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빨강 오늘은 파랑” 철새 행보에 마뜩잖은 양구 민심…“그래도 기회 줬어야” 반응도
입력 2026.05.19 14:31
수정 2026.05.19 14:32
민주당 후보로 강원 양구군수에 도전하는 김왕규 후보. ⓒ 데일리안 김윤일 기자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수 선거가 전국적인 관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단순한 여야 대결을 넘어, 김왕규 후보가 선택한 ‘정치적 경로’ 때문이다.
강원 양구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현역 군수인 국민의힘 서흥원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김왕규 후보의 양자 대결 구도로 치러진다. 그런데 김 후보의 이력이 다소 독특하다. 그는 원래 국민의힘 소속 강원도의원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경선 방식에 반발하며 탈당했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군수 선거에 나섰다. 빨간색에서 흰색, 그리고 파란색으로 바꿔 입는데 걸린 시간은 한 달 남짓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공천 갈등은 흔한 일이다. 총선과 지방선거를 가리지 않고 공천 탈락에 반발해 탈당한 뒤 출마하는 사례가 매 선거 때마다 반복됐다. 그러나 당선도 쉽지 않은 데다 대부분의 후보들은 당적 변경이 아닌 무소속의 길을 택했다.
공천에 반발해 탈당한 뒤 상대 당에 입당해 당선된 사례의 대표적 인물은 진영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다. 진영 전 장관은 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용산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배제되자 탈당했고 이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반대의 사례로 꼽히는 부산 사하을의 조경태 의원은 민주당계에서 3선을 한 뒤 당내 갈등 끝에 탈당, 새누리당으로 옮겨 계속해서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기초단체장 선거가 아닌 체급이 훨씬 큰 총선 무대였고, 무엇보다 오랜 정치적 기반을 갖춘 중진급 정치인이었다는 점에서 김왕규 후보와 차이가 있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당적 변경 후 당선된 사례가 있었을까.
울산 동구청장을 지낸 정천석 전 구청장은 2006년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이듬해 한나라당에 입당, 2010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됐으나 무효형 판결로 구청장직을 상실했다. 이후 2018년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부산 강서구의 노기태 전 구청장 역시 2014년 새누리당에서 당선됐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탈당해 민주당으로 옮겼고, 이후 2018년 민주당 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경남 통영의 강석주 전 시장도 한나라당 출신 경남도의원으로 활동하다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민주당에 입당, 2018년 통영 최초의 민주당계 시장으로 당선됐다.
다만 이들 모두 공천 갈등 때문이 아닌, 정치적 환경 변화나 노선 이동, 정권교체 흐름 속에서 당적을 바꿔 당선된 사례다.
이처럼 ‘공천 갈등 → 탈당 → 상대 정당 입당 → 당선’은 한국 정치에서 상당히 드문 유형이다. 무엇보다 정치적 색채가 뚜렷한 한국 정당 구조상, 기존 지지층을 떠나 정반대 진영으로 이동하는 것은 큰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강원도처럼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는 더더욱 쉽지 않은 선택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양구군민들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재선에 도전하는 국민의힘 서흥원 후보. ⓒ 데일리안 김윤일 기자
5일장이 열린 양구 중앙시장에서 만난 50대 남성 상인은 손사래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무리 정치가 생물이라지만, 어제까지 보수 정당에서 표를 달라고 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민주당 간판을 달고 나오는 게 말이 되느냐”라며 “군민들의 정치적 신뢰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선택을 하는지 도저히 마땅치 않다”고 꼬집었다.
개인택시를 운행하는 40대 남성 역시 김 후보의 행보를 '자리 탐욕'으로 규정했다. 박 씨는 "정치인에게 정당은 신념과 같은데 컷오프됐다고 해서 곧바로 반대 성향의 정당으로 갈아탄 건 전형적인 '철새 정치'"라며 "지역 발전을 위한 결단이라고 하지만, 결국 군수 자리에 앉고 싶어 유권자를 기만하는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평소 지방행정에 관심이 많다는 30대 남성 직장인도 "민주당의 기존 후보 공천 무효의 틈새를 타 둥지를 바꿔 튼 모습이 기회주의적으로 보인다"면서 "정당 정치의 근간을 흔드는 이런 행보가 용인된다면 앞으로 어떤 정치인을 믿고 투표하겠나. 이번 당적 이탈은 분명히 표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반면, 양구 지역에서 헌신해 온 인물에게 제대로 된 경선 기회조차 주지 않은 밀실 공천이 원인을 제공했다며 김왕규 후보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버스터미널 인근서 지물포를 운영하는 60대 남성은 "김 후보는 양구군 부군수도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지역에서 기반을 닦아온 인물인데, 당에서 제대로 된 경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잘라버린 것 자체가 불공정이다"며 "지역 민심을 반영하는 경선조차 못 하게 막아버리니, 후보 입장에서 오죽 억울하고 답답했으면 정당을 옮겨서라도 군민들의 심판을 받으려 하겠냐"고 밝혔다.
양구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60대 여성 주민은 정당보다 '인물'이 먼저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지방선거는 중앙정치 싸움이 아니라 양구를 위해 일할 일꾼을 뽑는 선거"라며 "당에서 무리하게 공천을 주무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없었다. 당적을 바꾼 건 괘씸할지 몰라도, 일할 기회 자체를 뺏어버린 공천 시스템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왕규 후보의 무리한 당적 변경과 공천 시스템이 팽팽하게 맞붙은 가운데 양구 군민들의 최종 선택이 어디로 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