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화풀이 타깃, 정용진 다음은 누구? [박영국의 디스]
입력 2026.05.26 14:13
수정 2026.05.26 14:40
대통령이 좌표 찍자 강성 지지층 공세 심해져
장관들까지 나서 '불매' 지시…정부차원에서 압박할 일인가
"타깃 될라" 기업들 덜덜 떨던 군부독재 공포정치 오버랩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에서 열린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스타벅스, 이마트, 신세계그룹, 그리고 정용진 회장에게 무시무시한 좌표가 찍혔습니다. 불매운동은 스타벅스를 넘어 모기업 이마트까지 번졌고, 신세계그룹 계열사들이 진행하는 각종 사업을 철회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옵니다.
결국 정용진 회장이 26일 직접 나서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좌표를 찍은 이가 바로 국가의 최고권력자이고,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강성 지지층과 ‘알아서 기어야 하는’ 행정부 산하 기관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었는데 무조건 빌고 봐야지 어쩌겠습니까.
사태의 발단인 스타벅스코리아(SCK컴퍼니)의 ‘탱크데이’. 하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기해 이뤄진 이 철없는 이벤트는 당연히 하지 말았어야 할 일입니다. 실수라고 하기엔 이벤트 문구와 날짜가 너무 공교롭습니다.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까지 추임새로 넣어 스스로 빠질 수렁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설령 실수라 쳐도 신세계그룹 정도의 대기업에는 ‘역사적 감수성 부족’만으로도 죄가 됩니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겠죠. 저지른 잘못의 경중, 그리고 고의성 여부에 따라 처벌의 강도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이른바 ‘국민정서법’입니다. 대다수의 국민이든, 특정 계층이나 사상을 공유하는 집단이든, 자신들이 분노하는 만큼 불매운동 등의 제제를 가하는 건 누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막강한 규제기관을 거느린 정부는 다릅니다. 잘못의 경중을 철저히 따져 그에 걸맞은 적절한 처분을 내리는 게 정부의 역할입니다.
그래야 할 정부가 ‘분노’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을 앞세워 스타벅스 공격의 선봉에 섰습니다.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행정적, 법적, 정치적 책임이 주어져야 할 것”이란 말이 행정부의 수장인 이재명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대통령의 말을 단순히 ‘개인감정의 배설’로 듣고 넘길 공무원은 없습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의 ‘반역사적 행태’ 발언을 시작으로 주요 정부 부처들의 스타벅스 관련 상품 제공 중단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강력한 팬덤을 지닌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그의 한마디는 팬덤의 ‘행동’을 유도하는 뇌관입니다. 그의 강성 지지층은 스타벅스는 물론, 이마트,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에 나섰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탱크데이’라는 철없는 이벤트가 5월 18일에 튀어나오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기업에는 결재 단계라는 게 있습니다. 실무자가 기획하고 담당자가 승인하며, 이후에도 임원, 대표이사 등 여러 단계를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누가 ‘불순한 의도’를 심었는지, 임원이나 대표이사가 직접 불순한 의도에 개입한 것인지, 판단능력이나 진중함의 결여로 걸러내지 못한 것인지, 일년에 수십 번씩 진행되는 마케팅 행사가 스타벅스코리아를 넘어 그룹 컨트롤타워까지 올라갈 사안인지 판단이 선행돼야 하는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을 필두로 한 공격 진영은 애초에 최정점인 정용진 회장을 이 사태를 직접 지휘한 ‘수괴’로 지목한 듯합니다. 사태 초기 신속하게 스타벅스코리아 CEO(최고경영자)를 해임했음에도 불구, 공세가 더 거세지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직접 지휘했든, 걸러내지 못했든 둘 다 잘못한 일이고 사과해야 할 일이긴 합니다. 회사측은 이번 ‘탱크데이’ 이벤트를 팀장, 담당, 본부장, 대표이사까지 총 4단계의 보고 절차를 거쳐 진행됐지만, 그 과정에서 누구의 지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메일의 첨부파일조차 열지 않고 관행적으로 승인했답니다. 마케팅 업무의 즉시성 때문이라 해도 잘못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의 경중은 다릅니다. 의도적으로 나쁜 짓을 한 사람이랑 머리가 나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보진 말아야겠죠.
이 대통령과 그에게 종속된 국무위원들, 그리고 그를 따르는 강성 지지층의 분노가 향하는 종착점이 어디일지 궁금합니다. 일반 국민들이야 화가 풀릴 때까지 불매운동을 하더라도, 대통령과 정부는 결과를 생각하며 행동하는 게 정상입니다.
스타벅스코리아의 경영권이 이마트에서 미국 스타벅스 본사로 넘어가고(브랜드이미지 악화에 따른 콜옵션 행사를 통해), 정용진 회장이 이마트 지분을 모두 처분하고 경영에서 손을 떼는 게 그들이 생각하는 해피엔딩이고, 그래야 이 사태가 정리될까요.
정 회장의 사퇴는 신세계그룹의 현 지배구조와 미래 승계 구도를 뒤엎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 회장이 사태의 ‘주범’이라는 게 명확하다면 모를까, 계열사 CEO선에서 결재가 종결되는 사안을 그룹 회장이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쫓겨나고, 그룹의 승계 구도가 뒤집어지는 게 ‘적절한 처분’인지 의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타깃이 정용진 회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수년 전 SNS에 ‘멸공’을 언급하며 정치색을 드러낸 그에게 앙심을 품은 이들이 이번에 “잘 걸렸다”하며 보수 성향의 재계 인사를 제거하려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저도 공산당은 싫어하지만, 대규모 기업집단과 수많은 종사자들을 책임지는 사람이 가볍게 정치색을 드러낸 걸 두고 잘했다고 하진 못하겠습니다.
오늘 정 회장의 사과 이후 이재명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이 분노에 찬 공세를 멈출 것인지, 원하는 건 ‘사과’가 아닌 ‘사퇴’라며 더 공세를 강화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설령 사태가 이대로 봉합되더라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좌표 찍히면 죽는구나’라는 쓰디 쓴 교훈이 남을 것 같습니다. 기업인들이 ‘다음 타깃은 누구일지’ 공포에 떨며 대통령 말을 아주 잘 듣는, 수십년 전 군부 독재의 공포정치가 떠올라 등골이 오싹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추구하는 게 그런 세상은 아니길 간절히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