 안전을 왜곡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공공기관들은 경평에 대응하기 위해 전담 조직을 꾸리고 연중 서류 작성에 매달리는 실정이다. 성과급과도 직결돼 있어 평가 등급에 따라 직원 1인당 연간 수천만원의 차이가 발생하는 만큼 기관 입장에서는 평가 점수가 사실상 최우선 과제가 된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기관들이 평가 항목에만 매몰되다 보니 실질적인 안전 관리는 뒷전이 되고 있다”며 “공공기관 안전 평가를 별도로 실시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기관 안전 부서는 1년 내내 평가 준비에 시간을 다 보내고 있다”며 “고비용 저효과의 안전을 조장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공공기관 경평”이라고 강조했다.
평가 위원의 전문성 부족 문제도 제기됐다. 안전 관련 지표 평가는 주로 안전공학과 교수들이 맡지만 현장 경험과 이론적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안전과 관련된 교수라면 누구나 평가 위원이 될 수 있는데 현장 경험도 없고 이론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 없는 사람들이 대거 투입된다”며 “평가받는 기관보다 오히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평가 대상 축소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평가 대상 기관을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나가야 한다”며 “지금은 평가 범위가 너무 넓어 역량이 안 되는 평가자들이 대거 투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재경부는 경영평가가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기존 지표가 재무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지적에 따라 공공성과 효율성을 균형 있게 평가하도록 배점을 조정했다”며 “앞으로도 기관·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