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vs 임종룡' 첨예한 대치 뒤 금융위 '어색한 침묵'
입력 2024.08.29 06:00
수정 2024.08.29 06:00
전 우리금융 회장 일가 부당대출 의혹에
"누군가 책임" 경영진 압박하는 금감원장
현 정권 실세와 정통 관료 출신 사이에서
논란 키우는 최고 금융당국 기관의 '함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일가의 부당대출 의혹을 두고 임종룡 회장 등 현 경영진을 저격하고 나서면서 첨예한 대치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눈길이 가는 대목은 금감원 위에 자리한 금융위원회가 이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 출신이자 현 정권의 실세로 분류되는 이 원장과 정통 금융 관료 출신인 임 회장 사이에서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 금융위가 어색한 침묵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제라도 최고 금융당국 기관으로서 교통 정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지난 25일 오전 KBS의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 손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의혹과 관련한 질문에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며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물론 임 회장까지 제재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지난해 가을경 임 회장과 조 행장이 손 전 회장의 대규모 부당대출에 대해 보고 받은 정황을 확인했다"며 "법상 할 수 있는 권한에서 최대한 가동해서 검사와 제재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문제가 된 사안은 금감원이 최근 우리은행에 대해 벌인 현장검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우리은행이 2020년 4월 3일부터 올해 1월 16일까지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을 비롯해 친인척이 실제 자금사용자로 의심되는 차주에게 총 616억원의 대출을 내줬는데, 이 중 350억원이 통상의 기준과 절차를 따르지 않은 부당대출이었다는 판단이다.
이처럼 이 원장이 임 회장을 향한 압박 강도를 높이는 와중, 시장에서는 금융위를 향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산하 기관인 금감원이 광폭 행보를 벌이고 있음에도, 정작 그 위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금융위가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금융위는 정부의 한 부처로서 금융 정책을 총괄하는 의사결정 기구다. 이와 함께 금감원은 양대 금융당국 기관으로 꼽히지만, 어디까지나 금융위 산하의 특수법인이다. 금융위에 비해 시장을 직접 들여다보는 실무적 성격이 강하고, 주로 금융 기관에 대한 검사와 감독 업무를 수행한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안에서 맞부딪친 양대 수장의 역학관계 상 금융위의 입장이 곤란할 수 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이 원장과 전직 금융위원장인 임 회장 사이에서 자칫 한편으로 치우친 메시지를 내놓으면 논란만 더욱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사법연수원 32기로 윤 대통령이 검사일 때부터 측근으로 분류됐던 인사다. 임 회장은 24회 행정고시를 패스해 관료가 된 후 2015~2017년 금융위원장을 지내는 등 핵심 요직을 거친 전형적인 금융 관료다.
하지만 금융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우선 이 원장의 행보를 두고 월권이 아니냐는 불안이 확산하는 와중, 상급 기관인 금융위가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으면서 갈등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또 임 회장을 의식해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는 시선이 짙어지면서, 정통 금융 관료들 사이의 인적 네트워크를 일컫는 이른바 모피아식 감싸주기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원장이 우리금융과 현 경영진에 대한 제재 의사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음에도 이를 최종 의결해야 할 금융위가 함구로 일관하면서, 사실상 금융당국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확대시키고 있다"며 "최고 금융당국 기구로서 메시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