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트롯 경선 룰' 손질…당밖 향한 '손짓' 될까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0.09.07 00:00
수정 2020.09.07 05:14

'경선 룰'이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를 만든다

민심 대폭 들어온 2006년 경선 룰, '오풍' 불러

민심 반영 비율 확대되면 당밖 인사 유인 효과

"서울시장 후보를 하겠다는 분들, 입당하시라"

'깜짝 신인' 대두의 기회가 될 것인가, '외부 거물' 수혈의 계기가 될 것인가. 국민의힘이 내년 4·7 보궐선거 대책기구를 출범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경선 룰' 논의에 당내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3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해서 앞으로 대책기구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며 "과연 서울시장 후보를 어떻게 선출해야 야당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 그 때 가서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투톱' 주호영 원내대표의 '경선 룰' 관련 움직임도 기민하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달 23일 지역민방 공동간담회에서 "경선부터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절차로 해야 (후보가) 골라지는 과정 자체가 선거운동이 된다"며 "결론이 나면 당헌·당규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지역민방 간담회에 앞서 '미스터트롯'을 제작한 TV조선 본부장과 회동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선 룰'은 전혀 새로운 후보가 대두하는데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6년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이다.


당시 서울시장에 관심을 갖고 움직이던 당내 인사는 3선의 맹형규 의원과 홍준표 의원이었다.


초선 때 대변인, 재선 때 총재비서실장, 3선 때 정책위의장 등 당직을 순서대로 밟으며 기반을 쌓은 맹 의원에 비해, 홍 의원은 도중에 의원직을 상실했다가 재보선으로 다시 원내에 들어오는 등 부침이 있었고, 계파 정치를 하지 않는 스타일상 당내 조직에서 맹 의원에 비해 열세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5년 박근혜 대표 체제 당시 홍준표 의원이 혁신위원장을 맡으며 '경선 혁신' 방안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것이 이른바 '20·30·30·20 제도'였다. 대의원 20%·당원선거인단 30%·국민선거인단 30%·여론조사 20%로, 표심의 절반을 '당심'이 아닌 민심에 할애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당시까지 전통적인 당내 경선 방식이던 '대의원 경선' 방식으로는 홍준표 의원이 맹형규 의원을 이기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며 "당내 경선에서 민심을 대폭 반영하겠다는 혁신 의지도 있었겠지만, '모래시계 검사'로 지명도가 높던 홍 의원이 이듬해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겨냥해 띄운 측면도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런데 이렇게 민심 반영 비율이 늘어나자, 엉뚱하게도 당밖에서 '꿈틀거림'이 일어났다. 2004년 의원직을 마친 뒤, 당비도 한동안 내지 않았을 정도로 한나라당과 거리를 두고 있던 오세훈 전 의원이 갑자기 유력 후보로 대두한 것이다.


2006년 4월 25일 치러진 경선에서 오세훈 전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무려 65%를 쓸어담으며 홍준표(18%)·맹형규(17%) 의원을 압도했다. 대의원과 당원선거인단에서는 예상대로 맹 의원이 승리했으나, 직전해 '경선 룰' 개정으로 민심 반영 비율이 확 늘어나면서 분루를 삼킨 것이다.


'경선 룰'이 단순히 기존에 뛰던 후보들 사이에서의 유불리를 야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후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된 셈이다.


국민의힘은 이후 대의원과 당원선거인단을 책임당원 선거인단 투표로 통합해 '당심 50%'로 하고, 국민선거인단과 여론조사를 합쳐 '민심 50%'로 정리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당심 50·민심 50 경선 룰'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2·27 전당대회에서도 쓰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행 당헌·당규로도 이 비율을 바꿀 수 있다. 현행 국민의힘 당헌 제84조 2항 전단은 "시·도지사 후보자는 선거인단의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선출하되", 3항에서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선출 방식을 달리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종인 "어떻게 후보 선출해야 승리할지 판단"
주호영 "'경선 룰' 결론나면 당헌 바뀔 수 있다"
국민선거인단 부활론, 민심 비율 확대 이어지나
"모바일투표 참여하게끔 하면서 반영률 높여야"


지금의 당헌·당규로도 얼마든지 선출 방식을 달리 정할 수 있는데, 김종인 위원장이 대책기구에서 '경선 룰' 논의를 시사하고, 주호영 원내대표는 "그에 따라 당헌·당규가 바뀔 수 있다"고까지 언급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2005년 '경선 룰' 개정이 당을 사실상 벗어나 있던 오세훈 전 의원을 불러들이지 않았느냐"라며 "애매한 단서조항이 아니라 당헌·당규를 바꿔서 명시하겠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신인 후보를 띄우거나, 당밖의 인사에게 적극적으로 '손짓' 하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의 인지도는 국민의힘 내의 어느 서울시장 후보군보다도 월등하지만, 국민의힘 내의 기반이 없어 조직력이 전무하다. 홍정욱 전 의원도 당을 너무 오래 떠나있었기 때문에 '오십보 백보'와 같은 처지다.


'경선 룰'에서 민심 반영 비율을 대폭 늘리기로 하고, 이를 당헌·당규에 어떤 형태로든 못박게 되면 안철수 대표와 홍정욱 전 의원 등 당밖의 서울시장 후보군들에게 입당과 경선 참여 동기로 작용하게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김종인 위원장은 "일단 우리는 제1야당으로서 서울시장 후보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며 "서울시장 후보를 하겠다는 분들이 국민의힘에 들어와 후보가 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다면 입당하면 된다"고 단언했다.


이와 관련, 최근 김종인 위원장이 주재한 시·도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정양석 서울시당위원장의 국민선거인단 부활 제안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20·30·30·20 경선 룰' 시대에 존재했던 일반국민선거인단은 연령대와 성별을 고려하고 역선택을 방지하는 정교한 장치를 넣으면서 수천 명을 선정했으나, '오프라인' 투표소에 가서 투표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어 실제 투표율은 10~30%에 그쳤다. 이 때문에 '낭비적 요소'가 많다는 비판을 받아 여론조사와 통합돼 '민심 50%'로 정리됐다.


하지만 무작위로 걸려오는 설문전화에 그저 수동적으로 응답하는 국민여론조사와, 비록 당원은 아니지만 보수정당의 후보 선출 과정에 스스로 관심을 갖겠다며 적극적·능동적으로 참여 신청을 하는 국민선거인단 제도는 의미가 다르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왔다.


과거 발목을 잡았던 투표율 문제도 그 사이에 스마트폰 보급 등으로 문자투표가 가능하게 되면서 기술적 해결 조짐이 보인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미스터트롯'은 결승전 문자투표가 773만 건에 달했다.


국민선거인단이 부활한다면 '민심 50%'를 다시 여론조사와 쪼개갖는 게 아니라, '당심 50%'의 일부를 잠식해 민심 반영 비율의 '전체 파이'가 늘어나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양석 위원장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기왕 국민선거인단을 부활한다면) 국민의 의사가 더 반영된 후보를 뽑아야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모바일 투표 등을 통해 국민이 참여하게끔 하면서 그 (민심) 반영률을 높인다면 우리 당이 국민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임자의 잘못으로 보궐선거가 열리는만큼 여당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한 관심이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경선 룰' 논의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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