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백서 ⑧] 국민의힘은 왜 '김준혁 설화'에도 수원에서 참패했나
입력 2024.04.21 07:00
수정 2024.04.21 07:00
제22대 총선 경기 남부·수원 민심 돌아보기
인물·구도·정책 3無 선거…'의욕'만 있었다
'반도체 벨트' 공약 뜬구름…2012년 '뉴타운'처럼 민생 직결돼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남부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참패다. 더 자세히 말하면 중도 표심을 읽지 못한 중앙당의 전략 부재다.
전국 최다인 60석의 선거구를 지닌 경기도에서 더불어민주당은 4년 전과 비슷한 53석을 가져가며 총선 압승의 동력을 얻었다. 이곳에서 국민의힘은 6석, 개혁신당은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민주당은 지난 21대 총선 전체 59석 가운데 51석을 석권한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간 결과를 얻었다. 당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7석, 정의당은 1석이었다. 특히 인구 100만 이상의 거대 도시인 수원·용인에서 모든 의석 싹쓸이에 성공했다.
백혜련(수원을)·김영진(수원병) 후보는 3선에, 김승원(수원갑) 후보는 재선에 성공했다. 3선 수원시장 출신 염태영(수원무) 후보는 김진표 국회의장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승리했다. 설화 논란의 중심이었던민주당 김준혁 후보와 국민의힘 이수정 후보의 맞대결이 펼쳐진 수원정에선 김 후보가 가까스로 신승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공식선거 기간에 수원만 무려 8번을 방문하며 힘을 실었다. 경기도를 넘어 전국을 따져봐도 가장 많이 방문한 횟수다. 그런데도 단 한 석도 가져가지 못했다. 패배의 요인을 알아야 반등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인물·구도(바람)·정책(공약)'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봤다.
인물만 보면 비등비등한 승부였다. 그간 수원 지역은 '대안'이 없었다. 남경필 전 지사의 수원병을 19대 보궐선거로 물려받았던 김용남 전 의원은 수원병에서 잇달아(20·21대) 배지를 가져가지 못하고 수원시장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이창성 수원갑 당협위원장도 탄탄한 지역 기반을 갖췄지만, 수원의 명문고로 알려진 수성고, 서울대 법대 출신 지역 토박이 김승원 수원갑 당선인을 이기기에는 어려웠었다.
국민의힘은 야심차게 '수원 출신 중앙 엘리트'를 투입했다. 수성고 출신 방문규·김현준 후보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 기반은 둘째치고 인물 대 인물로만 봐도 모자람은 없었다. 선거 기간 초반에는 유권자들의 자존심을 살렸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왔다. 현역 박광온 민주당 의원과의 대결이 점쳐졌었던 이수정 국민의힘 수원정 후보는 압도적인 인지도를 무기로 다른 후보들보다 일찍 내려와 공약 경쟁과 지역 기반을 닦는데 열을 올렸다.
그렇다고 후보들 개개인의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모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현장에서 "정치인 스타일이 아니다" "지나치게 순수하다"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다. 모 후보는 윤 대통령이 민생에 무지한 것을 보여주는 부조리극에도 자신의 소신조차 펼치지 못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한계는 중앙에서 만들어낸 '민심 역풍'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총선 패배 원인으로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 간의 갈등, 한발 늦은 판단, 불통, 오만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이종섭·황상무 논란, 대파 논란, 의정 갈등 등 용산발 악재가 연이어 터졌다. 김경율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 이후 대통령과 비대위원장 간의 갈등은 더욱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주호주 대사 임명과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의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 논란 등은 민심을 악화시켰다. 선거를 불과 20여 일 앞두고 '대파 파동'이 일면서 고물가에다 소득감소, 경기침체, 부자 감세, 재정 악화, 부채증가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민생 행보로 지지율을 회복하고 당내 갈등 요소도 봉합하려던 중앙당과 한 비대위원장의 계획이 거꾸로 간 셈이다.
경기 지역 국민의힘 영입 인재들은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현장에서 '엇박자'가 났다. 현 정부가 보장하는, 합을 맞춰 일했던 인재들인데, 정작 이들을 내려보낸 중앙이 크게 흔들리며 후보들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했다. 초반에는 '컨벤션효과'로 적잖은 주목을 받았지만, 후반전에는 손발이 다 묶여있는 상태였다.
여당 캠프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후보들이 정치인이 아닌 '고위공직자'였다. 현 정권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인데, 구조적으로 정권 심판을 이겨낼 정도의 힘이 안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민주당 후보들은 '조용한 선거 전략'에 주력했다. 수원 지역은 민주당이 12년간 민주당 국회의원과 수원시장이 줄줄이 당선된 여당 험지 중 험지다. 민주당원이 국민의힘 당원의 배에 달하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어도 승산이 보이는 선거였다. 굳이 노력하거나 전략을 노출, 미연의 실수를 유발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후보들은 외부 노출을 최소화하고 내부 조직표를 다독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기존의 선택을 대다수 유지했다. 민주당 캠프 관계자는 "정권 심판론의 파고가 큰 상황에서 신중하게 기존 지역 성과들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또 가장 격전지였던 수원정 결과에 대해 "이수정 후보의 '대파'논란이 김준혁 후보의 '막말'보다 민생과 더 직결되지 않았나, 그런 측면에서 (유권자들이) 판단을 달리했을 것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공약도 경기도 민심과 거리가 멀었다는 평가다. 지역 사정을 잘 파악하지 못했고, 흐름을 빠르게 바꾸려다 보니 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반도체 벨트, 서울 편입 공약 등이 대표적인 예다. 후보들은 '위기를 맞은 경기도 반도체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는 촉매제'라며 반도체 벨트 지원 공약을 내놨지만, 먹고 살기 바쁜 유권자들에게는 감흥이 없었다.
현장에서도 "반도체 특구가 들어와 세수가 늘어난다 한들 나에게 무슨 혜택이 있느냐" "차라리 돈을 뿌리는 게 낫겠다"라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대다수였다. '3호선 공약'도 수원 특정 지역에만 이슈가 되는 공약이지, 수원 전체를 이끌어나갈 '이슈'가 부재했다. '갑·을·병·정·무'가 한팀이 돼야 그나마 시너지가 발휘되는데, 영입 인재로 온 후보들과 기존 지역에서 활동했던 후보들이 따로 놀았다. 정부와 후보가 집중할 일은 민생과 원팀 행보라고 많은 전문가가 강조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한 캠프 관계자는 "결국에는 중앙당과 후보들이 지역 대표감으로서 역량을 가졌는지, 사령탑으로 내세웠을 때 나에게 좀 더 도움이 될까라는 의구심에 확실한 답을 못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중앙당의 리스크를 뛰어넘는 정치력을 보여줬어야 했다. 혼선을 보이던 서울의 개발 정책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약인 '뉴타운 부활'로 급선회한 것이 좋은 예"라며 "대통령실과 중앙당이 결사적으로 경기도를 밀었는데도 왜 실패했는지 생각하며 반등의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선거철에만 급하게 챙기는 게 아닌, 실용적인 지역 공약과 지역민 스킨십을 늘리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