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국의 디스] 고성장 시대 끝…문제는 일자리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0.08.25 07:00
수정 2020.08.24 17:22

대규모 생산직 투입하는 차·조선업계, 고임금·고용보장 동시 감내 불가

노동조합, 임금 줄다리기 그만두고 고용보장 위해 사측과 머리 맞대야

‘월 기본급 6.5%(12만304원) 인상’.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올해 임금교섭 공동요구안으로 내놓은 수치다. 금속노조에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한국GM 등 완성차 업체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체 노조가 소속돼 있다. 완성차 3사 노조는 이미 사측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이 요구안에 수백~수천 만원씩의 상여금을 추가해 내민 상태다.


이 요구안을 보면 노동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불러온 불황이라는 ‘현실’을 외면한 채 고성장 시대의 ‘향수’에 빠져 있는 듯 하다.


한국의 제조업은 오랜 기간 고성장을 구가했다. 일감이 넘쳐 공장을 풀가동해도 모자랐고, 그만큼 근로자들의 임금도 매년 급상승했다. 울산에서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작업복이, 거제도에서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작업복이 ‘부의 상징’이었다. 이들 지역에서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돈이 넘쳐났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자동차 생산과 내수, 수출은 수 년째 정체됐고, 2년 전엔 완성차 공장 한 곳이 문을 닫았다.


조선업계에는 일찌감치 구조조정의 풍파가 휘몰아쳤다. 중소 조선사들은 하나 둘씩 무너졌고, 대형 조선사들도 실적 악화 속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합병으로 빅3 체제가 빅2 체제로 바뀌었지만, 도크 폐쇄 등 실질적인 설비 감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예상했다. 이는 코로나 19 확산이 현 수준에서 그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긍정 전망으로, 2차 재유행시에는 -2.0%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세가 커지는 상황이라 부정 전망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그나마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긍정적이다. 미국은 경제성장률 예상치가 -7.3에서 -8.5에 달하고 유럽 주요국들은 대부분 두 자릿수 마이너스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수출 위주의 경제 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로서는 다른 국가들의 경제성장률 낙폭이 우리보다 크다는 게 마냥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3일 발표한 ‘수출 주력업종별 협회 대상 상반기 실적 및 하반기 전망 조사’에 따르면 상반기 주요 업종의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5.8% 감소했으며, 영업이익도 23.6% 줄었다. 하반기 역시 수출액이 5.1%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13.8%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사태의 종식 시점이 불투명한데다, 경제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도 이전 수준의 경제 회복은 요원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굳이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제조업에 고임금 근로자들을 대거 투입하는 시기는 끝났다.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의 경우 3만개에 육박하지만 전기차에서는 반토막 수준인 1만여개로 감소한다. 동력계통 부품이 상당부분 전기모터 등으로 대체되면서 간소화 되는 데 따른 것이다.


완성차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들의 대부분은 차체에 부품을 조립하는 공정에 투입된다. 부품이 감소하면 인력 수요가 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조선업계는 유럽에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왔던 산업의 무게중심이 다시 중국으로 향하는 대세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범용(汎用) 선박은 가격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고 이제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돼도 10년 전의 호황은 돌아오지 않는다. 도크 구조조정과 함께 인력 축소도 불가피하다.


현대차는 최근 노동조합과의 임단협 교섭에서 “전기차 전환이 이뤄지면 파워트레인과 콕핏(운전석) 관련 부품들이 축소되고, 인력 수요 감소도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현대차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지양하고 정년퇴직 등에 따른 자연감소 등으로 인원을 줄여나간다는 방침을 노조 측에 전했다. 일부 잉여인력 발생을 감수하더라도 기존 직원들을 내보내는 일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이뤄지는 노사간 대화는 이런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과거에 얼마를 더 올려 받았으니 올해도 이 정도는 올려 달라’고 떼를 쓰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일자리를 지킬 것인가에 대한 건설적인 대화와 협력이 필요한 때다.


대규모 생산직 인력을 거느린 제조기업이 고임금과 고용보장 두 가지를 안고 가긴 불가능한 시대다. 버는 돈은 줄어드는데 개별 임금만 높아진다면 결국 고용보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노동계도 이젠 고성장 시대가 끝났음을 인정해야 한다. 임금을 한 푼이라도 더 올리는 게 아니라 조합원을 한 명이라도 내보내지 않도록 사측과 머리를 맞대는 게 노조의 역할이 돼야 한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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