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도 받는데 왜 우린 안돼?”...지선 앞 성과급 정치
입력 2026.05.21 16:19
수정 2026.05.21 16:25
대통령·총리 직접 압박 속 총파업 예고일 직전 극적 타결
지선 여론 부담 속 정부·삼성 모두 장기전 어려웠다는 시각
지난 20일 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왼쪽)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오른족)이 잠정 합의안에 서명한 후 김영환 고용노동부 장관과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 노사는 전날(20일) 총파업 예고일이었던 21일을 불과 1시간 20분쯤 앞두고 잠정합의에 서명했다. 6·3 지방선거까지 14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파업 자제를 촉구했고 긴급조정권 카드까지 거론된 상황에서 정부 중재 속에 타결이 이뤄졌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이번 타결은 지선을 앞둔 여론 부담 속에서 정부와 삼성 모두 장기전을 이어가기 어려웠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반도체 생산 차질과 수출 타격은 물론 지선 여론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었던 만큼, 양측 모두 극적 타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총리 잇단 압박
이재명 대통령은 합의 당일 국무회의에서 "세금도 떼기 전의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제도적으로 나눠 갖는다는 것은 투자자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선을 많이들 넘는다"고 밝혔다. 노조를 겨냥한 직접 비판이었다.
앞서 18일에는 "노동권만큼 기업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는 SNS 발언을 냈고, 청와대도 "마지막까지 노사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냈다.
김민석 총리는 17일 대국민 담화에서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합의 당일 오후 4시 20분쯤 경기지방고용노동청으로 직접 달려가 노사 자율교섭을 중재했다. 장관 주재 브리핑에서 최승호 노조 위원장과 여명구 사측 대표가 나란히 손을 맞잡는 장면이 연출됐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27~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9.3%가 삼성전자 파업에 대해 "무리한 요구로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여론조사공정이 지난달 26~27일 진행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4.3%가 노조의 영업이익 15% 성과급 요구를 "과도한 요구"라고 평가했다. 여론의 역풍 속에서 정부는 긴급조정권을 실제로 발동하는 대신 압박 카드로만 활용하며 자율교섭 타결을 유도하는 방식을 택했다.
합의 내용이 만든 기준선
잠정합의의 핵심은 노사가 공동으로 선정한 사업성과의 10.5%를 DS(반도체)부문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는 제도 신설이다. SK하이닉스 영업이익 10%에 이어 삼성전자도 10%대 성과급 제도화에 합의하면서 업계 기준이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이 합의가 다른 기업 교섭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영일 현대차 대표이사는 최근 교섭 자리에서 "삼성전자 파업 소식이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며 "대기업 파업이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고 대외적 시선이 만만치 않다. 임금과 성과급 지급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HD현대중공업 노조도 올해 임단협에서 영업이익의 30%에 대한 성과 공유를 주요 요구안으로 제시할 방침이다. 지난해 영업이익 약 2조원 기준 6000억원 규모, 1인당 최대 7500만원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을 비롯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들이 지난 15일 평택 삼성전자 사업장을 찾아 초기업노조 위원회와 면담하는 모습.ⓒ초기업노조
지선 전에 불붙는다
삼성 합의 직후 다른 기업 노조들의 교섭 일정이 오히려 빨라지는 분위기다. 지선을 앞두고 여론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카카오는 오는 27일 본사 2차 조정을 앞두고 있다. 본사를 포함한 5개 계열사 법인 노조가 파업 찬반투표를 모두 가결시켰고, 카카오페이·카카오엔터프라이즈 등 4개 계열사는 이미 쟁의권을 확보해 언제든 파업이 가능하다. 27일 본사 조정이 결렬되면 창사 이래 첫 그룹 공동파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차·기아는 여름 임단협 협상이 본격 시작된다. LG유플러스와 삼성바이오로직스도 교섭이 진행 중이다.
6·3 지방선거 이후 하투(夏鬪) 시즌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이들 교섭이 집중된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하청 노조까지 원청 교섭에 나설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올여름 노사 갈등의 무게가 어느 때보다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원청 기업들이 하청 노조 리스크까지 떠안은 상황에서, 선거를 앞둔 정부마저 긴급조정권 발동 등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는 점이 이번 삼성 사태에서 확인됐다"며 "지선 전후로 노조들의 성과급 제도화 요구가 확산되면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이 몇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