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로그인㉜] ‘현금 없는 사회’…한국조폐공사, 디지털 기술로 승부
입력 2022.05.02 07:01
수정 2022.04.30 15:04
전쟁통에 시작한 70년 화폐 제조 역사
디지털 시대 직면…체제 전환 불가피
첨단 기술 바탕 ICT 플랫폼 시장 도전
최근 세계는 급변하는 물결 속에 다양한 생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등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 중립, 감염병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비대면 문화 확산, 디지털 첨단 기술을 접목한 4차 산업혁명 등 저마다 시장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공기관 역시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 중입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공공기관 역점 사업에 대한 관심은 크게 줄어든 상황입니다. 데일리안이 기획한 [D:로그인]은 공공기관의 신사업을 조명하고 이를 통한 한국경제의 선순환을 끌어내고자 마련됐습니다.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로그인]처럼 공공기관이 다시 한국경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조명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한국조폐공사를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는 표현은 ‘돈을 만드는 곳’이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 1일 설립해 지금까지 화폐와 유가증권 등 국가적인 보안제품의 안정적 제조와 공급을 담당해 왔다.
1975년 경북 경산에 화폐본부를 발족한 이후 순수 우리 기술을 최초 적용한 1000원짜리 지폐를 시작으로 다양한 동전과 지폐를 제작 중이다. 1983년에는 환망식 초지시설을 갖춘 제지본부를 충남 부여시에 발족해 현재까지 은행권용지를 생산하고 있다.
조폐공사가 하는 일은 돈을 만드는 것 외에도 생각보다 많다. 국채와 수입인지·수입증지·수표·우표는 물론 각종 증권과 채권 등 특수인쇄물도 만든다. 동전 외에도 기념주화, 메달·훈장 등 주조제품과 특수인쇄물에 사용하는 여러 종류 용지도 조폐공사가 만든다. 여권 제작도 조폐공사 몫이다.
외국 정부 또는 공공단체에 대한 화폐·유가증권 등 수출과 정부 인가를 받은 기타 업무도 맡고 있다. 현재 은행권(화폐)과 함께 매년 2300여 종에 달하는 특수인쇄물을 제조, 공급하고 있다.
조폐공사의 핵심은 위·변조 방지기술이다. 위·변조를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자성·형광·자외선 감지요소 등을 적용하고, 화폐교환 기계화 추세에 따라 은행권 자체에 기계감응요소를 삽입함으로써 자동판매·자동환전·자동정산을 가능하게 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위·변조 방지기술은 화폐나 여권 제작에만 쓰이지 않는다. 주민등록증, 공무원증, 청소년증, 복지카드, 장애인카드 등 국가 신분증(ID)은 물론 신발과 화장품, 의약품, 지역특산물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진품 확인 용도로 사용 중이다. 위변조 방지기술을 활용한 특수 보안용지와 특수잉크, 금 시장 투명화를 위한 골드바 제품 등도 생산한다. 생산 제품 종류는 110여 가지가 넘는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국내 유일 은화 삽입용 환망식 초지기를 구비하고 은행권 용지를 비롯한 각종 특수인쇄용지를 생산하고 있다. 전체 공정이 자동화되어 있고, 유가증권의 위조·변조 방지를 위하여 은화·은선·은사와 기타 고유 파장에만 감지되는 특수화학물질 등의 보안요소를 용지에 삽입하기도 한다.
‘현금 없는 사회’ 직면…디지털 전환으로 돌파구
조폐공사의 이런 기술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혁신적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른바 ‘현금 없는 사회’가 가속하면서 조폐공사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조폐(造幣, 화폐를 만듦)’ 기능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폐공사가 현금 없는 사회 돌파구로 선택한 것은 바로 기술과 디지털이다. 조폐공사는 자신들이 가진 최고 수준 위·변조 기술을 디지털에 접목해 신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모바일 신분증과 전자서명 공통기반 사업, 모바일 상품권, 사물인터넷(IoT) 보안모듈 사업 등이다.
조폐공사는 지난해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새로운 비전(vision)으로 ‘초연결 시대의 국민 신뢰 플랫폼 파트너’를 소개했다. 현금 사용이 줄면서 나빠진 경영 환경과 잠재적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화폐 조제 기업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겠다는 의지다.
이런 의지를 바탕으로 지난해 3월 조폐공사는 행정안전부로부터 모바일 신분증과 전자서명 전문기관으로 지정받았다. 모바일 운전면허증 시범 사업을 시작했고, 올해 7월부터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전자서명 공통기반 사업도 올해 영역을 넓힐 예정이다. 주요 공공웹사이트에서 국민이 전자서명 인증 서비스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민간 인증서를 통합·제공하는 내용이다.
