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令) 안서는 文…밥그릇 지키는 軍
입력 2021.08.26 02:00
수정 2021.08.25 23:58
文 지시로 출범한 민관군 합동위
민간위원 12명 줄사퇴로 취지 무색
"박은정 위원장, 軍 편들며 압박"
성추행 피해를 입은 뒤 상관의 2차 가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중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출범을 지시한 국방부 민·관·군 합동위원회(이하 합동위)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군 사법제도 개혁과 병영문화 개선책 마련을 위해 지난 6월 28일 출범한 합동위는 총 80여명의 위원을 위촉해 첫발을 뗐지만, 현재까지 14명이 사퇴 의사를 밝혀 사실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출범 초 개인 사정을 이유로 사퇴 의사를 밝힌 2명을 제외한 12명 전원이 민관위원이라는 점에서 문 대통령 의사가 반영된 합동위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다.
합동위 소속 민간위원 6명은 25일 민관군 합동위원회 3차 정기회의를 앞두고 "국방부는 개혁 주체가 될 의지가 없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퇴 의사를 밝힌 민간위원은 △강태경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운영자 김주원씨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 △성창익 변호사 등이다.
위원들은 "낡은 제도를 바로잡고자 각계각층의 민간인 전문가들이 두 달간 매주 모여 각자 영역에서 다양한 대안을 만들고 이를 국방부에 제시했다"며 "군은 구태의연한 모습만 반복하고 있다. 이제 기대를 접는다"고 밝혔다.
사퇴 배경과 관련해선 △평시 군사법원 폐지 △실효적 권한을 갖는 군 인권보호관 마련 등의 요구에 군 당국이 반대 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들에 앞서 사퇴 의사를 밝힌 민간위원 6명 역시 '군 당국이 위원들을 들러리 삼고 있다'며 직을 내려놓은 바 있다.
무엇보다 민간위원들의 줄사퇴에는 '평시 군사법원 폐지'가 빠진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합동위 산하 4분과는 최근 평시 군사법원 폐지에 대해 의결하고, 향후 전체회의에서 해당 내용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방부는 전체회의를 앞두고 개최된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보고에서 관련 내용을 누락했다. 이후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된 개정안에도 평시 군사법원 폐지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합동위가 전체회의를 통해 평시 군사법원 폐지 의결을 내더라도 법안에 반영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인 셈이다.
실제로 본회의 상정 예정인 개정안은 △성범죄 △군 사망사건 관련 범죄 △입대 전 저지른 범죄 등에 대해서만 민간이 수사·재판토록 규정하고 있어, 반쪽짜리 개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사퇴 의사를 밝힌 민간위원들은 "국방부는 명시적으로 '평시 군사법원 폐지 반대'가 국방부의 의견임을 밝히고 있다"며 "위원회에서 진행된 논의 과정과 정면 배치되는 행보로 군사법체계 개혁에 제동을 거는 국방부의 모습을 보며 위원회의 존재 의미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서욱 "다양한 목소리 낼 수 있게 지원"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후 개최된 합동위 전체회의에서 민간위원 집단사퇴와 관련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국방부가 의견을 더욱 적극 수용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위원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지원하고, 고견을 청취해 국민과 장병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개선안을 마련하겠다는 군의 의지는 확고하다"고도 했다.
박은정 합동위 공동위원장은 "(합동위가) 군과 민 사이의 마찰과 불신, 위원회 내부의 상호소통과 상호설득의 부족으로 의견확장의 잠재력과 대국민 호소력을 스스로 약화해 가고 있다"며 "높은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의견이라도 장외가 아니라 이 안에서 내놓고 토론하자"고 밝혔다.
사퇴 민간위원, 평시 군사법원 폐지안
무력화 시도 있었다며 강하게 반발
군 당국이 '다양한 의견 수렴'을 약속했지만, 사퇴의사를 밝힌 민간위원들은 군 당국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박은정 공동위원장이 사실상 '군 편들기'를 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민간위원을 들러리로 전락시킨 국방부에 유감을 표한다"며 "국방부 편들기로 반성해야 할 박 위원장이 나가신 분들(사퇴 민간위원) 등에 침을 뱉고 있다"고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밝혔다.
임 소장은 "평시 군사법원 폐지안이 합동위 4분과에서 의결된 이후 박 위원장이 합동위 전체회의에 안건을 올리지 못하게 압력을 행사했다"며 "김종대 4분과위원장이 견디다 못해 분과위원에게 폭로하고 만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양하게 제기된 개혁안을 용광로처럼 녹여내는 것이 합동위원회 정신"이라며 "내부에서 분란 일으키는 것은 박 위원장"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개최된 합동위에선 평시 군사법원 폐지에 대한 국방부 권고안 포함 여부를 결론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소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남긴 글에서 '박 위원장이 표결 결과에 따라 서둘러 부결 처리를 하려 했지만, 정족수 미달 문제로 의결 없이 위원회가 산회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