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법·노란봉투법·감사완박 추진…폭주하는 거대 야당
입력 2022.09.17 00:10
수정 2022.09.16 22:44
'쌀 시장격리 의무화' 野 단독 소위 통과… 원내 1당 힘 과시
이재명 "국민 뜻 따라 권한 행사"…입법 폭주 정당성 부여
'불법 파업 조장' 우려 있는 노란봉투법도 野 주도로 급물살
감사원·시행령 제개정 권한 국회 통제 하에 두려는 시도도
더불어민주당이 169석 의석수를 무기로 정부 정책에 맞불을 놓거나 대통령 소속 독립 기관을 국회 통제에 두겠다는 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협치와 통합을 당대표 취임 일성으로 내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당의 '폭주'를 '국민의 뜻'으로 미화하면서 정당성을 부여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이 대표는 16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한 것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지나친 속도전 아니냐, 일방통행 아니냐고 하지만 식량안보의 핵심 소요인 주곡 가격 유지를 위한 활동에 여야가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것이야말로 속도전으로 국민의 뜻에 따라 주어진 권한을 최대치로 행사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강조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의 시장격리(정부 매입) 의무화를 골자로 한다. 현행법은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쌀 가격이 5% 이상 떨어지면 생산량 일부를 정부가 매입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임의조항이어서, 더 적극적인 시장격리를 위해 이를 의무조항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국민의힘도 쌀값 폭락에 대한 정부의 부실 대응과 시장격리 의무화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격리 의무화가 시장에 미칠 영향 등에 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법안 처리에는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전날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단독으로 개정안을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를 거치지 않은 불법 날치기 처리"라고 반발하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오히려 국민의힘이 '발목 잡기'를 하고 있다며 "국민의힘 광역단체장도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쌀값 유지 정책에 대해 흔쾌히 협력해주길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생에 관한 일, 국민이 원하는 필요한 일은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행사해 신속하게 성과물을 만들어내겠다"고도 밝혔다.
정가에서는 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단독 처리가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 서막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온다. 핵심 법안에 대해서는 여당의 반대가 있더라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 이 대표는 지난 13일 당 원내지도부와의 만찬 자리에서 "야당은 51%라도 찬성하면 적극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역시 이 대표의 이러한 의지에 따라 처리됐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삭발과 단식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농심 앞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모두 기권했는데, 여당은 대체 무엇을 위해 정치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원내 1당으로서 반드시 양곡관리법을 마무리 짓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민주당은 '불법 파업 조장' 우려가 쏟아지는 법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으로, 노동조합의 불법 파업에도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막는 내용이 골자다. 합법적 노동쟁의의 범위도 확대해 현재 불법인 정리해고 반대 파업도 정당한 쟁의에 포함되도록 했다.
근로자가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소송을 막자는 취지이지만, 사실상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많아 국민의힘과 경영계의 반발로 여러 번 좌초된 바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은 전날 국회를 찾아 전해철 환노위원장에게 노란봉투법 입법 중단을 촉구하는 경영계의 의견을 전달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황건적 보호법'에 불과하다"며 "노란봉투법이란 이름부터 잘못됐다. 불법 파업에 대한 법원의 손해배상 판결에 노골적으로 불복하는 행태를 미화한 네이밍"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불법 행위까지 면책하는 건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노란봉투법에 대한 초당적인 협력을 요청했고, 이 위원장도 적극적인 제정 의지를 밝혔다. 이에 따라 정의당은 전날 노란봉투법을 당론으로 발의하며, 민주당과 함께 올해 안에 해당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예고했다. 민주당도 정기국회 22대 민생입법 과제 중 6번째에 노란봉투법을 선정했다.
현재 환경노동위원회 16명 위원 가운데 9명이 민주당, 1명이 정의당 소속이라 두 당이 공조하면 상임위 통과는 수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과 여론의 반발이 크더라도, 민주당이 논란이 무릅쓰고 입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에도 정의당과 함께 국민의힘과 경영계가 강하게 반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을 통과시킨 전례가 있다.
민주당이 대통령 소속 독립 기관인 감사원의 감사와 정부 시행령 제·개정 권한을 국회의 통제하에 두려는 시도를 하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신정훈 의원 대표발의)과 장경태 최고위원이 대표발의한 '시행령 통제법'(국회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감사원법 개정안은 감사원의 정치 보복성 감사를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감사원이 특별감찰을 할 때 감찰계획서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제출해 승인을 얻도록 하고, 감사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감사원 임직원의 정치적 중립성 유지 의무 부과 및 위반 시 형사 처벌, 감사위원회의 의결 공개, 감사 대상자에 감사 사유 사전 통지 등의 내용도 담겼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 당시 이뤄진 북한 어민 강제북송 사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에 대한 감사를 개시한 데다 국민권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 전 정부 임명 기관장에 대한 표적 감사가 이어지고 있다며, '정치적 악용' 막기 위해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초헌법적 발상'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직 감사원장 출신인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헌법 체계를 파괴하는 민주당의 기상천외한 발상"이라며 "가리고 덮어야 할 지난 정부의 불법과 비리가 얼마나 많은지를 스스로 자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양금희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민주당은 국회 다수당의 무기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이어 또다시 위헌적인 '감사완박'을 꾀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장 최고위원이 대표발의한 시행령 통제법은 대통령·정부 시행령이 모법(母法)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면, 국회가 수정하거나 아예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도록 했다. 같은 당 조응천 의원이 발의한 시행령 수정 요구 법안보다 국회의 통제를 한층 강화한 법안으로, 여권에서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전날 논평에서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일단 국회 권력으로 누르고 보자는 민주당의 '완박 증후군'이 또다시 시작됐다"며 "야당이 되자마자 정부 시행령을 통제하겠다면서 '정부완박'을, 예산편성권을 내놓으라며 '예산완박'까지 위헌적 '완박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가에서는 민주당이 원내 제1당으로서의 힘을 과시하기 시작한 건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것과 동시에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막기 위한 다목적 포석이 깔려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통화에서 "집토끼 결집 의도"라며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은 언제나 분열했고, 민주당 역시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민주당이 일사분란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건 급하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인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MBC라디오에서 "'민주당이 민주당 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며 " 검수완박을 비롯해서 지금 말씀하신 감사완박법 그리고 행정부의 시행령 입법을 봉쇄하려는 정부완박법 이렇게 민주당이 방탄을 위해서 민주당 맞춤형 방탄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국민적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