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료는 안 낸다는데…한국만 호르무즈 해법 안 보인다
입력 2026.04.07 00:10
수정 2026.04.07 00:10
野 "일본·프랑스는 빠져나가는데 우리는 하세월"
타국 선박 이동 사례에… 정부는 "단순 비교 어렵다"
李대통령, '홍해 카드' 언급하며 위험 감수 현실론
'국정 혼란 가짜뉴스' 엄단 기조…"적군 쓰는 수법"
호르무즈 해협 인근 오만 무스카트에 유조선들이 정박해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가 국내 에너지 수급 차질로 번질 수 있어 우리 정부의 고심도 짙어지고 있다. 일본과 프랑스 관련 선박은 최근 잇따라 해협을 통과했지만, 한국 관련 선박 26척은 여전히 발이 묶인 상태다. 정부는 해협 통과를 위해 이란 측에 통행료를 지급하는 방안에 선을 긋고 있다. 그렇다고 별도의 한국식 출구 전략이 뚜렷하게 확인된 것도 아니다. 야당이 연일 정부의 외교력 부재를 정조준하는 가운데, 정부 대응 역시 근본 해법보다는 우회 조치에 머물고 있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청와대는 이날 이란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고 우리 선박의 호르무즈 통과와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인도적 지원에 대한 검토는 중동 지역의 인도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에서 다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국제규범 등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 내 모든 선박에 대한 자유로운 항행과 안전보장, 글로벌 에너지 공급 정상화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이러한 입장 아래 관련국들과 소통·협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이란과의 직접 거래 방식에는 선을 긋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통행료를 내는 순간 이란과의 별도 협상으로 비칠 수 있는 데다, 미국의 대이란 압박 기조와도 충돌할 소지가 있어 정부로서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카드인 상황이다. 이란이 전쟁 이후에도 호르무즈 해협 통제에 따른 이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우세해 우리 정부의 부담도 더욱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이후에도 외국 선박의 통과 사례는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요미우리신문과 NHK 등 일본 매체는 일본 해운사 상선미쓰이 관련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중동전쟁 이후 공개된 일본 관련 선박의 해협 통과 사례는 세 번째다. 다만 일본 등 외국 선박이 어떤 조율이나 보장을 거쳐 해협을 빠져나왔는지는 아직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외교부는 선박의 국적과 소유주, 운영사, 화물 성격, 목적지, 선원 국적 등이 달라 한국 상황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정부의 호르무즈 대응 기조와 결과 부재를 정조준하고 있다. 청와대가 즉각 해당 보도를 부인했음에도, 국민의힘은 사실 여부와 별개로 이란 지원과 선박 통과를 연계하는 발상 자체를 문제 삼으며 공세를 폈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일본과 프랑스 해운사 소속 선박이 잇따라 호르무즈해협을 빠져나온 반면, 이재명 정부의 대응은 하세월"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의 섣부른 지원은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중동 내 다른 국가들과의 외교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기업에 대한 계약 취소나 사업 배제 등 직접적인 경제적 피해와 후폭풍도 고려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전날 장동혁 대표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일본 선박 2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왔다"며 "우리는 선박 26척, 선원 약 180명의 발이 묶여 있는데 '외교 천재'라던 이재명 대통령은 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 단속할 시간에 외교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대체 경로 확보 등 에너지 수급 대응에 나섰지만, 이는 호르무즈 해협 자체 봉쇄를 푸는 해법과는 거리가 있다. 홍해 내 사우디아라비아 얀부항을 통한 추가 물량 확보만으로는 호르무즈 해협 경색에 따른 물량 공백을 모두 메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정부는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이 홍해를 호르무즈처럼 완전히 봉쇄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일정 수준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제한적 우회 수입을 허용하는 쪽으로 대응 기조를 조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중동 전쟁 직후인 지난달 1일 해당 항로에 운항 자제를 권고했던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홍해 항로를 통한 원유 수입 가능성과 중동 지역 긴장 고조에 따른 해상 봉쇄 위험 등을 점검했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추가로 유조선을 투입하더라도 하루 공급량이 500만 배럴밖에 안 된다. 원래 배 한 척에 200만 배럴을 싣는다고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그 배들은 어쨌든 사우디하고 유류 원유 공급 약속을 받아야 실제로 선적할 수 있는 것이냐"라고도 물었다.
이 대통령은 "우회 수입할 수 있는 루트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위험성이 조금 있다고 원천 봉쇄하면 대한민국 전체의 원유 공급 문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서 국가나 국민들에 너무 위협이 크니까 그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100% 안전을 위해서 조금의 위험이 있으면 다 금지시키고 이렇게 하면 국내 원유 공급 문제는 어떻게 하겠나"라며 "그런 점도 감안을 해야 한다. 위험을 조금씩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라 정부의 가짜뉴스 대응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같은 회의에서 "국정에 혼란을 주는 가짜뉴스는 전쟁 때 적군이 쓰는 수법"이라며 "대한민국이 중동전쟁으로 인한 전시 상황인데 국정에 혼란을 주는 가짜뉴스를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것은 반란 행위나 다름없다"고 했다. 앞서 지난 2일 김민석 국무총리도 중동 전쟁 관련 가짜뉴스와 과장 정보 대응을 지시한 바 있다. 당시 김 총리는 '유가 폭등설' '셧다운' '대란' '품귀' 등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정보에 대해 사실관계를 신속히 설명하라고 주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