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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의의 난 – 진주민란의 프리퀼 [정명섭의 실패한 쿠테타 역사㉝]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4.07 14:01
수정 2026.04.07 14:01

교과서에 나오는 진주 민란은 조선시대에 벌어진 반란이다. 조선시대 철종 13년인 서기 1862년, 안동 김씨가 좌지우지하는 조정은 혼란이 극에 달했고, 탐관오리들이 중간에 세금을 빼돌리면서 백성들의 부담은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진주 지역은 이 문제로 인해 백성들이 추가로 부담을 지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격분한 백성들은 대대적인 항의에 나서면서 관아와 병영을 공격하고, 세금을 징수하던 향리들을 때려 죽었다. 그리고 진주를 시작으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반란의 기운이 퍼져나갔다.


진주성 앞 고려시대 토성 유적 (출처 : 저자 촬영)


진주의 반란은 고려시대에도 존재했다. 일종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퀄(Prequel)은 특정 작품의 앞 시간에 벌어진 사건에 초점을 맞춰 원작의 서사보다 앞선 시기를 다루는 문학 작품을 말한다. 고려시대의 진주 민란은 프리퀼이긴 하지만 조선시대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파괴적이었다. 반란이 유지된 기간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었다. 시작은 반란치고는 평범한 편이었다. 신종 3년인 서기 1200년, 진주의 공노비와 사노비들이 무리를 지어 향리들의 집 50여 채를 불태웠다. 단순한 복수심인지 아니면 조직적인 반란의 시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정도가 끝이었다. 피해를 입은 향리들이 진주목의 관리에게 보고하고 주모자들을 추격해서 체포했다. 여기에서 끝났다면 아마 진주 노비들의 반란 정도로 짧게 소개되고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진주의 향리인 정방의였다.


노비들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일정한 공로를 세운 것으로 보이는 정방의는 진주목의 사록 전수룡을 찾아가서 보고했다. 그런데 대뜸 전수룡이 인사를 하러 오는데 왜 활과 화살을 차고 왔느냐며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정방의는 그냥 인사를 하러 온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 말을 믿지 않고 무장을 하고 찾아온 것이 반란을 일으킬 기미라고 얘기하며 그를 체포했다. 하지만 별다른 증거가 없는 상태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고를 받은 태수 이순중이 테클을 걸었다. 정말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 것이 맞는데 풀어준 것이 잘못되었다고 한 것이다. 결국 전수룡이 다시 그를 붙잡아다가 목에 칼을 씌우고 발에 쇠사슬을 채워서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자 정방의의 동생 정창대가 나섰다.


정방의의 동생 정창대가 관아로 돌진해 들어와 칼과 쇠사슬을 풀고 정방의를 부축하여 탈출하였다. 그리고 큰 소리로 불량배들을 불러 모으고서는 주리(州里]를 습격하고 평소 원한이 있던 사람들을 죽이고 이들과 관련된 사람들까지 죽이니, 죽은 사람들이 6400명이나 되었다.


흥분한 동생이 패거리들을 모아서 관아를 습격해서 형을 탈출시키고 세력을 규합해서 닥치는 대로 살인을 저질렀다. 무려 6,400명이나 죽었는데 정확한 숫자인지 아니면 잘못 기재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마어마하게 죽은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진주를 장악하고 이순중을 협박해서 평상시처럼 일을 보게 만들었다. 지금 같았으면 나라가 발칵 뒤집힐 정도의 큰 사건이었지만 자고 일어나면 반란이 터지던 시기였고, 지금처럼 통신이 원활하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저냥 묻혀버리고 말았다. 정방의가 다른 반란의 지도자처럼 농민이나 천민이 아니라 향리라는 점도 한몫했다. 세상 물정에 밝은 그는 진주 성내에서 걷은 은으로 된 화폐인 은병을 걷어서 개경의 무신 집권자들에게 보내서 처벌을 모면하려고 했다. 거기다 이들의 위세에 눌린 진주 백성과 다른 향리들은 사건을 조사하러 온 안찰부사에게 정방의 형제에게는 죄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결국 이순중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초도라는 섬으로 유배를 가야만 했다. 정방의 형제의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병들을 조직해서 자신에게 밉보인 사람들을 죽이는 짓까지 서슴지 않게 한 것이다. 이들의 횡포에 지친 진주 백성 중 일부가 지금의 합천인 합주에 있는 광명과 계발이라는 도적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진주를 차지할 희망에 부푼 이들은 자신만만하게 공격했지만, 오히려 정방의 형제의 사병들에게 밀리고 만다. 결국 정방의가 이끄는 사병들이 광명과 계발의 근거지로 추정되는 노올부곡이라는 곳을 공격해서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정방의 형제의 반란은 다음 해가 되어서야 막을 내린다. 견디다 못한 진주 백성들이 직접 나서서 정방의를 죽인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주민들이 민병대를 조직해서 카르텔의 보스를 처단한 것과 비슷하다. 형이 죽고 정창대는 부하들을 200명을 이끌고 산성으로 도망쳤다. 그곳에서 세력을 모아 재기를 하려고 한 것 같지만 진주 백성들의 공격을 받고는 도망쳐버렸다. 그것으로 반란을 막을 내렸는데 여러모로 특이했다.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향리가 주도한 반란이 일어났고, 진주 지역을 장악해서 횡포를 부렸다가 백성들에게 진압당한 것이다.


정명섭 작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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