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병해충 대응, 이제는 ‘예측의 시대’
입력 2026.05.08 08:05
수정 2026.05.08 08:05
생태계 붕괴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
돌발적이고 비정형적 병해충 대응 방식 바꿔야
통합데이터 기반 디지털 예찰·경보체계 구축사업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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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책국 연구개발과 김상수 농업연구관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독성 포자와 거대 곤충이 뒤덮은 ‘부해’가 인간의 삶을 잠식하고, 영화 스노우피어서에서는 생태계 붕괴 이후 식량 생산 자체가 불가능해진 세계가 그려진다.
드라마 킹덤 역시 병든 식물에서 시작된 재앙이 사회 전체를 무너뜨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식물과 병해충, 그리고 생태계의 붕괴는 곧 식량의 위기이며,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한때 극적인 상상력의 산물로 여겨졌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 경계를 빠르게 허물고 있다. 병해충과 생태계 변화는 더 이상 농업 현장의 일부 문제가 아니라, 식량안보와 직결된 국가적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기후변화가 빨라지면서 우리 농업 현장은 이미 그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벼도열병, 배추 무름병, 벼멸구, 벼 깨씨무늬병 등 예상하기 어려운 병해충이 잇따라 크게 발생했다. 과거에는 경험과 계절의 흐름을 바탕으로 대응 시기를 가늠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문제는 변화의 속도다. 병해충은 더 빠르게, 더 넓게 퍼지고 있으며, 발생 양상 또한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정보와 대응 방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일부 자료는 수십 년 전 조사에 기반하고 있어 현재의 기후와 재배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이는 급변한 환경 속에서 낡은 기준으로 대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직접 포장을 돌며 병해충 발생 여부를 확인하고, 경험에 따라 방제 시기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경험은 중요하다. 하지만 돌발적이고 비정형적으로 나타나는 병해충 앞에서 경험만으로 대응하는 것은 점점 더 위험한 선택이 되고 있다. 이는 마치 재난을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대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는 대응의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병해충이 발생한 뒤 뒤쫓아가는 ‘사후 대응’이 아니라, 발생 가능성을 미리 파악하고 대응하는 ‘예측 기반 대응’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병해충이 나타날지를 데이터로 읽어내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체계가 요구된다.
앞으로 추진하는 ‘병해충 통합데이터 기반 디지털 예찰·경보체계 구축사업’은 이러한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전국 단위의 병해충 정보를 통합하고, 자동 관측과 분석 기술을 통해 위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한다면, 농업인은 병이 번진 뒤가 아니라 번지기 전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도입이 아니라 농업 대응 패러다임의 변화다.
병해충 대응은 더 이상 개별 농가의 경험에 맡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 식량을 지키는 일은 곧 국가를 지키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잘 막는 기술’이 아니라 ‘미리 아는 능력’이다.
이제 병해충 대응은 경험의 시대를 넘어, 예측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