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원로들, 與 '선출권력 우위론'에 쓴소리…"국민이 최상"
입력 2025.12.11 15:21
수정 2025.12.11 15:21
대법원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 방향과 과제' 공청회 막 내려
김선수 "대법관 12명 증원안 찬성…문형배 "8명 단계적 증원 건의"
박은정 "입법부가 사법부 위에 있을 수 없어… 위에 있는 건 결국 국민"
이용우 "사법 독립, 법관들 각자가 재판서 용기와 사명감으로 지켜내야"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사흘간 개최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가 11일 막을 내렸다. 마지막 날 직접 토론자로 나선 법조계 원로들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재판소원 도입에 대해 신중론을 견지하는 한편 대법관 증원에 대해선 대체로 긍정적 의견을 냈다. 민주당발 사법개혁안이 삼권분립 가치를 훼손한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가운데 이재명 정부와 여당의 '선출권력 우위론'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법원행정처는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법률신문과 공동으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 방향과 과제' 공청회를 열고 토론을 진행했다. 이날 진행된 마지막 토론은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 김선수 전 대법관 등 법조계 원로들이 직접 참여해 이목을 끌었다.
이날 토론 좌장을 맡은 김선수 전 대법관은 3년에 걸쳐 매년 4명씩 총 12명의 대법관을 증원하는 민주당안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그는 "대법관 증원으로 하급심이 약화한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20년 전 얘기"라며 "대법관 증원과 하급심 강화는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도 했다.
문형배 전 재판관은 먼저 대법관 증원에 대해 "상고심사제와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을 전제로 총 8명 단계적 증원을 건의한다"며 "기존 전원합의체의 기능은 연합부가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 시행 후 대법관 4명을 먼저 증원하고 상고심사부를 신설한 뒤 3년이 흘러 다시 대법관 4명을 더 증원하자는 게 문 전 재판관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3년이라는 시간을 둔 이유는 청사 확보 시간이 필요하고 총선을 통해 야당도 사법부 구성에 관여하는 기회를 줘야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조재연 전 대법관과 박은정 전 위원장도 점진적 증원안을 제시했다. 조 전 대법관은 증원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단기간에 많은 대법관을 증원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박 전 위원장은 "늘린다면 점진적으로, 일부에 해당하는 상고심을 담당할 수 있는 정도로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재판소원 도입에 대해선 비판적 의견이 주를 이뤘다. 먼저 문 전 재판관이 반대 의견을 밝히며 "재판소원 문제는 장기과제로 논의하는 대신 헌재 한정위헌 결정이 있을 때 재심 사유를 인정하도록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을 건의한다"고 새로운 안을 제시했다. 앞서 문 전 재판관은 지난달 4일 '2025 전국 경비경찰 워크숍' 강연에서 "헌재의 신뢰도가 대법원보다 낮은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사실상 재판소원제 찬성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앞줄 맨 오른쪽)이 참석해 있다.ⓒ연합뉴스
차병직 클라스한결 변호사는 "재판소원 제도로 헌법소원 사건 폭주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모든 사건을 헌법 쟁점화할 수 있다"고 했다. 박 전 위원장은 나아가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왜곡죄를 언급하며 "애매한 법은 결국 법원이 다시 판단하게 된다"며 "오히려 법원의 재량을 키워주는 것 아니냐"고 역설했다.
박 전 위원장은 또 "입법부는 사법부, 행정부 위에 있을 수 없다"며 "세 부의 위에 있는 건 결국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와 여당의 선출권력 우위론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위원장은 "사법체계는 여러 제도와 운영 주체가 맞물려 있고 복합적이면서도 유기적"이라며 사법개혁에 당장 속도를 낼 것이 아니라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객석에 앉아 있던 이용우 전 대법관도 토론자들의 발언이 끝난 뒤 발언 기회를 얻어 국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은 자유민주주의의 요체"라며 "오늘날 우리 정치권에서 이를 파괴하려는 위헌적 입법이 시도되고 법관들의 재판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골적인 협박과 모욕주기 등의 행태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음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고 했다.
이 전 대법관은 "대한민국 역사상 일찍이 보지 못했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 사법부가 나아가야 할 길은 너무나 분명하다"며 "온갖 압박에 굴하지 않고 사법부 독립을 꿋꿋하게 지켜 자유 민주주의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사법부 독립은 외부에서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3000여 법관들 각자가 그들의 재판에서 용기와 사명감으로 지켜냄으로써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전 대법관은 "법원 행정 당국은 법관들이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는 재판을 할 수 있도록 내부적, 외부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오늘의 주제인 대한민국 사법부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원의 선배로서 전국 모든 법원 구성원에게 피 끓는 심정으로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