조폐공사는 현재 국세청 등 50여 개 정부 기관과 협약을 맺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 110여 개 공공 웹사이트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역사랑 상품권 플랫폼 사업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조폐공사는 국내 최초로 블록체인 기술 기반 공공 플랫폼 ‘착(chak)’을 개발해 모바일 지역사랑상품권과 정책수당 지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로 ‘chak’은 ‘Change for Korea’ 약자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기존 지자체들을 한데 묶어 광역자치단체 중심 통합플랫폼을 구축할 경우 평생교육바우처 등 지역 실정에 맞는 다양한 정책수당을 지급하는 채널로 편리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며 “특히 쇼핑몰, 관광명소와 연계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첨단 위변조 방지 기술을 활용한 사물인터넷 보안모듈 사업도 강화한다. 현재 주유소 계량기 등에 적용된 보안모듈은 주유량 계측의 위·변조를 방지하는 핵심 기술이다. 조폐공사는 앞으로 전기와 수도 원격검침용 스마트 미터, 전기차 충전기용 보안모듈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조폐공사는 디지털 전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정보통신기술(ICT) 전담 조직을 강화했다. 인력을 확대 배치하고 국내 IT 기업 출신 전문가를 상임이사로 영입했다. 신규투자 상당 부분을 ICT에 집중하고 있다.
외부 기관과 기술 협력도 확대 중이다. 전략적 제휴를 통해 지자체는 물론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블록체인학회, 한국인터넷진흥원 등 민간 기업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ICT 플랫폼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조폐공사는 “2020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장기화로 전자여권 발급량 감소, 매출채권 미수 등의 여파로 위기 요인이 쌓였다”며 “전자여권 사업과 모바일 운전면허증 등 신사업이 본격화하면 경영 성적표가 지난해보다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두사미 목표보다 작아도 성공하는 경험 쌓는 게 중요”
[인터뷰] 반장식 한국조폐공사 사장
“현금 없는 사회가 가속하면서 조폐공사는 본원적 사업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조폐공사 전체 매출에서 화폐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급감해 지난해 기준 전체 매출액의 20%대에 불과하다.” - 반장식 한국조폐공사 사장
지난해 2월 취임한 반장식 한국조폐공사 사장은 취임 1년 동안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마주했다. 취임 전 터진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급감하면서 전자여권 발급량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불리온 메달’ 거래(제작)업체에 대한 매출채권 회수 지연으로 대손충당금 적립까지 겹쳤다. 결국 조폐공사 2020년 영업이익은 142억원 적자로 이어졌다.
반 사장은 취임 후 곧바로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했다. 반 사장은 3월 비상경영 테스크포스(TF)를 꾸리고 사업별 경쟁력 강화, 현안해결, 미래전략 수립 등의 업무를 추진했다. 미래성장과 인적자원(HR), 사업고도화, 불리온 사업, 글로벌, 기술발전 등 부문별 TF만 6개를 꾸렸다.
TF 체제 전환은 효과가 상당했다. 생산성을 높이고 경비 절감에 노력한 결과 화폐와 전자여권 사업에서 영업손익 개선 효과를 거뒀다. 나아가 올해 반 사장 취임 1년 만에 영업수지는 V자 반등에 성공했다.
반 사장은 조폐공사의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대목으로 ‘작은 성공’을 꼽았다. 이른바 ‘작은 성공 이야기(small success story)’다.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시작한 혁신 활동이 용두사미가 된 사례를 많이 목격했다. 부서별로 작은 성공 이야기 사례들이 많이 나오고, 이런 사례가 모이면 자연스럽게 조폐공사 전체의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반 사장은 작은 성공 이야기를 시냇물이 모여 강물을 이루는 것과 비교했다. 작은 성공들이 모이면 조폐공사의 디지털 전환을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경영 행위를 종합예술이라 표현한 반 사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게 조직 문화”라고 했다. 상호 소통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자율적으로 일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원가, 손익계산 필요성도 강조했다. 반 사장은 “공사 존재 목적이 국민에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지만 공사 또한 기업이기에 지속 가능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원가와 손익에 대한 마인드를 갖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 사장은 “조폐공사는 지난 70년 동안 화폐, 수표 발급 등을 통해 국민경제 실핏줄 역할을 해왔다”며 “이는 우리 사회 신뢰를 이어주고 가치를 창출한 것”이라고 자부심을 내보였다.
그는 “조폐공사는 첨단 위·변조 방지기술과 보안 기술을 바탕으로 디지털 부문에서도 신뢰를 이어주고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며 “지역사랑 상품권, 모바일 운전면허증, 전자 서명 공통사업 등 국민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많은 성원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