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계 '수박 색출' VS 비명계 '李 결단 압박'…분열하는 민주당
입력 2023.03.01 01:00
수정 2023.03.01 01:00
이재명 체포동의안 '무더기 이탈표'에 내분
친명 "제 발로 나가라" "당 미래 안중에 없나"
비명 "李 리더십 따라가다간 당이 낭떠러지로"
李 "표결 예단해 공격하는 건 당에 도움 안 돼"
더불어민주당이 분열 위기에 직면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 이탈표가 무더기로 발생하면서 친명(친이재명)계는 비명계를 향해 "제 발로 나가라"는 등의 거센 공격에 나섰고,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은 '배신자 색출' 중이다. 비명계는 이 대표 '사법 리스크'와 관련한 불만이 당내에 팽배하다며, 이 대표와 친명계를 압박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이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단일대오를 강조하며 분위기 수습에 나섰다.
28일 민주당 의원들과 민주당 성향 무소속 의원들 사이에서 예상 밖 결과에 대한 당혹감이 감지됐다.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기는 했지만, 30여표의 이탈표가 나오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면서다. 이 대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보였던 단일대오는 겉보기에만 그쳤다는 해석이다.
친명계, 비명계 공세 "검찰 독재 굴복 눈·귀 의심"
개딸들 '살생부' 제작·공유…찬성표 공개 청원도
친명계는 비명계를 겨냥해 "비겁하다" "제 발로 나가라" 등 다소 거칠게 공세했다. 김남국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마 이 대표가 국민 몰래 공천 보장을 약속했다면 아마 이런 이탈표는 없었을 것"이라며 "사실상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당대표를 실력 행사를 통해서 끌어내리겠다는 선언"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민형배 의원도 페이스북에 무효표 논란을 빚은 기표용지 사진과 함께 "저 아래 사진의 흘려 쓴 '부'자가, 원래 자신의 필체가 아니라 의도적인 무효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 의원은 제 발로 걸어나가 집을 향하는 게 어떨까"라고 말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앞에선 동지처럼 웃고 뒤에선 검찰독재에 굴복하다니, 제 눈과 귀를 의심했다"면서 "우리 당과 이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 없나. 자신의 성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라고 페이스북에 남겼다.
강성 초선 모임 '처럼회' 소속 김용민 의원은 비명계를 향한 경고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그는 전날 페이스북에 "이탈표가 상당해 여러 고민이 드는 결과"라며 "이 대표가 대선을 이겼으면 자기가 가장 공이 크다고 하고 다녔을 사람들이 오늘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다. 무엇이 정의로운지는 배우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정치적 야욕에 눈이 먼 사람에게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개딸들은 비명계가 이탈표를 던졌을 것이라 확신하면서, 비명계 의원 40여명의 이름과 지역구, 연락처가 적힌 '살생부'까지 만들어 공유하기도 했다. 다음 총선에서 심판하자는 취지로, 비명계 의원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민주당의 길' 소속 의원들이 명단에 대거 포함됐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수박(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을 뜻하는 말)'을 색출해야 한다는 글들이 게재됐다. 또 민주당 청원시스템인 국민응답센터에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청원이 등장했다. 전날 올라와 오는 29일 만료되는 해당 청원은 이날 오후 5시 기준으로 5800여명(동의율 11%)의 동의를 받았다.
비명계, 체포동의안 표결 파장 예의주시
'이재명 대표 사퇴론' 조만간 분출할 듯
비명계는 대체로 침묵하며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민주당의 길'도 이날 예정된 정례 비공개 모임을 취소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체포동의안 표결 이후 친명계와 개딸들의 불편한 시선을 피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하지만 '민주당의 길' 측은 이미 취소하기로 결정됐다며 표결 결과와는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비명계가 체포동의안 표결 전부터 이 대표의 거취 결단을 압박해온 만큼, '사퇴론'은 재차 분출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비명계의 한 의원은 "이 대표가 결단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비명계 내에서는 최근 의원총회에서 '부결 뒤 이 대표의 적절한 조치'를 언급한 바 있는 설훈 의원 등이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당내 대표적 비명계인 이상민 의원도 이날 CBS라디오에서 "겉에 나온 숫자(이탈표)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방탄 국회' 비판이나 이 대표 스스로 대선 당시 공약한 '불체포특권 폐기'를 뒤엎는 데 불편해하는 의원들이 많았다"고 당 분위기를 전했다.
이 의원은 이어 "당 대표 거취 문제를 앞서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어떤 조치가 필요한 것은 틀림없다"며 "이 대표가 억울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문제로 당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데 책임이 있는 건 틀림없지 않나. 이 대표 리더십을 따라가지만 이렇게 가서는 당이 송두리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걱정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지도부는 '단일대오' 목소리…배신자 색출 자제 요구키도
李도 나서서 "민주당을 사랑하는 당원들, 중단해주셔야"
당이 분열 위기에 처하자, 지도부는 '단일대오'를 강조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표결 결과가 주는 의미를 당 지도부와 함께 깊이 살피겠다"면서도 "어제의 일로 당이 더 혼란이나 분열로 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는 또 "이번 일을 계기로 당의 단일한 대오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개딸들의 '배신자 색출' 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비명계인 김민석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분명한 것은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었다는 점이다. 이탈은 있었지만 막아낸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부정확한 내부 총질은 없어야 한다. 확인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내용으로 이탈자로 추정하고 낙인찍고 매도하는 행위도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친명계 최강욱 의원도 같은 날 MBC라디오에서 "특정인들에 대한 명단공개나, 확인이나, 이런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자제를 촉구했다. 이경 상근부대변인도 페이스북에 "우리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30~40명 살생부 같은 의원 명단을 만들면, 이 대표를 옹호했던 의원들마저 등을 보일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도 "의원들 개인의 표결 결과를 예단해 명단을 만들어 공격하는 등의 행위는 당의 단합에 도움되지 않는다. 민주당을 사랑하는 당원들은 중단해주셔야 한다"고 이날 고위전략회의에서 언급했다고 안호영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당직자들은 이 부분을 유념하고 의원 및 당원들과 소통을 강화해 해소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