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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고민 털어놓는 시대…‘군체’가 묻는 소통의 역설 [D:영화 뷰]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5.27 08:37
수정 2026.05.27 08:37

말은 쉬워졌지만 이해는 더 어려워져…연상호가 그린 초연결 시대의 불안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이제 정보 검색을 넘어 고민 상담과 문장 교정, 답장 작성의 영역까지 들어왔다. 사람들은 더 정확하게 말하고 덜 오해받기 위해 AI의 도움을 받지만, 그렇게 다듬어진 말이 정말 당사자의 생각인지에 대한 의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는 이 불안을 좀비 장르로 비튼다. 인간의 오해를 없애기 위해 생각을 하나로 공유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더 큰 오류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영화는 ‘연결의 양’이 아니라 ‘이해의 질’을 묻는다.


ⓒ쇼박스


25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24일 ‘군체’는 누적 관객 수 150만 1151명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올해 개봉작 중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한 데 이어 개봉 첫 주말에도 흥행세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군체’는 기존 좀비물과 달리 감염자들이 집단적으로 사고하고 진화하는 설정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영화는 AI 시대의 사고방식을 끌어와 초연결 사회의 소통 불안을 건드린다. 이는 현실의 소통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생성형 AI는 이제 정보 검색을 넘어 문장 교정, 답장 작성, 고민 상담의 영역까지 들어왔다. 사람들은 오해를 줄이고 더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 AI의 도움을 받지만, 그 과정에서 대화의 진짜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직장인 A씨(31)는 업무용 메시지를 보내기 전 생성형 AI에게 문장을 점검받는다. 인간관계 고민을 정리할 때도 AI를 찾는다. A씨는 “업무용 멘트를 보낼 때 AI에게 검사받고 보내고, 고민 상담용으로도 쓴다”며 “가끔은 상대도 AI로 돌려서 답변을 보내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서로 AI를 써서 연락하는 거라면 내가 그 사람과 연락하는 게 맞나 싶다”고 말했다.


생성형 AI 이용은 심리상담과 정서적 대화의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2025년 4월 공개한 ‘AI 기반 심리상담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AI 심리상담 서비스 이용 의향은 40%, 실제 이용률은 11%였다. 응답자들은 AI 상담에 기대하는 점으로 접근성(41%)과 익명성(35%)을 꼽았다. 사람에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을, 판단받지 않고 즉각 응답하는 시스템에 먼저 꺼내는 흐름이 생겼다.


이는 청소년층에서도 확인된다. 초록우산이 지난 3월 전국 만 14세 이상 아동·청소년 3300명을 대상으로 생성형 AI 챗봇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사용 경험은 94.4%에 달했다. 응답자 49.5%는 “AI가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고, 35.1%는 “AI를 실제 사람처럼 느낀 경험이 있다”고 했다. 77.7%는 챗봇 답변을 신뢰했고, 41%는 답변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AI가 대화에 개입한다고 해서 오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AI가 다듬은 문장은 부드러울 수 있지만, 그 말이 온전히 당사자의 생각인지에 대한 의심도 생긴다. 소통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기술이 오히려 진짜 감정과 의도를 가리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군체’는 이 같은 현실의 소통 불안을 좀비 장르로 비튼다. 영화 속 서영철(구교환 분)이 개발한 시스템의 출발점도 인간의 소통 실패다. 사람은 서로를 오해하고, 각자의 판단 안에 갇히며,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생각을 하나로 공유하면 더 나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발상에서 사태가 시작된다.


이 발상은 영화 속 감염자들의 형태로 구현된다. 감염자들은 인간보다 더 효율적인 연결을 보여준다. 이들은 페로몬과 점액질, 집단지성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학습하며 진화한다. 기존 좀비가 무차별적으로 달려드는 감염자였다면, ‘군체’의 좀비는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움직이는 존재다.


ⓒ쇼박스

하지만 ‘군체’는 이 진화를 구원으로 보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고 해서 오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오류가 전체 사고에 끼어들면, 집단지성은 더 빠르게 오작동한다. 개별 판단은 사라지고, 수정 가능성도 줄어든다. 생각을 하나로 모으려는 시도는 더 나은 이해가 아니라 더 큰 오류로 돌아올 수 있다.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은 발언행동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논문 ‘참여적 리더십이 발언행동과 조직시민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한 산업군의 직장인 27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회귀분석 및 조절분석을 통해 가설을 검증했다. 분석 결과 참여적 리더십은 발언행동과 조직시민행동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고, 심리적 안전감은 발언행동 및 개인지향 조직시민행동 간 관계를 유의하게 조절했다. 반면 조직지향 조직시민행동에 대한 심리적 안전감의 조절효과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영화의 메시지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조직보다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조건이 집단의 건강한 작동과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군체’가 말하는 인간다움도 여기에 있다. 인간을 구하는 것은 모든 생각을 하나로 합치는 완벽한 동기화가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이 남아 있고, 오류를 수정할 수 있으며, 소수의 판단이 묵살되지 않는 연결이다. 영화는 연결의 양이 이해의 질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의 불안을 좀비 장르로 확장한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세계는 언뜻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오류가 끼어드는 순간 더 빠르게 무너진다. 인간다움은 완전한 연결이 아니라, 서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채 계속 대화하는 능력에 있을지 모른다.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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