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플라자] 이제, 왕이 되려는 남자
입력 2026.05.07 07:00
수정 2026.05.07 07:00
권력 정점 서있던 세조, 두려움으로 통치
권력은 '청산'이 끝났다고 만족하지 않아
'조작기소 특검'서 느껴지는 기시감 주목
오늘날의 특검, 정쟁 도구로 전락한 일상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직무대행과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이 4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윤석열 정치검찰 조작기소 진상규명 특검법'을 제출하고 있다.ⓒ 뉴시스
올해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흥행에는 이유가 있다.
권력은 시대를 초월해 가장 강력한 서사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이어서 '광대들: 풍문조작단'(2019년)도 떠올려볼 만하다.
권력을 어떻게 빼앗고, 유지하는가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현대사를 보는 듯한 기시감마저 든다.
세조는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그는 척박한 청령포에서 어린 조카를 살해하고, 정적을 제거하며 왕좌를 지켰다.
반대자들을 패가망신으로 겁박하며 두려움을 통치의 도구로 삼았다.
이 모든 과정은 '대의'와 '정당성'이라는 이름으로 덧칠됐다.
그러나 그는 뭉그러진 종기와 비명이 울려 퍼지는 악몽에 시달렸다.
그 곁에는 권력의 설계자, 명분의 기술자, 풍문의 조율사 한명회가 있었다.
칼은 세조가 들었지만 각본은 한명회가 써 내려갔다.
권력은 단지 '청산'이 끝났다고 만족하지 않는다.
제거보다 더 중요한 건 기록을 바꾸는 것이다.
왜 왕위를 빼앗아야 했는지, 왜 숙청이 필요했는지, 왜 그것이 난세를 바로잡는 결단이었는지.
'폐위'는 정치였지만, 그 정당성, 명분은 그럴듯한 서사가 있어야 했다.
권력이 끊임없이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성스러운 광채를 덧칠하는 이유다.
'풍문 조작'과 현대판 '흔적 지우기'
영화 <광대들 : 풍문조작단>은 이 지점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영화에서는 기묘한 이적을 만들어내 민심을 조작한다. 추한 권력을 성스러운 광채로 덮는다.
물론 영화는 허구다. 그런데 현실에서 본 듯하면 더욱 몰입도를 높인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조작기소 특검'에서 느껴지는 기시감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특검(特檢)의 존재 이유는 성역 없는 수사다.
권력의 외압으로부터 사법 독립을 지키고, 기득권의 예외 없는 책임을 묻기 위해 설치되는 특별한 장치다.
그러나 오늘날의 특검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정쟁의 도구로 전락해 일상이 되어버렸다.
진실을 밝히는 칼이 아니라, 정치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방패의 냄새가 짙다.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조작기소'의 프레임
특히 '조작기소'라는 명분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위협한다.
이는 수사 과정의 실무적 오류를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검찰의 공소권과 사법부의 독립적 판단을 '음모'와 '기획'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행위다.
권력이 자신에게 불리한 법의 잣대를 '조작'이라 부르기 시작할 때, 국가의 사법 시스템은 붕괴한다.
법의 적용이 사람에 따라, 권력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무법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다.
한명회가 찬탈의 정당성을 만들었듯, 오늘의 권력은 특검이라는 제도로 '스토리텔링' 하는 것 같다.
수사 주체를 자신들이 선택하고, 법정의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무죄'의 풍문을 퍼뜨린다.
이것은 제도의 외피를 입은 '현대판 흔적 지우기'다.
불편한 과거를 세탁하고, 법적 책임을 정치적 음모의 피해자로 환치하려는 노골적인 시도다.
역사의 법정에는 성역이 없다.
어쩌면 권력은 당대의 판결을 잠시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진실의 공소시효는 멈추지 않는다.
역사가 보여주지 않는가.
200여 년이 흐른 뒤, 쫓겨나 죽임을 당했던 단종은 왕으로 복권되어 정통성을 회복했다.
사육신은 반역자에서 충절의 상징으로 부활했다.
반면 모든 권세를 누렸던 세조는 비열한 찬탈자로 남았다.
무소불위의 실세 한명회는 사후 18년 뒤, 무덤을 파헤쳐 목이 잘리는 부관참시(剖棺斬屍)의 참변을 당했다.
권력으로 덮으려 했던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한 오점이 되어 역사의 페이지에 박제되었다.
'세조의 길'을 거부하고 정면돌파하라.
500년 전의 피비린내 나는 서사가 오늘날 '특검'이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재현되는 듯한 기시감은 단순한 착각일까. 역사의 경고는 명확하다.
당당하다면, 그리고 사필귀정을 믿는다면 정면돌파가 답이다.
특검이라는 우회로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법의 심판대 앞에서 증거와 논리로 승부하면 된다.
그것이 깔끔하게 영원히 '죄 없음'을 밝히는 길이다.
'조작'이라는 방어막 뒤에 숨는 행위는 오히려 찜찜한 의구심을 남긴다.
'꼼수적 의도'를 들킬 수밖에 없고 재발화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특검 정국은 법치의 위기이자 도덕의 파산이다.
정치적 승리가 곧 진실의 승리는 아니다.
다수의 의석과 강력한 팬덤으로 법의 집행을 막아낼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의 기록까지 바꿀 수는 없다.
역사의 법정에는 성역이 없으며, 그 재판장인 시간은 결코 매수되지 않는다.
단종은 패배했기에 영원히 살았고, 세조는 승리했기에 영원히 의심받는다.
권력으로 과거를 지울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함이 바로 '세조의 길'이다.
그 권력에 기생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첨배들의 행보는 결국 '한명회의 길'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역사는 지금 이 순간의 오만함마저 소상히 받아 적고 있다.
권력의 진짜 심판자는 특검도, 판사도, 여론조사도 아니다.
국민의 기억과 역사의 평가다.
당장의 풍문이 영원한 결백을 보장하지 않는다.
역사의 문법은 준엄하다.
지운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단지 더 깊게 각인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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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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